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신문에 숨어있는 ‘심쿵’한 복습의 원리
양승진, 코리아헤럴드 기자·주니어헤럴드 에디터
영자신문이 영어학습 자료로 활용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여러 장점 중에서 ‘주기적인 반복’과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사실 영자신문을 정기구독해서 매일 보는 독자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매일 기사를 읽으면서 영어기사의 내용과 다양한 표현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이런 주기적인 반복과 인간의 기억력의 특성이 만나면 효율이 높아집니다. 일단 익숙한 그래프를 하나 보시죠.
네, 유명한 ‘망각 곡선’입니다.
망각 곡선(Forgetting curve) 가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남아있는 감소의 정도를 말하는 가설이다. 이 곡선은 기억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없을 때 정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실되는 정도를 보여준다. 기억이 강할수록 더 오랜 시간 후에 정보를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망각 곡선의 전형적인 그래프는 사람이 며칠, 몇 주에 걸쳐 배운 새로운 지식이 의식적으로 학습한 지식을 복습하지 않는 한 기억한 내용이 반으로 주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 위키백과)
위의 내용을 좀 더 설명 드리면,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Ebbinghaus 1855~1909)는 학습 후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되며, 1시간 뒤에는 50%가 하루 뒤에는 70%가 한 달 뒤에는 80%를 망각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인간의 망각 곡선을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 에빙하우스가 강조한 것은 ‘분산 반복’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다음날 다시 1시간 복습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보다, 10분 후, 1일 후, 1주일 후, 1달 후 주기적으로 ‘분산 반복’을 하면 학습한 내용이 장기기억에 보존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하지만 영어학습을 하면서 이렇게 의도적인 복습을 꾸준히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매일 공부한 내용을 기록하고 일정에 따라 분산해서 복습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부담입니다. 하지만 영자신문을 ‘매일’ 꾸준하게 읽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분산 반복’을 통한 복습을 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국내 영자신문은 국내 사건, 사고, 이슈를 매일 업데이트해서 보도합니다. 따라서 기사의 내용이 주기적으로 반복됩니다.
#영자신문이 분산 반복 학습에 좋은 이유
1. 시사적인 사건, 사실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꼭 영자신문이 아니라, 일반적인 신문의 속성이 주기적인 반복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물론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거의 1년 주기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해도 하루 지나고 기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나오기 때문에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죠.
예전에 정부 부처를 출입할 때, 처음 1년은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보도자료와 기타 정부 기관에서 참고로 주는 자료들이 모두 생소해서 기사 쓰기가 난감했지요. 하지만 1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행사와 자료가 나오더군요. 이때부터 기사 쓰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기존에 썼던 기사가 있기 때문에 이걸 참고로 해서 기사 구조를 미리 만들어 놓고 새로운 사항을 리드에 넣고 나머지 수치나 세부사항을 고치면 비교적 빨리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월, 분기, 반기, 년간 단위로 각종 행사나 명절이 돌아오고 비슷한 행사가 열리기 때문에 영자신문을 1년 정도 구독해서 매일 본 독자의 경우 1년이 지나는 시점부터 거의 대부분의 기사가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배경지식도 일정 분량 쌓였고 관련 영어표현도 숙지가 되어 있는 상황이죠. 이런 경우 기사의 헤드라인과 리드만 읽어보아도 대강의 내용을 빨리 파악하게 됩니다. 자신의 모르는 새로운 정보만 골라서 속독이 가능한 수준이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망각 곡선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기사를 읽다 보면 세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복습을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영어표현을 무작정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잊을 만하면 계속 살아있는 최신 기사를 통해서 반복해서 표현을 접하기 때문에 장기기억으로 넘어갈 확률이 올라갑니다.
2. 영자신문에서 기사의 전형적인 흐름도 반복이 숨어있다
기사는 주기를 가지고 형태를 변화합니다. 처음 사건이 발생하면 300-400단어의 비교적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를 작성합니다. 사건의 핵심을 사실 위주로 기술합니다. 이후 후속기사는 전문가의 의견이나 상세한 배경이 추가됩니다. 보통 기사의 중후반에 추가됩니다. 새로운 관련 사실이 나오면 업데이트 기사가 나오는데, 기존에 보도된 내용은 기사의 뒤로 밀리고 새로운 사실이 맨 위에 있는 리드를 구성합니다. 조금 더 지나면 기사에 나오는 사건이나 이슈를 심층 분석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기자가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이슈의 다양한 부분을 분석합니다. 상충되는 의견도 최대한 포함됩니다.
