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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의 검은 뒷거래 밝혀낸 탐사보도

다독다독 (多讀多讀) 2016. 10. 26. 17:00



홍예진, 미네소타주립대 매스커뮤니케이션 박사



[요약] 뉴욕타임스와 뉴잉글랜드 탐사보도센터의 공동 취재 및 분석으로 미국의 각종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싱크탱크들이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대가로 기업 홍보와 로비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미국에서 싱크탱크는 재정적으로나 정치적 이념으로부터 독립적인 연구기관으로 입법, 행정, 사법, 언론에 이어 5라고 할 정도로 정책 입안 과정에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어 싱크탱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각종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싱크탱크들이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대가로 기업 홍보와 로비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미국에서 싱크탱크는 재정적으로나 정치적 이념으로부터 독립적인 연구기관으로 입법, 행정, 사법, 언론에 이어 '제5부'라고 할 정도로 정책 입안 과정에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싱크탱크는 '학생 없는 대학'이라고 불릴 만큼 전직 정부 관료, 대학 교수, 비정부기구 인사 등 고급 인력으로 구성되어 각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사회 내에서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  


이러한 싱크탱크들이 기업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특정 기업에 유리한 안건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거나 기업 홍보에 앞장서는 등 독립적인 연구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실추시키고 기업을 위한 로비스트로 전락한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브루킹스는 미국 내 정치학자들에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연구소로 미국 언론 인용 빈도수에서 단연 1위를 지키고 있다. 

뉴딜 정책과 마셜플랜, 유엔, G20까지 수많은 정책 아이디어가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나왔다.(출처: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



#브루킹스연구소의 적극적 뒷거래


특히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브루킹스 연구소가 굴지의 기업들과 뒷거래를 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뉴욕타임스와 비영리 탐사 언론사인 뉴잉글랜드탐사보도센터(New England Center of Investigative Reporting, NECIR)는 공동으로 브루킹스연구소가 기업과 주고받은 기밀 서신과 내부 기록 등 수천 페이지분량의 문건을 분석해, 지난 8월 7일자 뉴욕 타임스 기사를 통해 싱크탱크와 기업 간의 유착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건에는 미국 최대 은행이자 브루킹스연구소의 최대 기부 기업이기도 한 JP모건체이스와 마이크로소프트사, 글로벌 투자회사인 K.K.R과 일본 기업 히타치 등 90여 개에 달하는 기업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브루킹스연구소는 기업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에 대해 다양한 방법의 대가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기 전에 기업과 상의해 보고서 내용을 조정하거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프로젝트 초안을 기업과 공유해 연구의 방향을 재설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특정 기업에 유리한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발표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업과 정부 고위 관료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한 각종 행사를 주최하는 데 앞장섰다. 기부 액수가 큰 기업을 연구자료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홍보한 정황 또한 찾을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미국 최대 주택 건설업체인 레나코퍼레이션(이하 레나)과 브루킹스연구소의 관계에 주목했다. 레나는 정부 예산 80억 달러가 들어가는 샌프란시스코의 불모지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중, 이 사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지원군을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브루킹스연구소였다. 연구소 부회장인 브루스 카츠(Bruce Katz)는 2010년 7월에 “이 사업 계획은 생산적이며, 레나와 브루킹스는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가 될 것”이라는 서신을 직접 보냈고, 결국 브루킹스는 레나의 다른 부서로부터 약 40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이후 브루킹스는 이 사업을 1906년 지진 복구 사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재개발 사업이며 미국을 혁신시킬 3대 사업이라고 홍보하고, 레나의 이 사업에 각계 각처의 적극적인 협력을 제안했다. 또한 브루킹스는 언론사들이 재개발 사업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를 쓰도록 돕겠다고 레나 측에 제안하는가 하면, 한발 더 나아가 레나에서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임원인 코피 보너를 선임연구원으로 채용했다. 그 후 브루킹스는 레나로부터 10만 달러의 기부금을 더 받았다.


브루킹스연구소 측은 기업 유착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뉴욕타임스에 기사가 나간 직후 연구소 웹사이트에 스트롭 탤보트 연구소장 이름으로 반박문을 게재했다 . 뉴욕타임스 기사는 연구소의 임무와 역할을 원천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기부 기업과 연구소의 관계를 왜곡 보도해 연구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 브루킹스의 입장이다. 이 반박문에서는 또한 브루킹스에서 연구자와 로비스트의 경계는 단 한 번도 모호한 적이 없이 언제나 명료하고 투명하다고 밝히면서, 기자들이 수천 페이지의 문건에서 맥락을 무시하고 일부 문장을 짜깁기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욱이 브루킹스연구소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중요한 증거들은 무시해 버린 채 기자들은 그들이 믿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고 반박했다.



