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 사회와 소셜미디어 성장의 역설
책 소개-‘포스트매스미디어: 연관성 위기에서 초위기로’
written by. 김용찬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지금 우리는 디지털 혁명이 불러온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특히 미디어는 이 변화의 바람을 정통으로 마주하고 있다.
누구나 유튜브 채널이나 개인 SNS에서 사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방송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보는 새로 나온 책,
《포스트매스미디어》의 주요 내용을 저자가 직접 소개했다.
이제는 ‘어떻게 리터러시 높은 미디어 환경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면서도, 정의롭고, 평등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을 돕고, 차이와 다름을 포용하는
미디어 환경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그런 변화를 사람들은 기대와 두려움으로 바라본다. 2023년 2월에 세상에 나온 《포스트매스미디어: 연관성 위기에서 초위기로》는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논하는 책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미디어 환경을 구축할 것인가에 대해 논할 때 필요한 이론적, 개념적 재료를 제공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21세기의 맥락에서 ‘미디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미디어 환경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우리가 사는 미디어 환경의 가장 핵심적 문제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미디어의 다섯 가지 차원
이 책은 위의 핵심 질문들을 중심으로 세 개의 이야기를 엮는다. 첫 번째 이야기는 ‘미디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미디어란 말이 이제는 일상의 용어가 됐다. 그런데 막상 ‘미디어란 무엇인가’라고 누가 물어보면 선뜻 ‘미디어란 이런 것이다’고 말하기 어렵다. 미디어라는 말의 의미는 한 번도 고정된 적이 없다. 그 말의 의미는 계속 흔들렸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흔들림의 역사가 미디어라는 개념의 역사다.
《포스트매스미디어》는 19세기 이래로 미디어라는 말이 어떻게 쓰였는지 통시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 말의 쓰임새가 지난 100여 년 동안 어떻게 혁명적으로 바뀌어 왔는지를 추적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미디어란 개념에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하부 차원이 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미디어의 다섯 가지 하부 차원은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이다. 미디어는 손으로 잡을 수 있고 우리 삶의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도구’이면서, 도구로서의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고, 전달받고, 저장하고, 퍼뜨리는 ‘내용’이기도 하고, 도구 미디어와 내용 미디어의 생산, 공유, 소비 과정을 조직하고 규제하는 ‘제도’인 동시에, 다른 주체와 사물의 중간에서 미디어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자, 주체와 사물을 불러 모아 서로 마주치고, 관계하고, 소통하게 하는 ‘공간’이다.
이 중에서 ‘사람으로서의 미디어’, ‘공간으로서의 미디어’란 말이 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20세기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도달하기 전에는 미디어의 이런 쓰임새가 도구, 내용, 제도로서의 쓰임새보다 더 지배적이었다. 그것들이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에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21세기에 사람들은 미디어를 사용하는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으로서의) 미디어가 되기도 하고, (공간으로서의) 미디어 안에서 살고, 놀고, 일한다.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이중성
이 책이 담고 있는 두 번째 이야기는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은 과거 매스 미디어가 지배하던 시기의 연장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다른 시기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질문에 관한 이 책의 입장은 ‘둘 다’이다. 매스 미디어 시대의 연장이면서 또 그것과 구별되는 성격을 지녔음이 우리가 사는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특징이다. 20세기는 매스 미디어의 시대였다. 소수가 다수에게 한꺼번에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만들어 내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그 시기를 지배했다.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에는 여전히 매스 미디어 시대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다. 동시에 매스 미디어 시대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징후가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매스 미디어 시대가 물러가는 모습과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가 오는 모습을 동시에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구체제는 물러가고 있으나 새로운 체제가 완전히 오지 않은 일종의 인터레그넘(interregnum, 왕의 부재 기간) 상태에 우리가 속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 도래하는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거기에는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있으면서, 매스 미디어 시대의 끈질긴 유산도 남아 있고, 어쩌면 (모든 것을 삼켜 버린 매스 미디어 시대의 강렬함 때문에) 매스 미디어 시대에 중단됐다가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되는 것도 있다. 매스 미디어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의 전환을 이 책은 앞에서 언급한 미디어의 다섯 가지 차원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매스 미디어 시대에서 포스트매스미디어로 건너가는 장면을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으로서의 미디어 등 관점을 달리하면서 살펴본다. 이런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20세기와 21세기 미디어 환경에 대해 통시적이고도 다차원적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연관성의 초위기 징후
이 책의 세 번째 이야기는 연관성(relevance)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은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지금, 여기에 연관된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삶을 사는가’라는 연관성의 질문(the relevance question)으로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약 우리가 ‘나/우리,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연관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연관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이 질문을 앞의 두 번째 이야기와 연결시키면서 매스 미디어 시대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 각각을 향해 연관성의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매스 미디어 시대는 ‘연관성 위기’의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그런 위기 속에서 무엇이 연관된 것인지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가 서로 분리됐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사람들이 ‘나/지금/여기’와 연관이 없는 것은 중요하다고 인식하면서도, ‘나/지금/여기’와 연관된 것은 오히려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연관성의 범주 밖에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을 중요하다고 인식해야 하는 세상이었다. 반면 자기와 연관된 것들은 사소하고, 하찮게 취급해야 했다. 그것을 이 책은 연관성 위기(the crisis of relevance)라고 부른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도 연관성 위기 문제에 관한 비판적 지적이 계속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도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20세기 내내 연관성 위기 시대의 상흔을 계속 간직한 채 살아야 했다.
미디어의 디지털화와 더불어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이 자신과 연관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했던 일상의 ‘하찮은’ 이야기가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로 오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것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 새로운 문제의 징후가 보인다. 즉, 연관성 있는 이야기들이 만들어 내는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그 이야기를 실제 생산한 개인, 집단, 공동체가 아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제삼자(가령 플랫폼 기업)가 가져간다. 그런 과정에서 연관성 위기가 더욱더 뒤틀린 형태로 다시 돌아오는 듯하다. 이 책은 그런 새로운 형태의 위기를 연관성 초위기(the super-crisis of relevance)라 부른다.
리터러시 높은 미디어 환경 만들기
미디어의 다섯 가지 하부 차원, 포스트매스미디어 시대로의 전환, 연관성의 초위기 등의 문제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이제 어떤 미디어 환경에서 살기 원하는가’ 혹은 ‘어떤 미디어 환경을 구축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질문은 우리에게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매우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제는 ‘어떻게 개인의 미디어 리터리시를 높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서서, ‘어떻게 리터러시 높은 미디어 환경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면서도, 정의롭고, 평등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을 돕고, 차이와 다름을 포용하는 미디어 환경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아가 ‘그런 환경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연관성의 위기와 초위기를 극복하고, 내가 누구인가, 지금, 여기의 연관성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타자와 의미 있는 교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개인적 수준의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를 증진시킴과 더불어 리터러시의 문제를 이렇게 환경의 문제로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그런 시각을 갖기 위해선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이 모두 얽혀서 만드는 생태계로서의 미디어 개념, 현 미디어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이해, 특히 연관성의 측면에서 현 미디어 환경이 갖는 특징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매스미디어》는 미디어 리터러시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