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시(詩)를 권하다

2013. 7. 15. 10:33다독다독, 다시보기/생활백과






마음을 위로하는 시 읽기


시를 읽지 않는 시대입니다. 베스트셀러에서 순수문학이 사라진 시대죠. 소설도 읽지 않는데 그보다 더 지루하고 난해한 시를 읽으라니, 반감부터 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빠르고 편리한 ‘LTE 시대’에 종이책을 넘기며 ‘돈도 경력도 안 되는’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칫 비효율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비칠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문학이란 것이 언제부터 효과나 효율적인 측면과 맞닿았었나요? 세상 모든 도구를 눈에 보이는 이익을 얻기 위한 것으로 취한다면 참으로 팍팍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싱글맘으로도 유명한 시인 신현림은 그의 청춘을 온통 쏟아 부은 하나뿐인 딸에게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이 얼마나 근사한 조언인가요? 시인 엄마가 막 세상에 눈 뜬 딸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현림은 그의 책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에서 이야기합니다. 많은 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엄마에게 아픈 말을 던지며 싸우던 철없던 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되돌아 볼 때마다 그녀는 시집을 뒤적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시를 통해 성찰하며 인생의 지혜를 배웠고, 몸과 마음에 배인 시의 긍정적인 기운으로 매번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녀 역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을 겪은 인생의 선배로서 신현림은 자신의 딸과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시와 함께 건너라고요.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에는 모두 90편의 시가 담겨 있습니다. 딸들(비단 딸만이 아닌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마친 세상 모든 이들에게)에게 엄마의 마음을 담은 작은 위로와 격려를 대신하는 시들이죠. 노자, 루쉰, 셰익스피어, 바이런, 타고르에서부터 한국의 위대한 시인들인 백석과 서정주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치열하게 살았던 시인들의 시가, 그녀의 책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시는 어렵고 난해한 것이라고만 여기시나요? 먼저, 시는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깨뜨리면 시는 삶의 깨달음을 담은 지혜가 되어 다가옵니다. 신현림 시인의 말처럼 산다는 건 한 편의 시, 한 권의 책으로 삶을 조금씩 열렬히 바꾸어 나가는 일인 것 같습니다.  




‘길의 시인’ 신경림과 그가 만난 또 다른 시인들


앞서 소개한 신현림 시인과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신경림 시인의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란 책이거든요. 이 책은 역시 시인이자 비평가이기도 한 신경림 시인이 우리나라 현대시 대표 시인 22인의 고향과 유적을 답사하며 그들의 시세계와 삶에 대한 이해를 꾀한 산문 모음집입니다.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정지용에서 윤동주, 유치환, 박목월을 거쳐 신동엽, 김수영, 천상병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문학사의 고전이 된 작품을 남긴 작고(作故) 시인들을 다룬 기행-평전 모음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신경림 시인은 시가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데는 부분적으로 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책임한 말장난은 더 말할 것도 없겠으나, 가령 독자와의 소통을 아예 포기하고 아무런 열쇠도 주지 않은 채 내면이라는 골방으로 들어가 처박힌다면 독자가 어떻게 그 시를 좇아가며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는 반문합니다. 또한 시를 곰곰이 읽고 시를 바르게 이해하게 하는 데는 관심도 없는, 도식적이고 관념적인 문학교육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신경림 시인은 시험 문제 위주로 시를 공부한 학생이 시라면 넌더리를 내면서 멀어지는 예를 여러 번 보았다며 관념적인 시 교육을 비판하죠. 따라서 그가 이 글을 쓴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점을 다소나마 극복해 보자는 데 있었다고 합니다.



정지용과 백석은 분단시대의 희생자지만 분단의 벽을 뛰어넘어 한국현대시의 흐름을 바꾼 대표적인 시인이다. 둘 다 서구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지만 이를 한국적 전통으로 승화시켜 후대의 전범이 됐다.


정지용의 시는 우선 청록파에 의해 계승된다. 박목월은 향토적 서정을, 조지훈은 고전적 혁신을, 박두진은 종교적 깊이를 개척했으며 청록파의 시는 더 넓게 확장돼 박목월의 제자인 오세영·이건청·조정권이나 조지훈의 제자인 정진규·오탁번·김명인 등으로 그리고 박두진의 제자인 정현종·강은교·천양희 등 여러 갈래의 서정시로 퍼져나갔다.


백석의 시는 중학교 시절 처음 백석의 시를 읽고 감동과 충격을 느꼈으며 시집 『사슴』을 '시를 공부하는 교과서'로 삼았다는 신경림을 선두로 '모닥불'을 전범으로 삼은 최두석은 물론 백석의 시 구절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시집의 제목으로 한 안도현, 민중의 보편적 감정을 노래한 정일근·문태준 등의 리얼리즘적 서정시로 이어졌다.


지용·백석 .. 한국 현대시의 기틀 닦은 두 천재- 7/15 중앙일보



위와 같이 한국 현대시의 기틀 닦은 두 천재, 정지용과 백석에 대한 해석은 지금까지도 한국 시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가치관이 어떻게 달라지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아름답고 순수하고 참된 것을 찾는 뜻이 없어지지 않는 한 시는 존재를 이어갈 것이고, 세상의 중심에 서 있기도 계속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온전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잠 못 드는 여름밤에는 시를 꺼내 읽어보세요. 시라는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 그 곳이 곧 환상의 피서지이자 휴양지임을 알게 되실 거 에요. 시와 함께 행복한 여름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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