#싱크탱크 보고서 신뢰도 의문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의 가장 대표적이며 유서 깊은 싱크탱크로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과 함께 정부의 정책 입안에 큰 목소리를 내왔다. 뉴딜 정책과 마셜플랜, 유엔, G20까지 수많은 정책 아이디어가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나왔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사회과학 특히 경제, 도시정책, 행정, 외교, 세계경제와 개발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해왔으며, 우수한 고급 브레인들이 각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를 발표해 왔다. 워싱턴 DC에 다섯 개의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본부가 있고, 카타르와 중국, 인도 등 세 군데의 해외 센터를 운영하는 등 미국 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발행한 <글로벌 싱크탱크 리포트(Global Go To Think Thank Report)>에 따르면, 브루킹스는 그해 최고의 싱크탱크로 꼽혔으며, 이 보고서가 처음 발간된 2006년 이후 한 번도 최고의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다. 같은 보고서에서 브루킹스는 공공정책에 가장 영향력이 큰 연구소로 이름을 올렸으며, 수준 높은 연구 실적이 그 비결로 꼽혔다. 그뿐 아니다. 브루킹스는 미국 내 정치학자들에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연구소로 미국 언론 인용 빈도수에서 단연 1위를 지키고 있다. 


워싱턴에는 싱크탱크가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특정 기업들과 연계해 이익을 내는 연구소도 많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도 브랜드 네임은 꽤 중요해서 권위와 명성이 있는 싱크 탱크는 점점 덩치를 키워가게 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예산은 지난 10년간 두 배로 늘어 지난해에는 1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유명한 연구소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나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들도 1억 달러를 들여 사옥을 짓는 등 워싱턴의 유명 싱크탱크들은 규모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싱크탱크들은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더라도 연구의 투명성과 중립성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기업과 뒷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난 이상 앞으로 싱크탱크의 보고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싱크탱크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발휘하던 전문성과 영향력 또한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소규모 탐사 언론사의 쾌거


이번 싱크탱크와 기업 유착 보도는 탐사보도의 쾌거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보도는 뉴욕타임스와 뉴잉글랜드 탐사보도센터가 공동으로 취재하고 분석한 결과다. 보스턴에 위치한 비영리 탐사 언론사인 이 센터는 지난 2009년 전직 탐사보도 기자인 조 버간티노와 매기 멀비힐이 설립했다. 보스턴대 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사무실과 장비 지원을 받고 저널리즘 전공 학생들을 인턴 기자로 채용하는 식으로 대학과 공동 운영하고 있다. 뉴잉글랜드탐사보도센터는 주로 뉴잉글랜드 지역의 뉴스를 취재해 왔는데, 최근에는 전국에 걸쳐 심층적인 탐사 저널리즘의 구현을 임무로 삼고 있다. 한 해 예산은 약 90만 달러다. 이 중 절반은 탐사보도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보도기사 콘텐츠 판매에서 나오며, 나머지는 나이트재단이나 탐사저널리즘기금 같은 재단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뉴욕타임스와 함께 이번 탐사보도를 수행한 뉴잉글랜드 탐사보도센터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디아이’. 

이 사이트를 통해 약 100만 명에 이르는 독자를 확보했고, 완성도 높은 탐사보도 기사는 유수의 언론 매체에 게재되기도 했다.

 <출처: 디 아이 홈페이지 >



뉴잉글랜드탐사보도센터는 지금까지 60여 개 이상의 탐사보도를 해왔다. ‘디아이(The Eye)’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약 100만 명에 이르는 독자를 확보했고 완성도 높은 탐사보도 기사는 유수의 언론 매체에 게재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을 비교한 탐사보도 기사는 워싱턴포스트의 건강·과학 섹션과 하트TV에서 다시 다루어져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2012년에는 ‘미성년 살인 용의자의 판결’에 대한 1년간에 걸친 장기 심층 보도로 탐사보도 언론상 등 여러 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이 기사의 요약본이 인용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센터는 ‘여름 탐사 보도 워크숍’으로도 유명하다. 장래 언론인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이 워크숍을 거쳐 간 학생이 300여 명에 이르며, 미국 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온다. 


센터는 이 워크숍을 통해 탐사보도 분야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탐사보도와 취재, 뉴스 제작을 교육시키며 차세대 탐사 저널리스트 양성에 집중해 오고 있다.


싱크탱크와 기업 유착에 관한 이번 보도는 규모는 작지만 내실 있는 한 실험적인 뉴스룸이 세계 최고 권위의 싱크탱크를 상대로 오랜 기간 벌여온 탐사보도가 결실을 보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이번 보도는 끊임없는 실험 정신과 투철한 보도 정신을 갖춘 비영리 탐사 언론사가 뉴욕타임스와 같은 파트너를 만나 협력 취재가 가능한 환경이 된다면, 기대 이상의 상승효과를 낼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