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유가족, 뉴스 이용자, 언론인 모두 보호해야

2023. 1. 9. 16:42특집

 

 

피해자와 유가족, 뉴스 이용자, 언론인 모두 보호해야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

 

 

대형 재난 이후 정신적 후유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재단은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 역시 대형 사건사고 후 수개월이 지나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인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보건복지부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발표한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을 자세히 소개한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

 

 

현장 기자에게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하며, 기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를 계속 살펴야 한다.

취재가 끝난 뒤에는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고,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자가 있을 때는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로 1,000여명 이상의 유가족이 발생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과 비통함은 차마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집은 하루 종일 불이 켜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두문불출한 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친정 식구도, 친한 직장 동료도 다 거부한 채 고립된 생활이 이어졌다. 어느 날, 어머니는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은 가족이 자신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제 자신도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재난에서 일어서는 법

 

일단 미장원에서 뒤엉킨 머리카락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어설픈 동정이나 호기심 어린 시선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장원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가족에 대한 험담도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의 문은 그 전보다 더 굳게 닫혔다. 그 뒤로 오랫동안 어머니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2015년, 수도권의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메르스가 퍼져 나갔다. 다른 질환으로 입원 중이던 환자, 간병하던 가족, 병문안을 다녀온 친지들이 연달아 메르스에 확진됐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이 확인된 사람들은 자가 격리됐다. 자신의 몸 안에 바이러스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격리자들을 엄청난 공포로 내몰았다. 수십 번 체온을 재며 온도가 높을 때마다 불안에 떨었다. 자신마저 확진이 되면 어린 자녀들은 누가 돌볼지 눈앞이 깜깜했다. 격리가 해제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웃들이 수군거리고 손가락질을 할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서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나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런저런 걱정 근심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심신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아이들의 등교를 앞두고 선생님과 전화 연결이 됐다. 반 아이들에게 상황을 잘 설명했고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아이는 실제로 학교에서 환영받았으며 다소 의기소침해졌던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활기를 되찾았다. 이웃들도 걱정과 달리 이들을 반겨주었다. 가족들은 빠르게 원래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재난은 엄청난 시련이다.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경제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다. 대응과 복구 과정에서 요구되는 행정적인 절차는 복잡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화재, 붕괴, 대형 교통사고, 감염병 유행과 같은 재난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은 매우 당황스럽고 압도적인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들 내면의 회복력은 어마어마하다. 많은 사람들이 좌절과 절망의 끝에서 결국에는 충격과 상실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수습해 보기로 용기를 낸다. 이렇게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 주변의 반응은 이후의 경로를 결정한다. 당사자를 회복으로 이끌지, 아니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지 말이다. 재난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재난 당사자를 둘러싼 주변의 반응에는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따뜻한 환영, 진심어린 위로, 현실의 짐을 덜어주는 작은 손길로 충분하다.

 

 

이차 가해, 이차 스트레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재난 후 정신적 후유증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재난 경험자 1,390명에 대한 자료를 분석했다.1) 이들 중 156명에서 새롭게 정신질환이 발생했는데, 자연 재난보다 사회 재난을 경험했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 재난으로 부상을 입었거나 질병 피해를 입을 때 정신질환 발생 위험이 증가했다. 주목할 부분은 상당수의 이차 스트레스 요인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재난으로 인해 이웃, 지자체, 정부와 갈등이 있었던 경우, 구호 서비스나 복구 과정에서 제공받은 정보가 신뢰할 만하지 않았을 경우, 국가의 의료 지원이 충분치 않았던 경우 유의하게 정신질환 발병 위험이 증가했다. 재난 직후에는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태 수습을 위해 온정과 관심이 모아지고 사회적인 유대감이 상승한다. 이를 재난 정신건강 측면에서 밀월기(honey moon period)라고 부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밀월기는 매우 짧게 끝나버린다. 온정은 흩어지고, 상당수의 구성원은 이제 이들의 고통에 피로감을 보인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건, 당사자 가족에 대한 루머가 퍼지거나 원치 않는 신상 공개로 인해 이차 가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차 스트레스는 당사자에게는 재난 자체로 인한 트라우마와 상실감 못지않은 고통이 된다. 세상을 향한 불신과 분노는 이들의 회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달리 말하면, 재난 당사자에게 사회적인 온정과 지지가 계속된다면 이들이 더 잘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난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는 직접 당사자와 가족뿐 아니라 재난 업무 종사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구조, 구급을 담당하는 소방과 경찰 공무원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코로나19 유행에 대응한 의료진 가운데 심각한 우울과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인 경우도 30%에 이르렀다.2) 재난 현장과 당사자들의 고통을 가장 가까이서 보게 되는 언론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취재에 참여했던 기자 중 25.4%가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유의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였다.3) 기자들은 현장에서 맞닥뜨렸던 피해자들의 비명과 처참한 현장이 불쑥 떠오르고, 오열하는 유가족이 자신의 부모 혹은 배우자와 겹쳐 보여 괴롭다고 말한다. 재난 현장 취재라는 본연의 업무로 인해 발생한 ‘산업 재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기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으로 비춰질까봐 우려했다. 만일 데스크나 회사가 강인함을 강요하는 경직되고 보수적인 조직이라면 이러한 어려움을 드러내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애써 외면한 트라우마가 속에서 곪은 채로 굳어져 버리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불안증,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난 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촉구하는 ‘트라우마 공감 언론’은 언론인의 심리적 안전과 건강이 확보될 때 가능하므로, 언론인의 트라우마 관리는 반드시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인은 트라우마 고위험군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지난 11월 25일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 등과 함께 추진단을 구성해 마련한 이 가이드라인은 재난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재난 당사자 및 가족, 대응 인력, 현장 취재 언론인, 뉴스 이용자 등 누구도 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가치를 담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트라우마의 이해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세부 지침 △언론인 트라우마 관리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세부 지침’에서는 준비-취재-보도 단계별로 각각 발생할 수 있는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고 회복을 지향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담고 있다.

