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문학, 상상하는 과학!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황다은, 2016 다독다독 기자단
[요약]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12회를 맞이한 올해 <질문하는 문학, 상상하는 과학>을 주제로 5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서울 마포구 와우길을 중심으로 책과 관련된 강연과 문화 행사가 다채롭게 열린 현장 소식입니다.
젊음의 거리 와우길이 가을의 책 내음으로 가득합니다.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닷새간 열린 제12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즐거움 덕분인데요. 와우길 곳곳에서 책과 관련한 강연, 체험,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의 향연이 이어졌습니다.
#문학의 질문과 과학의 상상력
두려움 가득한 이 사회와 그것이 이루어 놓은 강박적인 기제들을 꿰뚫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탐구하며, 나아가 희망의 현실적 기초를 상상해내는
작가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 SF 작가 어슐러 K. 르 귄
매년 새로운 주제로 개최되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올해 주제는 <질문하는 문학, 상상하는 과학>입니다. ‘알파고 쇼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만큼, 2016년의 한국은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미래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동시에 두려움도 커졌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슐러 르 귄의 말처럼 과학과 현실이 시인과 공상가, 작가들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서울 와우북페스티벌은 우리 곁에 실재하는 과학에 문학이 질문을 던지고, 상상을 실현함으로써 과학이 답하는 방식을 폭넓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번 페스티벌은 <질문하는 문학, 상상하는 과학>이라는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SF 문학’을 메인 테마로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하는 문학 - “과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왼쪽부터) 강연을 맡은 창작자 주일, 패널로 참석한 경향신문 미래기획팀장 최민영, 과학동아 편집장 윤신영, 사회를 맡은 과학저술가 정준호
5일 동안 DPPA(마포디자인출판진흥지구협의회)에서는 1인출판사의 저자 강연 시리즈인 <백인백책> 릴레이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과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리틀 브라더』> 강연을 듣고 왔는데요. 2008년 출간된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row)의 장편 SF(Science Fiction) 소설 『리틀 브라더』의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도, 오히려 자유를 통제하고 억압할 수도 있는 과학의 양면성을 들여다보고, ‘빅 브라더’로부터 우리 개개인의 자율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리틀 브라더’들이 되자는 핵심을 담고 있었습니다. 개인의 보안 의식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빅 브라더를 지켜보는 리틀 브라더가 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겁니다.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도 이런 말을 했죠. “순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자유도 안전도 보장 받을 자격이 없다.”
#상상하는 과학 - “불가능을 가능케 한 문학의 세계"
1) <젠더 문제를 말하는 SF의 방식> @서교예술실험센터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송경아, 정소연, 김보연 SF 작가.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16-10-04, <페미니즘과 SF가 만나 “경험하지 못한 세상 실험하라”>
SF 문학은 현실에 발붙이고 있지 않다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급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게 합니다. 이처럼 현실과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는 점에서, SF 문학에서 여성 작가들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로 세계 3대 SF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어슐러 르 귄, 남성작가로 인식되다가 여성임이 밝혀진 후 ‘팁트리 쇼크’를 불러일으킨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흑인 여성으로 ‘SF 역사상 가장 유니크한 작가’로 불리는 옥타비아 버틀러 등이 대표적입니다.
▲추천도서 사진 : 어슐러 르 귄 <어둠의 왼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체체파리의 비법> 단편선, 옥타비아 버틀러 <킨>
현실에서 평등하거나 혹은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을 등장시켜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다수가 되는 상상을 실현하는 작업은 SF 문학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한데요. 이날 좌담회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젠더 문제를 다루는 SF의 방식에 관해 활발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김보연 작가는 페미니즘이 SF의 화두 중 하나인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구 역사에서 남녀평등을 이룬 적은 없었기에 SF에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보고, 실험해보는 게 SF 소설가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정소연 작가는 여성으로서 나서는 경험보다 물러서는 경험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SF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는 ‘사고 실험’으로서의 장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실험적인 문학과 개개인의 연습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언젠가는 현실이 문학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이너리티를 조명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SF 문학의 가치에 푹 빠진 시간이었습니다.
2) 몰리에르 <상상병 환자> 낭독회 @서교예술실험센터
‘상상’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희곡 한 편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바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 몰리에르의 <상상병 환자>라는 작품입니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이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이 낭독공연은 극짓는사람들 작은별이 운영하는 ‘동네에서 희곡 읽기’를 위해 모인 다양한 일반인 참가자들이 두 달간 연습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림 하녀 뜨와네뜨 역의 권정은, 건강 염려증에 빠진 ‘상상병 환자’ 아르강 역의 박미경, 작은딸 루이종 역의 김가현 씨
프랑스 코미디 <상상병 환자>는 작가이자 주인공 ‘아르강’ 역을 맡았던 몰리에르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극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무대를 시작하니 대사와 내용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극 전반에 흐르는 블랙코미디(사람을 웃기면서도 인간존재의 불안·불확실성을 날카로이 느끼게 하는 코미디)가 작품이 쓰인 17세기와 오늘날을 관통하는 ‘믿음’의 흑과 백을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가벼운 표정 연기와 몸동작을 섞어 낭독하여 생동감 있는 장면을 연출한 열 명의 낭독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낭독 공연만이 가진 정적인 몰입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상상을 실현하는 체험 행사
1) 시-집: 시가 담긴 나만의 시집 종이 커버 만들기 워크숍 @CAFE빨간책방
우연히 만난 ‘시를 위한 집’을 만들어주는 경험은 가을의 상상을 실현하는 자리였습니다. 시 읽기 참 좋은 날씨에, 색연필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바늘로 실을 꿰는 등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종이 표지를 만들었습니다. 빈 종이를 그림으로 채우려니까 괜스레 긴장이 되었지만, 완성해나갈수록 자유로움으로 가득해져 갔습니다. 작가의 상상을 그림을 통해 실현해보는 시간은 시를 한 줄 한 줄 곱씹으면서 깊게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림 백은선 시인의 시집 <가능세계>에 상상력이 가득한 시-집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시집 속에 있는 '비'에 관한 시를 낭독해보고, 종이 커버를 만드는 동안에는 각자의 시집 속에서 소개할만한 시 한 편씩을 낭독했습니다.
촉촉한 감성에 젖어들었던 만들기 시간을 모두 마친 후 한 명씩 앞에 나와서 자신의 ‘시-집’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무려 다섯 장에 걸친 긴 시였던 「가능세계」의 구절들을 읽으면서 떠오른 선명한 이미지를 표지에 담았습니다. 평소 시 읽는 걸 좋아해서, 소장하고 있는 다른 시집들에 직접 만든 커버를 씌워 주는 색다른 취미를 가지는 것도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사랑의 책꽂이
매년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한쪽에서는 책을 기부하는 ‘사랑의 책꽂이’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내 책장 속에서 잠자고 있던 책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기부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안 보는 책은 기증하고, 누군가는 이 중고책들을 사가면서 모인 책과 기부금은 어린이 도서관이나 소외계층에게 전달됩니다.
가을 햇볕처럼 따뜻한 애정을 담아 저도 책 두 권을 나누고 왔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수학, 과학 도서를 기증하고 작은 선물도 받아온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소설(Fiction)은 현실 세계의 공고한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과학(Science)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상상을 실현해 줍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의 3일은 현실과 과학 사이에서의 인간의 역할에 대해 주목해보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직 흥미로만 접근했던 SF 소설과 영화들이 알고 보니 현실의 의문에 집중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는 걸 알게 되어, 참 알차고 뜻깊은 연휴를 보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주말, SF 문학을 읽으면서 평소 하지 못했던 상상을 마음껏 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