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송을 하는 이유? ‘역사 속에 길이 있다’ - EBS ‘역사채널e’
[요약] EBS ‘역사채널e’는 2011년 가을 편성 때부터 방송됐습니다. 항간에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중에 새롭게 밝혀진, 혹은 알려질 가치가 충분한 것들을 아이템으로 선정, 심층 분석하여 시청자들이 역사를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제작합니다.
손복희, EBS 교양문화부 부장
EBS ‘역사채널e’는 2011년 가을 편성 때부터 방송됐다. 그전에는 ‘지식채널e’의 일부 아이템으로 선을 보이다가 ‘역사 알기’의 중요성을 느낀 EBS가 따로 독립 편성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잘 알 듯한 아이템은 배제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이템을 찾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그러자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템은 금방 동나버렸고 제작진이 아무리 공부하고 고민해봐도 아이템 잡기는 점점 힘들어졌다.
아!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사 교육이 필수가 아니던 때를 거치면서 모두가 알 듯한 역사적 사건도 그게 언제 적 일인지, 왜 그 일이 발생했는지도 모르는 청소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때까지 우리가 고민해서 만든 내용을 몇 명이나 이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제작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항간에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중에 새롭게 밝혀진, 혹은 알려질 가치가 충분한 것들을 아이템으로 선정, 심층 분석하기로…. 그러면 역사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5분 안에 엮는 기승전결
역사교육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입담 좋은 이야기꾼이 흥미진진하게 강의하는 건데, 그러자면 기승전결 내용을 전개하는데 족히 30~40분이 걸린다. 그런데 ‘역사채널e’는 5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영상과 자막, 음악·음향효과만으로 메시지를 모두 전달해야 한다. 해서 기-승-전-결로 엮을 수 있는 소재인지, 이야기 구조를 쌓아갈 만한 자료(문헌 자료, 사진, 그림 등)가 충분한지 등 검토를 거친 후에야 아이템으로 선정된다.
내용을 전개할 때 무엇보다 가장 큰 숙제는 자료 해독을 할 수 있느냐다.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은 고맙게도 한글로 번역돼 누구나 인터넷으로 쉽게 열람할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실록 내용만으로 우리 역사를 다 설명할 순 없다. 여기저기 학계의 발표연구를 검색하다 보면 시쳇말로 ‘깨알 같은’ 유물 발굴소식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관련 논문에 웬 한자어가 그리 많이 쓰여 있는지, 한자 해독을 위해 자연스레 옥편을 손에 들게 된다. 5분짜리 짧은 다큐멘터리 속에 사건의 핵심을 녹여내려니 자료도 여러 편 읽어야 한다. 또 내용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자문뿐만 아니라 최종점검 겸 검수 단계도 거쳐야 한다. 그래도 결과물을 내놓을 때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삽화 위에 실사 화면을 얹거나(위),
반대로 실사 화면에 삽화를 삽입하기도 한다(아래).
지나간 세기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다 보니 비주얼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영상 자료가 군데군데 비어 있곤 했다. 재현 촬영을 할 수도 있지만 최근 다큐멘터리의 경향을 좇아 삽화나 애니메이션을 활용했다. 실제 적용해보니 실사 화면과 삽화는 뜻밖에 잘 어울렸다. 단, 삽화를 실제 상황과 맞게 그리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거쳐야 한다. 의상 하나, 머리 모양 하나하나를 그 시대에 맞게, 그 사람의 신분에 맞게 묘사해야 하기에 또 관련 자료를 뒤적여야 한다. 때로는 우리 프로그램이 ‘역사 예찬론’적이라는 비평을 게시판에 남기는 시청자도 있다.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는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많은 국내 역사학자의 지론에 따르면, 세계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처럼 한 왕조가 500년 이상을 누린 적은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우린 세 번이나 있다. 신라 왕조 1000년, 고려·조선 왕조 각각 500여 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어느 왕조건 150년을 주기로 흥함과 쇠함이 있다고 한다. 한 왕조가 오래가다 보면 흥함과 쇠함을 고루 겪게 된다. 굳이 쇠함만 보고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려는 건 아마도 잘못된 식민사관의 영향이 아닐까? 아니면 그냥 역사를 단편적으로 일부분만 본 결과일 것이다. 역사를 소재로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전문가들은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달라”고 한결같이 당부한다. 일제의 뿌리 깊은 식민사관 극복의 숙제가 21세기를 사는 오늘도 큰 숙제인 것만은 사실이다.
#잊지 않고 바로 알아야 할 우리 역사
그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다룬 소재는 물론 현재와 가장 가까운 왕조로서 기록이 그나마 남아 있는 조선시대다. 몇몇 학자의 지방에 대한 기록과 생활사를 다룬 서적들 빼고는 단연코 왕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 지배적이다. 왕의 정치와 생활을 통해 그 시대의 분위기나 백성의 삶을 유추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단연코 뛰어난 업적을 남긴 왕은 조선 제4대 왕, 세종이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글자인 한글 창제, 측우기를 비롯한 각종 과학기구 발명 등 우리가 잘 아는 업적들 외에 ‘역사채널e’에 소개된 대왕 세종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업적은 다음과 같다.
