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의 진실 은폐 좌절시킨 언론의 힘
[요약] 재작년 4월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의무대에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의무대원 윤 일병이 사망한 것입니다. 군은 윤 일병의 가족에게 “만두에 기도가 막혀 숨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윤 일병이 선임들의 구타로 인해 의식을 잃은 뒤 음식이 목에 걸려 숨진 것이었고 지속적으로 그들로부터 구타를 당해왔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군사재판이 몇 차례 열렸지만 관려 내용은 한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해 7월 30일, KBS 정치외교 담당 기자들이 이를 첫 보도하고, 이후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관련 내용을 폭로하면서 이 사건은 수면으로 떠올랐습니다.
2014년 4월 7일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의무대에서 의문의 사건이 벌어진다. 의무대원 윤 일병이 전날 회식 도중 갑자기 사망한다. 선임병들의 구타로 인해 의식을 잃은 뒤, 음식이 목에 걸려 기도 폐쇄로 숨진 것이다. 군은 윤 일병 가족에게 “만두에 기도가 막혀 숨졌다”고 설명했다. 군사재판이 몇 차례 열렸지만 관련 내용은 한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해 7월 30일, KBS 정치외교 담당 기자들이 이를 첫 보도한다. 이후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관련 내용을 폭로하면서 이 사건은 수면으로 떠오른다.
#불순한 의도 물리친 언론 보도
윤 일병은 선임병 4명과 초급 간부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했다. 그해 3월부터 사망 구타가 있던 4월 7일까지 거의 매일 전신을 구타당했고, 성고문까지 당한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군 검찰은 가해자인 선임병 4명에게 살인죄대신,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사건의 성격을 축소하려한다. 이런 불순한 의도를 좌절시킨 것은 시민단체와 언론의 탐사보도였다.
첫 보도 이후 2개월 가까이 연일 ‘톱뉴스’에 오를 만큼 이 사건은 언론의 집중 추적을 받았다. 그해 9월 군검찰은 여론에 굴복해 가해자들에게 살인죄를 추가 적용한다. 재판 결과, 주범에게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나머지 3명에게는 상해치사죄가 인정된다.
군은 이 사건의 원인이 된 가혹 행위를 한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은폐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국방부 장관이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관련 사실을 인지했음이 밝혀진다. 군이 상부 기관인 국방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국방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내부 감찰도 지시했다. 윤 일병은 화장돼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되고, 그해 8월에 1계급 특진된다. 첫 보도 이후 맹렬한 탐사 정신을 보여준 KBS 윤진, 황현택 기자는 관훈언론상, 한국방송대상, 한국기자상을 연거푸 수상한다. 2014년 관훈언론상의 1차 심사(사회변화 부문)를 맡은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심사보고서에서 수상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회변화 부문에 37건이 출품됐다. 6건을 최종 심사 대상으로 정했다. 이 중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보도가 유일하게 심사위원 전원의 추천을 받았다. 사건 공소장, 수사 기록, 현장검증 기록, 부검 감정서 등 핵심 문건을 입수함으로써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사건의 전모를 그려나갔다.”
▲군은 윤 일병 가족에게 “만두에 기도가 막혀 숨졌다”고 설명했고 관련 내용은 한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3개월이 넘어 KBS의 첫 보도로 진실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을 첫 보도한 KBS 뉴스 화면. <사진 출처-KBS 홈페이지 캡처>
#구조적 변화 이끌다
심사평에서 밝힌 것처럼 윤 일병 사건은 ‘폭로형 탐사보도’의 필수 요건을 모두 갖춘 보도였다. 분노 대상과 피해자, 폭로 과정, 사회적 호응, 구조적 변화가 분명히 드러났다.
첫째, 명백한 분노 대상이 존재했다. 윤 일병을 직접적으로 숨지게 한 선임병들, 폭행을 은폐하고 보고를 누락한 군 관계자, 이를 감독하지 못한 국방부였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분노할 만한 행위였다. 이와 함께 대학 간호학과를 다니다 입대한 성실한 청년의 끔찍한 죽음, 그 죽음 앞에 통곡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둘째, 강렬한 폭로가 존재했다. KBS를 필두로 한 언론들은 윤 일병에게 가해진 폭행이 ‘통상 수준’을 넘어서는 끔찍한 가혹 행위였음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언론의 폭로는 단순히 가혹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군 내에서 끊임없이 가혹 행위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우리 군과 국방부가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음을 폭로했다. 더 나아가, 우리 군이 끔찍한 인권유린 행위를 은폐하려 했음을 끈질기게 탐사해 세상에 드러냈다.
셋째, 폭로 이후 격렬한 사회적 호응이 존재했다. 보도가 나간 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여론이 강하게 조성됐다. 군이 관련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공분이 강하게 일었다. 이 같은 여론은 정부와 청와대, 국회를 압박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지게 했고 내부 감찰도 벌어지게 했다.
넷째,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구조적 변화도 존재했다. 보도 이후, 군인 인권 보장을 위한 ‘군인복무기본법’ 제정이 추진됐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병영 문화 개혁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군이나 정보기관을 탐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강한 방어막과 전문용어가 탐사의 장애물이 된다. KBS 윤진 기자는 관훈언론상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다른 기준과 잣대로 판단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그때마다 취재한 팩트에 자신이 있다면, 나머지는 보편적 상식으로 판단하자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