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밍’ 사회의 그늘…올바른 정보 습득으로 극복해야

2023. 12. 22. 15:30포럼

온라인 여론몰이와 바람직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방향

written by. 송용준 (세계일보 문화체육부 기자)

 

 
 
 
 
 

악성 댓글, 사이버 자경단, 온라인 신상털기. 모두 주로 온라인 익명성에 기대어
혐오와 비난 등의 글이 빠르게 퍼져 나가는 현상인 ‘플레이밍’의 일종이다.
올해 나온 책 ≪플레이밍 사회≫를 살펴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온라인 여론몰이 현상과 바람직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방향을 고민해 본다.

 

 

아쉽게도 저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저자의 글을 행간으로 읽다보면 결국 플레이밍의 긍정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 습득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토 마사아키 세이케이대 교수의 ≪플레이밍 사회≫

 

  어떤 사안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그에 대한 주변의 의견을 궁금해 한다. 그때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온라인 댓글이다. 어느 정도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변의 여론을 파악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댓글들은 대체로 과격하거나 한쪽으로 경도되는 경우가 많다.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던 사건이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나도 이전에 넘쳐났던 비난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주로 온라인을 통해 발생하는 혐오 발언, 비방과 비난 등의 글이 빠르게 올라오는 현상을 ‘활활 타오른다’는 의미인 ‘플레이밍(flaming)’, 또는 일본식 표현으로 ‘염상(炎上)’이라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주로 익명성 혹은 가명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플레이밍은 사회적 규범과 예의를 무시하거나 어길 때가 많고, 피해자에게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주는 경우가 흔하다.

현대 사회의 거울, ‘플레이밍’ 

  일본 IBM과 소프트뱅크 등 굵직한 IT 기업에서 일했고 지금은 세이케이대학에서 미디어론을 가르치고 있는 이토 마사아키 교수는 늘어만 가는 플레이밍이 더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현실을 충실하게 비추는 ‘사회의 거울’이 됐다고 인식한다. 플레이밍 분석이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현대 사회가 어떤 대립 구조와 분쟁 상황을 안고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토 교수가 플레이밍의 발생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플레이밍 현상의 사회적 의미와 맥락을 밝히고자 쓴 책이 바로 ≪플레이밍 사회≫(유태선 옮김, 북바이북)다.

  이토 교수는 플레이밍 현상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회운동을 만들어내는 등 ‘좋은’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본다. 대신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라는 정치적 이념 갈등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 저자는 ‘신자유주의’라는 또 하나의 입장을 편입시킨다. 저자가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정책적 측면이 아니라 경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감시와 제재가 반복되는 사회규범적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플레이밍은 단순한 좌우 대립 구도로 확연하게 드러나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결합된 방식으로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 이토 교수의 생각이다. 이런 분석 틀을 바탕에 깔고 이토 교수는 일본에서 벌어진 여섯 가지 사례를 통해 플레이밍 사회를 살펴본다.

  1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속 늦게 영업하거나 돌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비난하는 ‘자숙경찰’의 등장에 주목한다. 팬데믹뿐 아니라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특히 자숙하지 않아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이 많다는 비난 속에는 “연대 책임을 따지며 공동체 질서를 지키는 일이 중시되는” 전체주의적 사고와 “자기 책임이 요구되어 각자가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뒤섞인 것이라고 이토 교수는 해석한다. 이런 사회에서 코로나 감염자는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로도 취급된다. 약자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여겨지면서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논리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재특회)의 재일교포에 대한 혐오 발언에서도 발견된다.

