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엄마에게 신문 읽어주는 초등학생의 사연

2013. 8. 22. 10:03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택시는 왜 대중교통이 아니야?”

오빠가 뉴스를 보며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도 모르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빠는 그것도 몰라? 택시는 정해진 노선이 없고,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타지 않기 때문이야.”


평소에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는 오빠에게 복수하듯 크고 당당하게 알려 줬다. 오빠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빠는 “역시 신문여왕이라 다르군” 하며 박수를 쳐 줬다. 맞다. 나와 엄마는 아빠와 오빠가 인정하는 신문여왕들이다. 화장실에 갈 때도 신문을 갖고 간다고 오빠에게 구박은 받지만 말이다.





내가 신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다. 대학교 다닐 때 별명이 ‘신문여왕’인 엄마는 아침밥을 먹을 때마다 신문 기사를 하나씩 읽어 주셨다. 처음에는 재미도 없고 짜증만 났다. 밥을 먹는데 계속 외계인 언어를 말하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읽고 계셨기 때문이다. 오빠는 밥을 빨리 먹으니까 상관없었지만 밥을 천천히 먹는 나는 엄마가 읽어 주는 기사를 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제발 읽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절대 들어주지 않았다. 비밀이지만 엄마 몰래 귀에 화장지를 꽂고 밥을 먹은 적도 있고 속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먹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로 지독하게 신문 기사가 재미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내가 먼저 신문을 찾게 되었다.

그날은 엄마가 아팠다. 밤새 끙끙 앓은 엄마는 아침에도 못 일어나셨다. 엄마가 아프니까 마음도 안 좋은데 아빠가 대충 챙겨 주는 밥을 먹으니 울컥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기사를 읽어 주던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학교를 갔다 왔는데 신문이 현관에 던져진 채 그대로 있었다. 


“엄마, 신문 읽어 줄까?”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엄마가 기운 없이 웃었다. 나는 신문을 엄마가 잘 보이게 펼치고 기사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거?”, “이거?” 하고 물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인 기사를 엄마 옆에 앉아서 읽어 줬다. 다 읽고 나니 엄마가 힘없이 “고마워” 했다. 그 다음 날도 엄마에게 신문을 읽어 줬다. 내가 직접 읽으니 더 재미있고 아픈 엄마를 위해 무엇인가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 뒤로 엄마는 가끔 내게 신문을 읽어 달라고 했다. 신문 읽는 내 목소리가 예쁘다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아주 흔쾌히 신문을 읽어 줬다. 


신문을 내가 직접 소리 내 읽으니까 엄마가 읽어 줬을 때보다 이해도 더 잘 가고 더 꼼꼼히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단어를 내가 모르는지 분명하게 알고 찾아보기도 했다. 엄마는 신문에서 알게 된 단어를 대화할 때 자꾸 사용해 보라고 했다. 그 단어를 넣어 엄마랑 짧은 글짓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빠는 내가 신문을 읽은 후부터는 말이 달라졌다고 했다. 내가 쓰는 단어, 문장들이 비싼 비단처럼 고급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2년 전부터 학교 글쓰기대회에서 상을 놓쳐 본 적이 없다.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장에도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알고 있네요. 훌륭해요’라고 칭찬받은 적이 많다.  





관심을 가지고 읽으니 신문은 매일 나오는 새로운 책 같았다. 전날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정리해 정치나 사회, 문화, 스포츠, 취미와 건강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특히 국제면에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까지 사진과 함께 기사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나중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세계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을 읽으면 나의 지식이 우주같이 넓어지고 내 꿈이 쑥쑥 커 나가는 것 같다


그토록 싫었던 신문 읽기가 이제는 나에게 즐거운 공부이자 유일한 휴식 시간이 되었다. 책이나 교과서를 읽은 것은 금방 잊어버리는데 신문에서 읽는 것은 마치 메모리카드에다 저장을 해 놓은 것처럼 장기간 동안 기억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 공부를 잘하는 오빠가 가끔 사회적 용어나 시사 내용을 물어볼 때면 노래를 부르듯이 술술 설명을 해 준다.


엄마와 아빠가 신문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면 나도 가끔 끼어들어서 같이 생각을 나눌 때가 있다. 신문을 통해 알고 있는 것에 내 의견을 넣어서 말한다. 바쁜 아빠는 신문을 못 보기 때문에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아빠는 “신문여왕들은 못 당해” 하시며 너털웃음을 웃으신다. 이처럼 신문을 통해 가족 대화 시간이 늘어나고 대화할 소재가 생겼다. 그 시간은 유일하게 내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이자 하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도 된다.


나에게는 나만의 신문 읽는 법이 하나 더 있다. 이것은 정말 내 비장의 카드다. 바로 신문일기를 쓰는 것이다. 1주일에 한 번씩 가장 마음에 드는 기사를 오려서 공책에 붙인다. 그런데 그냥 신문 기사를 붙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단어를 동그라미 치고 사전적 의미를 찾아 쓴 뒤 그 단어를 이용해 짧은 글짓기를 한다. 또 그 기사의 문제점 등을 찾고 그 문제점에 대한 내 생각도 간단히 적어 놓는다. 


“야, 신문여왕. 오늘은 무슨 기사 떴냐?”

오빠가 은근슬쩍 신문에 관심을 나타냈다. 나는 냉큼 알려 주려다 참았다. 대신 신문을 오빠 앞으로 밀었다. 내 경험상 신문은 직접 읽어 보는 게 제일 좋다. 오빠도 이제 신문을 보면서 신문의 장점을 쏙쏙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럼 오빠가 ‘신문대왕’이 되는 건가? 안 된다. 신문여왕 자리를 오빠에게 넘겨줄 수 없다. 


나는 신문을 펼쳤다. 누가 뭐래도 신문여왕은 나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3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중 초등부 은상 박주은 님의 '나는야, 신문여왕'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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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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