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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사람 간 만남 통해 변화 일으키는 힘

다독다독 (多讀多讀) 2024. 4. 9. 10:00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written by. 강진숙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자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별로 어떤 역량이 필요하며,
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미디어 바로 알기> 이번 순서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탐구해 본다.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개발의 목표는 목소리를 잃었던 주체들이 미디어를 통해

개인의 정서를 표출하고 사회적 권리를 실현하는 데 있다.

요컨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교사-학습자-미디어 사이의 만남을 통해

정서의 변이를 꾀하기 위한 실천의 힘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인 <인사이드 아웃>(2015)에는 다섯 개의 감정이 등장한다. 모든 이들의 신체 속에 있을 법한 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소심(Fear) 등의 감정들이 11세 소녀 라일리(Riley)를 위해 분주하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다 우연한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감정 조절 본부’를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와 라일리의 감정들이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감정들. ⓒThe Walt Disney Company

 

 

다섯 가지 감정과 역량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기쁨이 울음보를 터뜨리게 만드는 유년기의 슬픈 감정들을 없애려다 다시 복원하는 장면이다. ‘파란색 핵심 기억’인 이 슬픔은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감정이고, 부모님과 가족 간의 믿음을 더 크게 해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쁨뿐 아니라 슬픔의 감정도 가족,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서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는 힘을 지닌다. 정호승은 그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1979)에서 이렇게 말한다.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중

 

 

  이 시에서도 기쁨은 슬픔의 힘을 존중한다. 슬픔이 소외된 이웃의 고통까지 공감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함께 길을 걸어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사 전 살던 곳에 대한 라일리의 그리움과 고통이 더 두꺼운 감정의 퇴적층을 쌓듯이 슬픔의 힘은 기쁨으로 전화되는 중요한 역량이다. 이렇게 감정을 통해 역량을 보는 이유는 기존의 이성 중심적인 사유에서 벗어나 이성과 감정의 통합적 접근을 위함이다. 감정을 정동(affect)으로 바꿔서 표현하면 개인과 집단의 역량은 정서의 변이 운동을 통해 강화되거나 약화한다. 감정이나 정서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전에 어떤 행동이나 사건,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을 만났거나 첫사랑을 우연히 조우했을 때 우리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혹은 기쁨에서 슬픔으로 정서의 변이가 모공을 뚫고 송곳처럼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량은 이성의 지도뿐 아니라 정서의 변이, 즉 정동의 작용을 통해 그 크기를 변화시킨다.

정동의 역량이란? 

  그러면, 정동의 역량은 어떠한 것인가? 17세기 합리주의 철학자인 바뤼흐 드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그의 저서 《에티카(Ethica)》(1675)에서 이렇게 정동을 정의한다. 정동이란 각각의 개별 정서가 다른 상태로 변이하는 것을 말한다. 적이나 애인과의 만남은 내 얼굴에 적의나 애정의 정서를 뿜어 올리는데, 그 이유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그들과 만났기 때문이다.

  이 만남은 내 정서를 변화시키고 그 결과 얼굴색을 붉으락푸르락 다르게 변색하여 상대방에게까지 감정을 전하게 된다. 이 얼굴색과 내 마음 상태가 정서라면, 정동은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신체와 신체의 만남을 통해 정서를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이때 슬픔의 정서가 “힘을 감소”시키는 반면, 기쁨은 “힘을 증대”시키는 정동이다(강진숙, 2019, 228쪽). 스피노자에 의하면, 기쁨이란 정신이 “더 작은 완전성에서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E2p11s)이고, 슬픔은 정신이 “더 큰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E2p11s)하는 것이다. 하지만, 슬픔이 언제나 부정적인 정서는 아니다. 개인의 추모, 애도의 슬픔이 집합적으로 모이거나 노란 리본 등으로 연대할 때 사회적 참사의 원인과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 라일리를 위해 없애려 했던 ‘파란색 핵심 기억’의 여린 슬픔도 결국 이 소녀의 긍정적인 성장통으로서 존중받았다. 정호승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슬픔의 힘도 이웃의 고통과 공감하고 연대할 때 기쁨으로 가는 길이 된다. 스피노자의 정동 윤리학 역시 슬픔, 기쁨의 정서 자체가 아니라 슬픔에서 기쁨으로 혹은 그 반대로 정서가 변이하는 데 주목한 실천적인 역량 개발의 사유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과 정동의 미디어 교육

  그러면,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는 어떠한 역량 변화를 꾀할 수 있는가? 최근에 ‘미디어 문해력’이나 ‘미디어 능력’,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에서 교사와 학습자의 역량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능력)는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이용하며,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구성·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설진아, 강진숙, 2021, 130쪽). 여기에 덧붙여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과 관련해 접근 및 활용, 온라인 커뮤니티에의 참여, 미디어를 통한 소통의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리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고려할 때, 연구자별로 서로 다른 핵심 역량이 제기됐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 [표1]과 같다.