- 재임 초기 10년간 가뭄이 이어지자 경회루 동쪽에 초가를 짓고 거기서 집무를 보고 잠을 자며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농사 현장을 찾아가 직접 백성과 대화를 나누어 그 불편함을 알고자 했고
- 여종이 아이를 낳으면 200일, 그 남편에겐 30일 출산휴가를 주었으며
- 노인 공경 및 효도를 강조하고
- 버려진 아이들의 입양을 자유로이 허락하고 아이를 버린자를 찾아 고발하면 포상하고
- 장애인을 위한 전문 직업 창출, 시각장애인 단체에 노비와 쌀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사형수에게 3심제를 실시하고
- 흉년이 들면 왕 가족들의 재산을 축소해 백성들과 나눴다. 재위 32년 동안 세종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는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그다음으로 가장 많이 선택된 아이템은 일제 강점기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고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역사. 그래야 극복 가능한 우리의 잊힌 모습들을 ‘역사채널e’에서는 다음과 같이 다루었다.
- 안중근 의사의 무덤조차 알 수 없게 처리한 일제. 뤼순감옥 뒤뜰에 묻혀 있는 수십 구의 유해 중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파헤쳐본 ‘네 개의 단서’ 편.
- 자연스럽게 조선어를 말살시키고 일본어 상용화 정책을 펼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 ‘강요된 선택’ 편.
- 일제 강제노역 60여 년이 지나도 한국인 희생자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돼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청춘만장’ 편.
- 일제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한국의 표범을 다룬 ‘사라진 기억’ 편.
- 조선시대 종합예술가인 기생을 비하하고 상품화한 일제의 만행 ‘기생엽서’ 편.
-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이 높던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으로 부임하자 고려청자 불법 도굴과 일본 반출 열풍이 일어난다. ‘고려청자를 찾아라’ 편.
- 조선의 대표 법궁이던 경복궁을 훼손하고 궁궐 일부를 떼 내어 팔아넘긴 일제의 궁궐 훼손행위 ‘경복궁의 눈물’ 편.
-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기 위한 비자금인 내탕금을 상해은행 계좌에 넣어둔 고종. 하지만 일제는 이걸 몰래 찾아 쓰고 빈 통장을 만든 후 광복 후에도 온전히 돌려주지 않는다. ‘호머 헐버트의 진실’ 편.
#조상들의 지혜를 캐내는 재미
이외에 우리의 성(姓)을 일본의 씨(氏)로 바꾸어 조선인의 뿌리를 흔들고자 한 ‘창씨개명’ 편이 있다. 우리 국민의 약 20%가 개명하지 않았으며, 자녀 교육 불이익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개명했더라도 이누코 구마소(犬子熊孫: 개자식이된 단군의 자손)나 이누쿠소 구라에(犬糞食衛: 개똥이나 먹어라) 등 우스갯말로 바꾸어 저항한 조상의 해학과 유머를 엿보았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외로운 싸움에 함께해준 은인들인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3·1운동을 세계적 이슈로 부각시키는 데 기여한 캐나다인)와 후세 다쓰지 변호사(억압받던 조선인을 위해 평생 자신의 조국과 싸운 일본인) 이야기는 특히 네티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아이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제작진이 더욱 고마워하는 사람은 독일에서 온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다. 그가 남긴 1910년대 조선의 여러 풍경은 영상 소스가 없어서 고생하는 우리에겐 한 줄기 빛이었다. 일제가 그렇게 깎아내리고 훼손하고 싶어 했던 조선의 아름다운 문화와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영상 필름에 담아 보관해주시다니. 베버 신부는 조선의 미술품에도 관심이 높아 자신의 돈을 털어 겸재 정선 화첩을 일본인으로부터 사들여 잘 보관했다. 2005년에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무상으로 대한민국에 기증까지 해주어 오늘날 우리는 겸재의 화첩을 볼 수 있게 됐다. 현재 50억 원 가치에 달한다 하니,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베버 신부의 행적을 볼 때 그가 진정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사랑했음은 분명하다.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기록한 조선의 모습 '고요한 아침의 나라' 편
“조선은 내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나라였다”는 베버 신부의 말처럼, 외국인의 시각에서도 그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조선, 조선인. 이런 우리나라, 우리 조상에 대해 우린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오로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친 세종, 백성을 위한 학문을 추구한 실학파들,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방정환선생 등이 선포한 ‘아동 인권 선언문’에 깃든 아동 인권정신을 잘 들여다보자.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인다. ‘역사채널e’ 제작진은 이런 조상들의 지혜를 캐내는 재미로 방송을 만들고 있다. 한 편 한 편 방송을 접하는 중에 조상의 따사로운 마음씨가 가랑비에 옷 젖 듯 은연중에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