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사진상 탄 기자의 피겨여왕 김연아 취재기

2013. 5. 24. 09:0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메달이 확정되는 3월 17일(한국시각) 김연아의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연기가 채 마치기도 전에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우승을 확신한 관중들의 박수 소리. 분위기를 보여 줄 수 있는 사진을 위해 70-200mm 렌즈로 교체했을 땐 파인더 속 관중들은 한명 빠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하늘이 장난치지 않는 한 우승하겠구나!


필자는 5년차 풋내기 사진기자다. 김연아의 A급 국제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캐나다 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을 땐 앞으로 있을 열흘 남짓한 취재기간은 설렘이 아닌 부담감으로 더 크게 다가왔다. “잘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겠지? 잘 할 수 있을 거야. 쏟아지는 외신 사진에 대항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어떻게 신선한 사진을 만들지? 자리는 어디가 좋을까?” 비행시간 내내 김 선수의 경기 영상을 수십 번을 돌려보며 머릿속으로 되뇌던 말이다.


취재 첫 날 연습현장, 김연아는 같은 그룹의 어떤 선수보다 가장 일찍 나와 상대 선수들의 연기 모습을 바라보며 컨디션을 확인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내게는 참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시작된 그녀의 연기는 예상과 빗나가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과는 역량이 달랐다. 아니 차원이 다른 연기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하늘이 장난을 치지 않는 한 우승이겠구나” 생각했다.






드라마 각본인 듯 프리스케이팅 연기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김연아의 표정에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링크와 한 몸이 되어 하늘을 나는 듯 은반 위를 수놓았고 마치 해맑은 어린아이가 걱정 없이 풀밭을 뛰노는 느낌이었다. 바라보는 내가 더 긴장을 한 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연기는 완벽했다. 연기 점수가 나오고 놀라는 김연아를 카메라 프레임으로 바라보며 나도 함께 웃었다. 우승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현지 성가대의 애국가, 태극기를 두르고 경기장을 돌며 인사하던 모습. 김연아의 행동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그 순간에도 온몸에는 이미 소름이 돋아있었다. 새벽 4시30분 마감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택시 안, 그 동안 쌓였던 피로와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건미역이 물에 불 듯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선수도 사진기자도 기회는 단 한번


특종이나 단독 취재와는 달리 누구나가 볼 수 있는 여건의 취재 현장에서 신선한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늘 비슷한 경기 사진에 조금은 지루함을 느낄 때 즈음. “그래! 김연아의 교과서적인 점프를 한 단계 한 단계 끊어서 사진으로 보여주자.” 출국 전에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사진 한 장을 위해서는 다른 수많은 사진들을 포기해야 했고 큰 위험이 따랐기에 배제하고 있었다. 






셔터 릴리즈도 없었고 내가 예상하고 잡은 프레임 안으로 점프 동작이 한 장도 빠짐없이 있어줘야 했고 카메라가 흔들리거나 점프 연기에 실패 할 때에는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시도하자 생각했던 것은 김연아의 점프 성공률은 10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취재원인 그녀는 기자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 자신만 잘 하면 되는 것이었다. 연기 영상을 밤새 돌려보며 이미지 트레이닝 했고 훈련이 끝날 때는 한국시각으로 오후 10시였기에 촉박한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잘 쓰지도 않던 단축키를 만들어 놨다.






피겨 스케이팅은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려야하는 잔인한 스포츠인지 모르겠다. 며칠, 몇 개월 몇 년이라는 고된 노력,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훈련, 인내, 절제가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게 하는 것은 아닌지. 캐나다에서 느꼈던 감동의 박수 소리가 다가 올 소치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울려 퍼지길 바란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3년 5월호 뉴시스 사진부 전신 기자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전신 뉴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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