 

 

[표1] 연구자별 미디어 리터러시 핵심 역량의 세부 영역

연구자
미디어 리터러시 핵심 역량의 세부 영역
정현선 외 (2015)
① 의미 이해와 전달 ② 책임 있는 미디어 이용 ③ 감상과 향유 ④ 책임 있는 미디어 활용 ⑤ 정보 검색과 선택 ⑥ 창작과 제작 ⑦ 사회·문화적 이해 ⑧ 비판적 분석과 평가
강진숙 외 (2017)
① 지식 ② 비평 ③ 의사소통 ④ 접근·활용 ⑤ 구성·제작 ⑥ 참여
김현진 외 (2019)
기반 역량: ① 접근과 활용 ② 윤리와 보완 ③ 웰빙과 문화
수행 역량: ① 이해와 비평 ② 소통과 참여 ③ 표현과 생산
봉미선,
신삼수 (2020)
① 접근과 활용 ② 비판적 이해 ③ 창의적 생산 ④ 소통과 참여 ⑤ 윤리와 규범

*출처: 신삼수 (2023).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이란 무엇인가”. 신삼수, 이선민, 김봉섭, 유경한, 김지연, 이창호, 홍남희, 김경화, 봉미선, 강진숙 (2023).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 이해와 실천》. 서울: 지금, 28-29쪽 재구성.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역량은 연구자별로 서로 다른 세부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이 의견들 중 일부가 윤리적 측면을 독립적으로 제기하고 있지만, 대부분 공통적으로 이해(지식), 비평(평가), 접근 및 활용, 제작, 소통, 참여 등을 모두 강조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강진숙 외(2017)는 다음과 같이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의 정의 및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표2] 강진숙 외(2017)의 6가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의 정의 및 목표

범주
구성 요소
정의
목표
지식
미디어를 통한 지각과 경험으로 체득되는 인지적·정서적 능력
미디어의 구조, 기능, 기술의 발전 과정과 체계 등의 이해와 지식 습득
비평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미학적 성찰을 통한 글쓰기 능력
미디어의 기술적, 사회적, 문화적 쟁점들과 내용에 대한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을 통한 글쓰기 능력 개발
의사소통
미디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소통 능력
사회적 의사소통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의견의 표현 방법과 상호 인정을 통한 대화 능력 개발
접근·활용
개인과 집단의 미디어 접근과 활용 능력
미디어의 기술적 사용법, 전문 지식, 콘텐츠의 질과 수용에 대한 접근과 활용 능력 개발
구성·제작
미디어를 통한 창의적·상호작용적 생산 행위 능력
대안 미디어의 구성과 창의적·미학적 기술의 적용과 제작
참여
미디어를 통한 윤리적인 공동체 참여와 민주 시민의 시민성 실천 능력
책임 있는 온라인 공동체 참여와 디지털 시민성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 능력 개발

*출처: 강진숙, 배현순, 김지연, 박유신 (2019).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시민역량 제고 방안 연구》. 2019년 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 167쪽.

 

  이러한 핵심 역량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수행되는 학교나 공공 기관, 시민 사회 영역에서 보다 현실적인 세분화 작업과 적용이 이루어질 때 실효성을 갖게 된다. 예컨대, 국어나 사회과목에 적합한 미디어 리터러시 핵심 역량인 의사소통과 비평, 제작 등의 세부 역량을 더 세분화해 적용한다면, 장애인과 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는 접근 및 활용이나 지식 및 비평 역량을 우선으로 기획할 수 있다. 위의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학령별, 성별, 신체별 특이성을 고려할 때 보다 실질적인 맞춤형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천하고 참여하는 역량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어떠한 역량을 개발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개발의 목표는 미디어의 숙련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잃었던 주체들이 미디어를 통해 개인의 정서를 표출하고 사회적 권리를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교사-학습자-미디어 사이의 만남을 통해 정서의 변이를 꾀하기 위한 실천의 힘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능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도 미디어를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어른들의 사회적 통념에 편입되지 않고 일상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의견과 참여 활동을 원활히 이루기 위해서는 이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미디어를 이해하고 비평할 뿐 아니라 책임 있고 능동적인 접근 및 활용을 통해 창의적인 구성 및 제작 활동을 수행하고, 나아가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의사소통하고 참여하는 역량이다. 궁극적으로 이 역량을 개발하면서 개인이나 집단의 정동 역량도 더불어 변화할 수 있다. 정동, 즉 정서의 변이는 두뇌가 아니라 미디어와 사람들 사이의 만남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곧 내 정서의 운동을 이끄는 다양한 주체들의 만남, 즉 정동의 다양체들이 새로운 문제의식과 실천을 위해 문턱을 넘어서는 추동력이다.

 

참고문헌

 

 

강진숙, 배현순, 김지연, 박유신 (2019).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정 운영을 통한 시민역량 제고 방안 연구》. 2019년 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

강진숙 (2019). 《뉴미디어 사상과 문화》. 서울: 지금.

설진아, 강진숙 (2021). 《미디어교육》. 서울: KNOU PRESS.

신삼수 (2023).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이란 무엇인가”. 신삼수, 이선민, 김봉섭, 유경한, 김지연, 이창호, 홍남희, 김경화, 봉미선, 강진숙 (2023).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 이해와 실천》. 서울: 지금, 14-38.

정호승 (1979).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 창비.

Spinoza, B. de. (1675). Ethica. 강영계 역 (1990). 《에티카》. 서울: 서광사.

다음 포털의 <인사이드 아웃>, URL: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79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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