기사가 이정도 주기를 돌고 있으면 중간에 사설이나 칼럼에서도 해당 이슈를 주제의 글이 나옵니다. 사실을 포함해서 주장과 의견이 첨가됩니다. 물론 맨 처음에 나온 스트레이트 기사의 핵심 표현이 다시 변주됩니다. 이렇게 주기를 가지고 같은 사건이나 이슈가 조금씩 변형되어서 기술되기 때문에 표현력을 높이는데 효과적입니다. 같은 내용을 다양하게 표현된 기사를 통해서 본인의 영어 구사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영어기사가 제공하는 ‘약간씩 다른 문맥’ 입니다. 단순 반복해서 단어를 외워도 금방 뇌리에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다른 문맥(context)에서 조금씩 변형된 영어표현을 꾸준하게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외우게 되지요. 동시에 영작이나 회화에 활용하는 것도 수월해집니다.
anticorruption(반 부패)으로 검색하니 관련 기사가 보여진다. 기사의 내용이 다른 문맥에서 반복되고 있다.
3. 기사 후반부는 필러(filler)가 반복된다
영자신문 기사의 맨 앞에는 새로운 사실이 요약되는 ‘리드’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의 모든 부분이 새롭지는 않습니다. 후반부에 가면 이미 기존 기사에 나왔던 내용이 요약되어 나옵니다. 이 부분을 필러(filler)라고 부릅니다. 필러(filler)는 원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이미지인데요, 사실 실제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기능을 합니다. 편집국에서 오전에 기사 아이템 회의를 하고 기사를 배정할 때 대략적인 단어수를 제시하지만, 기자들은 주어진 분량보다 약간 더 많이 씁니다. 이렇게 늘어나는 추가적인 부분이 필요한 것은 종이신문의 특성 때문입니다.
기사가 송고되고 편집기자가 페이지를 구성하다 보면 사진이나 헤드라인의 크기 등의 여러 요소로 인해서 한정된 지면에 기사를 다 넣을 수 없기 때문에 기사를 임의로 뒤에서부터 자르게 됩니다. 이렇게 뒤에서부터 잘려나가게 되는 부분을 기자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분량을 초과하는 경우에 필러(filler)에 해당하는 관련 사건의 배경이나 기존 기사를 요약하는 부분을 넣게 되어 있지요.
외신이 한국관련 뉴스를 작정하면 항상 맨 뒤에 이런 필러(filler)를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서 역사적인 배경설명을 넣는 것인데, 신문에서 편집을 하다가 잘려나가도 상관이 없는 부분입니다.
The 1950-53 Korean conflict ended in a truce, not a peace treaty. The peninsula remains technically at war, divided between north and south. North Korea regularly threatens the South and its major ally, the United States.
(1950-53년 한국전쟁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정전으로 끝났다. 한반도는 엄밀하게 따지면 현재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 중이다. 북한은 주기적으로 한국과 동맹국인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좀 더 포괄적으로 보면 기사가 업데이트 되면 기존의 내용은 계속 요약되어서 기사본문의 밑으로 배치됩니다. 추가적으로 필러(filler)도 들어가지요. 영자신문을 계속 읽으면 이런 filler에 익숙해지고 언제 filler가 시작되는지도 빨리 알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필러(filler)를 통해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는 것도 배우게 되고 기사의 배경을 반복해서 눈에 익히게 됩니다.
4. 증가하는 배경지식을 통해 단어의 뜻을 유추 할 수 있다
영자신문은 영어라는 언어를 매개로 새로운 사실을 흡수하는 플랫폼입니다. 읽을수록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쌓입니다. 배경지식의 축적은 기사의 이해도를 높이며 영문 독해 속도도 올려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반복되는 흐름을 가진 기사를 읽어가면서 배경지식이 높아지면 새로운 단어나 표현이 나와도 뜻을 유추하기 쉬워집니다. 사전을 찾지 않으면서 영자신문을 읽고 동시에 새로운 표현을 문맥을 통해서 이해하고 외우게 되는 것이죠. 단순하게 많은 양의 독해를 하는 것은 이론상 좋지만 쉽지 않습니다. 기사가 반복되고 변주되는 흐름에 맞춰 지속적으로 ‘분산 복습’을 하면서 기사에 나오는 모르는 표현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표현을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새로운 표현을 배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뜻을 파악하지 못하면 내용의 핵심을 모르게 되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기사를 통해서 최근에 지속적으로 보게 되는 새로운 표현의 뜻을 일단 혼자서 유추해 보다가 어느 순간 사전을 찾아서 내가 예측한 뜻이 맞는 것으로 확인되면 그 단어를 바로 외우게 되더군요.
결론입니다. 영자신문은 한정된 지면에 매일 다양한 사건, 사고, 이슈에 대한 기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기사의 내용은 주기적으로 순환, 반복됩니다. 독자가 꾸준하게 기사를 읽으면 배경지식이 쌓이고 같은 사건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면서 동시에 본인이 세밀하게 계획하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복습을 하게 됩니다. 어학에서 ‘반복’이 중요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분산 반복’의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다독다독 독자분들도 오늘부터 조금씩이라도 영자신문 기사를 읽어보세요. 자신도 모르게 ‘분산 복습’을 통해서 좋은 영어표현을 배우실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