 

1. 준비 단계

언론인이 재난 트라우마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하는 단계이다. 준비 단계에서는 언론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난 보도로 인한 트라우마 최소화를 위해 연간 1회 이상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기자는 출동하게 될 재난 현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출동에 대비하고 자신의 건강 상태가 재난 현장 취재에 적합한지 스스로 점검하고 데스크와 공유한다.

2. 취재 단계

인터뷰 전 반드시 취재원의 신체적·심리적 상태를 확인해야 하며 심리적으로 충분히 안정되어 있는 재난 당사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재난 당사자에 대한 취재는 자발적 의사를 바탕으로 하며, 재난 당사자가 통제감을 최대한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인터뷰 중에는 상투적인 위로 대신 적극적인 경청을 통해 공감과 관심을 표현하고, 재난 당사자를 인정과 격려하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언론사와 데스크는 기자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하고 기자의 신체적, 심리적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3. 보도 단계

재난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상 정보를 공개하거나 사생활을 노출함으로써 당사자가 ‘이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유가족이 오열하거나 흥분하는 모습을 내보내는 건 재난 보도의 오랜 관습이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재난 당사자나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부추기거나 낙인을 찍는 보도, 지나치게 공포심과 불안감을 자극하는 제목, 참혹한 장면을 여과 없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영상 역시 지양해야 한다. 피해 사실뿐만 아니라 재난 당사자의 복구를 위한 노력, 공동체의 기여 등 긍정적 메시지를 균형 있게 보도하여 재난 당사자가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주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 사회 지원 서비스 정보나 콘텐츠를 안내하여 재난 정신건강에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언론인 트라우마 관리’에서는 취재·보도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언론인의 트라우마를 예방하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기자는 스스로 트라우마 고위험 직군에 속해 있음을 인지하고 자신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즉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조직에 알려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족과 친구, 동료 등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재난 상황이나 취재 대상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다. 언론사 조직 차원에서 유의해야 할 일도 있다. 가급적 기자를 현장에 단독으로 파견하지 않고, 현장 기자에게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하며, 기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를 계속 살펴야 한다. 취재가 끝난 뒤에는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고,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자가 있을 때는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모두를 보호하는 안전한 사회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은 세부 지침을 확정짓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뉴스 이용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체에 경악했고, 참혹한 현장에서 여전히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혼란스러워했다. 불일치하는 정보들은 뉴스 이용자의 트라우마를 더 자극했다.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영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기준이 필요했다.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참여했던 현직 기자와 언론계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 세부 지침을 현장에서 활용하도록 제안했다. 그 결과 방송기자연합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논의가 이루어졌고, 참사 3일째에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와 <YTN>에서는 가급적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현장음을 소거하고 정지 화면 위주로 제한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몇몇 언론사에서는 취재 기자와 참사 영상을 다룬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 치료를 지원했다. 당사자와 유가족을 이차 가해로부터 보호하고, 뉴스 이용자가 자극적인 영상에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며, 언론인이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받는 트라우마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돕고자 하는 취지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취재와 보도 현장에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지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본래의 취지대로 당사자와 유가족, 뉴스 이용자, 언론인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심리적 안전감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는지 효과성도 평가되어야 한다. 재난 트라우마로부터 보호받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 모두의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 세부지침. *출처: 국가트라우마센터

 

 

 

 

 

 

 


1) 이나빈, 이정현, 유선영, 심민영 (2020). 재난 피해자 정신질환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이차 스트레스 요인.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 국가트라우마센터 (2021). 코로나19 대응 인력의 정신건강 및 소진 실태 조사.

3) 이미나, 하은혜, 배정근 (2015). 세월호 취재 기자의 심리적 외상의 지속 양상과 영향 요인에 관한 종단연구. 《한국언론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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