  2장에서는 자기가 일하던 곳의 상품 등에 장난을 치고 이를 SNS에 올리는 행위인 ‘아르바이트 테러’에 주목한다. 여기에서는 주목받고자 하는 자기 연출 시장의 등장과, 이들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플레이어끼리 감시하는 속에서 규범과 규칙이 정해지는 과정이 발견된다.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이 장난을 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해고당하는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불특정 다수의 비난이 쇄도하지 않았다면 훈계 정도로 그쳤을 일이다. 즉 아르바이트 테러범에 대한 처벌의 무게는 실질적으로는 제삼자로부터 받은 비난의 크기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3장에서는 미투 운동과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운동 등의 사례를 통해 ‘해시태그 운동’의 명과 암을 분석한다. ‘해시태그 운동’은 플레이밍의 긍정적인 요소로 많이 이야기된다. 짧은 시간 엄청난 동원력으로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를 휩쓰는 새로운 물결이 되기도 한다. 해시태그를 통해 사람들은 모여 연대하고 나뉘어 적대감을 느낀도록 하는 사회적 운동의 프레임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소수의 목소리가 묵살되지 않도록, 피해자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부정이 어둠에 묻히지 않도록 사용된다면 사회에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시태그 운동이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일부 인플루언서의 목소리에 끌려가는 형태가 되기도 하고 한 방향으로 의견이 쏠리는 군중현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과격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사회운동과 포퓰리즘에 의한 군중행동을 분리해 파악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의’ 주장하는 온라인 여론 재판 

  4장에서는 나이키의 반차별 마케팅을 통해 소수자 차별에 대한 좌파의 반차별 운동과 이에 맞서는 우파의 반·반차별 운동 양상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나이키의 상업적 야심이 좌우 양쪽에 정치적인 플레이밍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한다.

  나이키는 2020년 일본에서 차별 받는 재일교포나 아프리카 혼혈 등 세 소녀가 축구를 통해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그리는 광고를 내보냈다. 이는 일본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좌파의 반차별 지지 목소리에 대해 우파는 좌파가 젠더나 인종과 관련된 소수자만 사회적 약자로 간주하고 보호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다수자 안에 진정한 약자가 있고 자신들이 그렇게 역차별 받는 존재라는 반·반차별의 논리로 반격한다. 그 과정에서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가 끼어든다. 나이키가 반차별을 통해 상업적 이득을 노렸지만 그 결과는 플레이밍에 의한 사회 갈등의 강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5장에서는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등이 플레이밍의 타깃이 되는 이유를 ‘공감’이 시장과 결합하면서 공감의 구조가 바뀌었기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파악한다. 유명인에 대한 플레이밍이 강화된 이유는 ‘투과성’과 ‘익명성’이라는 두 가지 특성의 상보적인 관계 때문이다. 비난을 당하는 쪽에서 보면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언행이 누구에게나 노출되는 투과성이 높아졌다. 한편 비난하는 쪽에서는 게시판 등의 장소에서 발언의 익명성이 높아졌다. 투과성 때문에 유명인은 무엇을 해도 이야깃거리가 돼 버리고, 그 익명성 때문에 팬은 무슨 말을 해도 용서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감을 더 많이 얻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념이 결합되면서 공감은 집계해야 할 자원이자 조달해야 할 재화로 취급되고 공감하는 사람은 소비자로 전락한다. 이런 공감시장주의는 공감의 구조를 바꾸고 공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용시킨다.

  마지막 6장에서는 논란을 일으킨 유명인에 대한 지지를 취소하고 외면하는 행동인 ‘캔슬 컬처’의 양면성을 지적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 감시하고 사적 제재를 가한다. 유명인의 과거 잘못이 드러나 사냥감이 되면 몰려들어 공개 처형을 하는 ‘캔슬 컬처’로 이어진다. 매우 사소한 잘못을 했더라도 엄한 처벌을 요구한다. 정상참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효도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나 옛날 일인지 중요하지 않다. 변론 과정도 생략된다.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플레이밍 참여자들은 ‘정의’를 자처한다. 피해자에 대한 관용과 공감을 근거로 자신의 불관용성을 정당화한다. 저자는 “캔슬 컬처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돼야 한다. 최초의 수단으로 이용되면 이성적인 논의의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모종의 폭력이 돼버린다”고 지적한다.

 

 

편향성 극복하고 사실 검증 노력해야 

  이런 플레이밍 사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토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는 “플레이밍은 특정 개인을 향하면 사람을 상처 입히거나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며 “플레이밍은 긍정적·부정적 측면이라는 양가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아쉽게도 저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저자의 글을 행간으로 읽다보면 결국 플레이밍의 긍정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 습득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보를 얻을 때 하나가 아니라 여러 다양한 출처에서 찾아보고 확인하며 비교하는 자세, 사실 검증을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려는 부지런함, 정보 제공자의 편향성 체크, 그리고 주어진 정보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고민 속에 정보를 소비하려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 올바른 정보를 습득해야 올바른 의견 제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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