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문학관을 가다
이혜인, 2016 다독다독 기자단
[요약] 응답하라 1988, 디어마이프렌즈, 시그널 등 2016년 여성 문인들의 전성시대가 열렸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글과 작품들을 자유롭게 접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숙명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세계 여성문인들의 작품과 그들의 작품관을 살펴볼 수 있는 ‘세계여성문학관’이 있습니다.
2016년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우정 작가, 디어마이프렌즈의 노희경 작가,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 등이 활약하면서 바야흐로 방송가에 여성 문인들의 전성시대가 열렸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글과 작품들을 자유롭게 접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들만의 언어로 문화와 문학을 공유하며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처럼 한국의 여성 문인들은 문학을 통해 여성으로서 받는 성차별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동시에 섬세함과 따뜻함의 정서를 표현해왔다.
필자는 한국 여성문인들의 작품과 그들의 작품관을 살펴보고 고찰하기 위해 숙명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위치한 세계여성문학관을 찾았다. 세계여성문학관에서는 ‘110년 숙명문인의 발자취’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세계여성문학관은 세계 여성문인의 자료를 수집·개발하고 연구를 지원하는 세계 여성문학 연구센터를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 문학관은 복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는 4만여 권의 세계 여성 문인들의 작품들이, 2층에는 작품 전시회, 영상회, 강연 등이 진행되는 갤러리가 있었다.
▲세계여성문학관 2층 전경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2층으로 올라가기 전, 먼저 4만권의 여성 문인들의 작품들이 전시된 1층을 살펴보았다. ‘세계’, ‘여성’ 문학관답게 장서들을 분류한 기호가 특이하여 눈에 띄었다. 보통 초성으로 되어있는 분류기호와 달리 ‘Lucy M. Montgomery’, ‘Joanne K. Rowling’ 등 외국의 여성 문인들의 이름이나 ‘박경리’, ‘박완서’, ‘최명희’등 한국 문인들의 이름으로 분류기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조앤 K 롤링의 경우, 대표작인 해리포터 시리즈 외에도 ‘캐주얼 베이컨시’ 등 비교적 덜 유명한 작품들까지 구비하고 있어서 좋았다. 한 작가의 작품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어보는 게 한 개의 작품만 읽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데, 그러한 측면에서 세계여성문학관에 구비되어 있는 여성 문인들의 여러 작품을 한 서가에서 찾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특징이자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계여성문학관을 둘러보다 보니 궁금한 점들이 생겼다. 우선 세계여성문학관의 도서들 중 가장 대출이 많은 도서가 무엇일지가 가장 궁금했다. 세계여성문학관을 담당하고 계신 박성희 님께 여쭤본 결과, 세계여성문학관 장서 중 추천 도서 혹은 가장 대출이 많은 도서 5위는 다음과 같았다.
세계여성문학관 도서 중 가장 대출이 많은 도서 상위 5개
=> 2006.01.01. ~ 2016.11.29. 추출
1.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2,970회)
2.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1,083회)
3. 오만과 편견. Jane Austen 지음 (원서 345회, 번역본 952회)
4.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822회)
5. 냉정과 열정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787회)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혹은 외로움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높은 순위에 올라 있었고, 작가의 국적과 관계없이 ‘여성’문학이라는 분류 아래 다양한 도서들이 순위에 올라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2층에서는 ‘110년 숙명문인의 발자취’라는 특별전의 주제답게 ‘숙명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엮어서 출간된 여성 문인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길게 늘어선 책장에는 많은 한국 여성 문인들의 작품관이 드러난 글들과 유명한 작품의 명대사들이 적혀 있었다.
「응답하라 1988」 20화
‘그 시절이 그리운 건 그 골목이 그리운 건 단지 지금보다 젊은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곳에 아빠의 청춘이, 엄마의 청춘이, 친구들의 청춘이, 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한데 모아놓을 수 없는 그 젊은 풍경들에 마지막 인사조차 못 한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제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에 뒤늦은 인사를 고한다. 안녕 나의 청춘, 굿바이 쌍문동.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쌍팔년도, 내 젊은 날이여.’
특별전을 관람하다 보니 문득 '숙명문인의 발자취' 특별전이 열리게 된 계기가 궁금해져 다시 박성희 님을 찾았다. 세계 여성 문학관 특별전은 숙명여대의 창학 11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의 문단을 빛낸 70인의 숙명 문인(동문 64명, 교수 6명)을 조망하는 전시회를 개최하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아 개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전에 숙명 문인 70인의 사진, 이력과 대표작품, 대표문구를 우리 도서관 소장 중인 도서와 함께 전시하여 110년 숙명문인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고, 전시 문인의 작품 한 구절(연)을 부채에 소담하게 담아낸 육필 부채도 같이 전시하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전시는 초판본, 방송대본, 단행본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특히 한 쪽 벽면에 부채들이 나란히 붙여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부채에는 문학 작품의 한 구절이 쓰여져 있었다. 문인 작품의 한 구절을 담아낸 육필 원고전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인쇄된 활자가 아니라 직접 손으로 쓴 육필 원고전이 주는 그 특유의 느낌은, 전통 부채에 담아내면서 더욱 극대화되었다.
“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눈물겹기야 어찌 잎새뿐이랴”
허영자
우리에게 응답하라 시리즈로 익숙한 이우정 작가의 대본, 각종 소설의 초판본 등도 찾아볼 수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들의 풋풋한 사랑을 보여줬던 응답하라 1997, 한 집에서 하숙하는 대학생들의 일상을 보여줬던 응답하라 1994,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줬던 응답하라 1988 모두 이우정 작가 특유의 유쾌하고 따뜻한 글로 써 내려간 작품들이다. 필자 역시 개인적으로 열심히 시청했던 드라마였기에 실제 극본이 궁금했는데, 펼쳐져 있어서 내용을 읽을 수 있는 다른 책들과 달리 응답하라 시리즈의 극본은 표지만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아쉬웠다. 다만 앞서 살펴본 그녀의 작품관을 읽고 난 후 응답하라 시리즈의 작품관이 그녀의 작품 속에 정말 잘 구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외에도 갤러리에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성문인들의 작품집 초판본을 상설 전시하고 있었으며, 문인의 친필원고, 애장품, 각종 전시회 자료 등 실물자료를 비치하고 있었다.
전시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전시관 입구 옆에 있던 포토존의 글씨가 눈에 띄었다. 들어올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터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박완서 작가의 산문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에서 언급한 문장을 옮긴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작가라는 자의식 하나로 제아무리 강한 세도가나 내로라 하는 잘난 사람 앞에서도 기 죽을 거 없이 당당할 수 있었고,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밑바닥 인생들하고 어울려도 내가 한치도 더 잘날 거 없었으니 나는 참으로 대단한 빽을 가졌다 하겠다.” - 박완서,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박완서 문인의 글이었다. 비록 간결한 하나의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서 여성 문인들이 문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사명감과 큰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여성 문인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 거대한 규모의 전시는 아니었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