출판계와 독자는 왜 ‘베스트셀러’에 유혹되나

2013. 5. 14. 10: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여러분께서는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시나요? 작가, 출판사, 장르 등 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흔히 사용되는 기준은 바로 베스트셀러 목록일 겁니다. 해당 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책 순서대로 순위를 매긴 베스트셀러 목록은 많은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 기준으로 애용되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조작하기 위해 사재기를 한 출판사가 폭로되었습니다. 다들 쉬쉬하며 출판계의 고질병처럼 여겨지던 책 사재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죠. 오늘은 책 사재기와 베스트셀러에 대해 살펴볼게요.



[출처 – 서울신문]




베스트셀러와 책 사재기를 하는 이유


베스트셀러 목록을 처음 발표한 곳은 1889년 미국 캔자스시의 일간지인 캔자스타임스였다고 해요. 이때는 시내 서점에서 팔린 책들을 집계하는 정도였는데 1895년 미국 문학 저널인 북맨의 편집자 해리 팩이 주요 대도시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목록을 게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출판사 설립 자유화 조치 이후로 베스트셀러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특히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이 발표되었습니다. 인터넷서점이 생긴 후로는 베스트셀러 랭킹 뿐 아니라 판매지수 등 다양한 측정 방법이 등장했죠.



보통 독자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본 책이라면 분명 뭔가 읽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라고요.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책들만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일단 베스트셀러에 랭크되면 책의 판매량은 확실히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질이 좋건 나쁘건 얘기하고 논할 기회가 많아지게 됩니다. 콘텐츠의 힘이 정확히 상업적 가치가 되는 건 아니지만, 상업적 가치가 늘어나면 콘텐츠가 현실적으로 힘을 받는 것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죠.



베스트셀러가 물론 반드시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만 하면 책의 판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베스트 서적을 찾아 읽는 사람이 많아서다. 이른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다. 출판사들은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러다 결국 책 사재기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쓰게 된다.(후략) 


베스트셀러 사재기 (한국경제, 2013-05-09)


*밴드왜건(bandwagon)효과 :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그 경향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이 재화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편승효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책 사재기는 바로 이 점을 악용한 인위적인 순위 조작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출판사가 자기들이 낸 책을 사들여서 다시 파는 거죠. 출판사가 사들인 만큼 매출로 잡히니 많이 사면 많이 살수록 베스트셀러에 랭크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실제로 많이 팔리게 되는 거죠. 




책 사재기의 대표적인 사례들


사실 출판사도 기업이다 보니 이윤창출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책 사재기 같은 극단적인 제살깎아먹기 식 방법까지 동원하는 거죠. 책 사재기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95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책사재기의 위력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지요.



대표적인 책 사재기는 미국에서 1995년 일어난 부정사건이다. 경영컨설턴트인 마이클 트레시와 프레드 위어제마는 저서 ‘시장지도자들의 원리’를 주변 사람을 시켜 미국 곳곳에서 구매토록 했다. 이들이 구입한 책만 1만권에 달했다. 밴드왜건 효과가 나타나 미국 전역에서 무려 23만권이나 팔렸다. 그 결과 15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톱10을 줄곧 지켰다. 경제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의 순위에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출판업자들의 신고로 이들은 영원히 이 책을 팔지 못하게 됐다.(후략) 


베스트셀러 사재기 (한국경제, 2013-05-09)




책과 베스트셀러가 있는 곳에는 사실상 항상 책 사재기 의혹이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방법도 점점 교묘해져서 아르바이트생과 직원들의 지인들을 동원해 은밀히 사들이는 수법부터 아예 책을 옮길 필요도 없이 출판사에서 서점 계좌에 판매대금을 입금한 후 그 도서를 판매분으로 처리해주는 방법까지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서 사재기를 대행하는 대행사까지 등장했다고 하는군요.



[출처 – 서울신문]




최근에는 수법이 더욱 교묘해졌다는 게 출판계 지적이다. 일부 홍보 대행업체의 경우, 책 마케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교묘한 '사재기'까지 '대행'해 주고 있다. 이들은 공짜로 책을 보내준다며 4대 온라인 서점 독자 ID를 수백~수천 개 확보한 뒤 1인당 한두 권씩 책을 무료로 뿌리면서 감시망을 피해간다.(후략) 


베스트셀러 조작에 '사재기 대행사'도 성업 (조선일보, 2013-05-10)



대행사까지 등장했다는 건 출판계 내에 책 사재기 수요가 상당히 존재한다는 뜻일 겁니다. 이번에 들통 난 곳이 자음과 모음일 뿐 책 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만든 출판사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이죠.




