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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저널리즘 보여주는 현장의 교과서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 연구원·언론학 박사 정은령의 글입니다.

 

[요약] 저널리즘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도덕을 갖추고 지적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퓰리처상 100주년 의미와 2016년 수상작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16418일 오후 35(미국 동부시간). 뉴욕 맨해튼 33번가의 AP 편집국에 환호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퓰리처상위원회의 올해의 수상작발표에서 최고 영예인 퓰리처상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 부문 수상 언론사로 AP가 호명됐기 때문이었다. 4명의 AP 기자들이 1년 넘게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미국을 가로지르며 노예노동을 하는 동남아시아 어부들의 참혹한 실상을 파헤친 노력이 미국 언론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보답 받는 순간이었다. AP로서는 52번째 퓰리처상 수상이자 상 제정100주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겹경사였다.

 

 

퓰리처의 금메달


퓰리처상 시상 부문은 저널리즘, 소설, , 역사, 전기, 드라마(무대공연), 논픽션, 음악 등 총 21. 이 중 14개 부문이 저널리즘에 해당된다. 저널리즘 각 부문은 공공서비스 속보(Breaking News Reporting)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 해설보도(Explanatory Reporting) 지역보도(Local Reporting) 전국보도(National Reporting) 국제보도(International Reporting) 특집기사(Feature Writing) 논평(Commentary) 비평(Criticism) 논설(Editorial Writing) 만평(Editorial Cartooning)속보사진(Breaking News Photography) 특집 사진(Feature Photography) 등이다.


매년 발표에서 제일 먼저 호명되는 것은 저널리즘 분야 중에서도 공공서비스 부문이다. 시상 부문들 중에서 최고 권위의 이 상은 취재 보도한 기자 개개인에게 주어지지 않고, 기자의 소속 기관에 주어진다. 그만큼 공공 부문에서 몇 번이나 수상을 했는가는 미국 언론계에서 얼마나 탁월한 언론사인가를 인정받는 척도가 된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가 지난 100년간 각 여섯 번 이 부문에 선정됐고, 워싱턴포스트와 세인트루이스포스트-디스패치가 각각 다섯 번 수상했다. 21개 시상 부문 중 오직 공공 서비스 부문에만 퓰리처의 골드(Pulitzer’s Gold)’로 불리는 금메달이 주어지고 나머지 부문 수상자에게는 상금 1만 달러가 수여된다. 금메달의 한쪽 면에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옆얼굴이, 반대쪽 면에는 윗옷을 벗은 채 인쇄기에 매달려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양각돼 있다.

수상작 선정 과정은 매년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진행된다. [각주:1]2016년 저널리즘 부문에 응모한 기사는 1100여 편. 퓰리처상위원회는 277명의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즘 교육자들을 저널리즘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이 맡은 해당 심사 분야에서 최종 후보 3편을 가려 18명의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위에 제출한다. 이사위는 이 3편의 후보 중 1편을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선정 방식은 과반 투표. 과반을 얻은 응모작이 없을 경우 해당부문의 수상작을 내지 않는다. 로비를 막기 위해 수상작이 발표된 후에야 심사위원과 이사위의 명단이 공개된다. 저널리즘 부문의 심사위원들은 모두 무급으로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한다.


퓰리처상의 수상자가 미국인에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퓰리처상 저널리즘 부문의 수상작이 되기 위한 조건은 미국 내에서 최소한 주간 단위로 발간되는 매체에 보도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공공서비스 부문을 수상한 가디언US는 모기업이 영국 언론사이지만, 가디언US가 에드워드스노든 전 CIA 직원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전국의민간인 사찰 프로그램(PRISM)을 독자적으로 취재해 미국 내에서 보도했기 때문에 수상 기관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


퓰리처상 응모비는 50달러. 응모작마다 해당 언론사의 편집국장이나 혹은 그 이상의 직책에 있는 사람이 왜 이 기사가 수상작이 되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밝힌 공적설명서를 첨부하기 때문에 퓰리처상 응모 전에 사내 경쟁을 먼저 통과해야한다. 퓰리처상 심사 대상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인 만큼, “내가 후보였다는 자천성 홍보도 떠돌기 마련이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이를 막기 위해 수상작을 포함해 최종결선에 오른 세 작품만을 홈페이지에 명시하며 이외에는 공식적인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퓰리처상의 유산


퓰리처상의 가장 큰 효과는 어떤 저널리즘이 탁월한 저널리즘인가라는 모범을 현재의 기자 그리고 미래의 기자들에게 제시한다는 점일 것이다. 퓰리처상위원회는 수상작에 대해 한 문장의 심사평을 낼 뿐이다. 대신 홈페이지에 수상작의 기사를 링크한다. 심사평보다는 수상작 그 자체로 말하겠다는 메시지다.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공공 서비스 부문 수상작들의 스펙트럼은 넓다. 1973년 수상작인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 2002년 수상작인 뉴욕타임스의 9·11 테러 보도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사건들도 있지만 2003년 수상작인 [각주:2]보스턴글로브의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폭로 기사, 2012년 수상작인 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의 학교 폭력 시리즈 등은 지역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는 퓰리처상위원회가 폭발력이 큰 화젯거리뿐만 아니라 가벼운 사건으로 여겨지거나 묻혀있던 공적 혹은 사적인 비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상이 어떻게 체계화된 사회악이거나 구조적 모순인가를 드러내는 문제의식을 높이 산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6년 공공서비스 부문 수상작인 AP의 기사도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르는 칵테일 새우가 어떻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자행되는 노예노동과 연관되는가를 밝힘으로써, 미국 소비자들이 해당 식품의 불매운동에 나서는 한편 2,000여 명의 노예노동자들이 풀려나는 데 도화선 역할을 했다.

퓰리처 수상작의 역사는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면 언론이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에도 머뭇거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0AP 취재팀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7월 미군이 충북 영동 노근리에서 양민을 학살했다는 전쟁범죄를 밝혀내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이 취재팀에 소속됐던 최상훈 당시 AP 서울지국 기자는 한국인으로서 퓰리처상 수상자가 됐다. 미국이 베트남전쟁 중이던 1970년에는 미군이 베트남의 미라이에서 저지른 양민 학살을 폭로한 디스패치뉴스서비스의 세이무어 허쉬 기자가 국제보도 부문을, 1972년에는 미국정부가 베트남전의 불리한 전황을 국민들에게 감추어 왔다는 이른바 펜타곤 백서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가 공공서비스 부문을 수상했다.


퓰리처상 수상작들의 탁월성은 때로 스캔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1981년 특집기사 부문 수상작이었던 워싱턴포스트의 지미의 세계는 마약중독자가 된 여덟 살 소년을 인터뷰해 대물림되는 마약중독의 어두운 현실을 소설처럼 유려한 필체로 그려냈다. 그러나 수상 발표 이틀 만에 취재기자인 재닛 쿡이 가공의 인물을 조작한 것이 드러나 수상이 취소됐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기자 출신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기사로 쿡이 퓰리처상을 탄 것도 온당치 않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도 온당치 않다는 촌평을 남겼다.

퓰리처상 100년의 권위는 저널리즘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도덕을 갖추고 지적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퓰리처의 뜻을 그의 계승자들이 비타협적인 기준을 통해 지켜낸 결과 만들어진 것이다. 탁월한 저널리즘을 실천한 이들을 상으로 격려하고, 그들의 기사를 현장에서 만들어진 교과서로 공유하는 일은 왜 중요한가? 그 답은 조셉 퓰리처가 남긴 아래의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가와 언론은 흥망성쇠를 함께 할 것이다

(Our Republic and its press will rise or fall together).”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5월호




  1. 퓰리처상위원회는 2012년부터 모든 저널리즘 부문 응모를 온라인으로만 받는다. [본문으로]
  2. 보스턴글로브의 취재 과정은 2015년 이 탐사보도팀의 이름을 딴 영화 ‘스포트라이트’로 제작돼, 2016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에 선정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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