출판 불황이 책 사재기 유혹 더 키워


동시에 이런 제살깎아먹기 식 책 사재기를 뿌리 뽑기 위한 고민은 출판계 내에서도 계속되어 왔습니다. 작년에는 출판계와 서점업계가 절반씩 부담하여 1억 원을 조성하고 내부고발자에게 포상금을 주는 북파라치까지 고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 사재기는 만연한 상태죠.



책 사재기의 유혹에 넘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사서 읽는 인구가 우리나라는 원래도 적은데 더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불황이 계속되니 어떻게든 더 팔아야하는데 찾은 방법이 책 사재기로 베스트셀러 만들기 인 것이죠. 반대로 책을 사는 인구가 적어져서 책 사재기의 효과가 더 발휘되는 모순적인 광경도 펼쳐졌다고 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한 출판사 대표는 "워낙 불황이라 요즘엔 대형 서점 한 곳에서 한 주에 1,000권만 팔아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든다"고 했다. 그는 "1000만~1200만원을 들여 사재기를 한다 치자. 그러면 서점이 정가의 약 60% 책값으로 다시 출판사에 돌려주기 때문에 서점 한 곳당 실제 들어가는 비용은 500만원이 채 안 된다"면서 "4대 온라인 서점에 쓰는 광고비의 30%만 들여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불황을 이기는 데는 '사재기만 한 게 없다'는 그릇된 인식이 점점 '신념'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후략) 


베스트셀러 조작에 '사재기 대행사'도 성업 (조선일보, 2013-05-10)



이런 상황에서 처벌도 솜방망이이다 보니 책 사재기를 마치 마케팅의 한 방법처럼 암암리에 쓰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출판계 전체를 수렁으로 빠뜨리는 방법이기에 돌파구를 찾아야만 합니다.




독자들의 책을 고르는 안목과 투명한 집계 단체가 필요한 시점


이번 책 사재기 베스트셀러 조작 폭로 때문에 우리나라 유수의 출판사였던 자음과 모음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대표는 사임하였습니다. 출판사가 사재기한 것으로 지목된 황석영, 김연수, 백영옥 등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나서서 절판 선언을 했습니다. 책 사재기에 대해 알았든 몰랐든 작가 인생의 모욕적인 한순간이 되었죠. 결국, 그들의 작품을 사랑했던 독자들까지 모욕당한 셈입니다. 이 상황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처 – 서울신문]




문화 전반적으로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다. 철학 책도 그 책을 쓴 철학자가 유명세를 타야 베스트셀러가 된다. 영화사들도 천만 관객 동원을 위해 반값, 공짜 티켓을 남발하지 않나. 책,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문화적인 취향, 안목이 돼야 하는데 이를 길러 주는 교육이 부족하다 보니 책과 영화를 베스트셀러, 박스오피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출판사의 사재기도 이런 현상에 기댄 것이다.(후략) 


"베스트셀러 쏠림 풍토 바꿔야 출판계 산다" (노컷뉴스, 2013-05-13)



관점을 바꿔보면 이는 베스트셀러가 책을 구매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재기를 해서라도 베스트셀러가 되려고  노력하는거죠. 이는 독자와 사회의 책임도 없지는 않음을 뜻합니다. 독자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취향을 갖고 책을 능동적으로 선별하여 독서를 한다면 이런 사태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워낙 책을 읽어 버릇하지 않고 또 그런 교육을 하지도 않기에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죠.



또한 출판계와 정부에서는 영화의 박스오피스 집계처럼 전국의 도서 판매량을 투명하게 집계하여 공신력 있는 발표를 할 수 있는 단체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출처 – YES24]




최근 출판사 부키에서는 아까운 책 2013이란 도서를 발간했다고 합니다. 2012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대로 잊혀져서는 안 될 주옥같은 책들을 정리한 도서라고 해요. 출판계에서도 베스트셀러에 편중된 흐름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독자로서도 베스트셀러에, 나아가 책에 실망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남들 다 본다고 나도 따라보는, 남들과 얘기 못 하면 뒤떨어지는 것 같아 불안해서 책을 고르지는 마세요. 좋은 맛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식을 많이 맛보는 게 중요하듯 책도 다양하게 많이 읽어보는 것이 안목을 기르는데 가장 좋다고 합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책 한 권 읽기도 어려운 시간이긴 합니다만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현명한 책 고르기를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