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보도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글.임영호 (부산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우리는 종종 사회적 갈등 사례를
다룬 뉴스를 보며
어느 한 편에 감정이입을 해서
반대편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뉴스는
현실의 투명한 반영이나 팩트의
공정한 나열이라기보다는
언론사의 가치 선택에 따른
미묘한 편향성을 갖게 마련이다.
특히 사회적 갈등을 다룬
언론보도가 어떻게 편향성을 가지고
현실을 왜곡하는지 살펴보고,
비판적 뉴스 읽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론보도는 늘 부정적인 뉴스로 넘쳐난다. 폭력과 범죄, 윤리적 일탈, 사회적 재난 등이 그러한 뉴스의 대표적인 형태다. 사회적 갈등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노사 협상과 알력, 파업, 폭력 등을 다루는 노사 관계 보도가 전형적인 갈등 보도이겠지만, 최근 이슈가 된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둘러싼 갈등, 종합부동산세 논란, 핵발전소 건설, 지역 공항 건설 등 많은 소재가 갈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언론은 다른 부정적 뉴스처럼 갈등 사례 보도에서도 흔히 마치 선악이 분명한 것처럼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 사안에서는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는지에 따라 사건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달라질 수가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판단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렇게 보면 갈등 뉴스는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한 객관적인 ‘정보’라기보다는 언론의 직업 관행에 의해 선별되고 재구성된 담론이라는 점을 깨우쳐주는 좋은 사례다.
사회적 갈등 현상에는 각 집단의 주장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시위, 폭력, 사회적 피해 등의 ‘사건적’ 요소가 중심이 되지만 그 밖에도 수많은 측면이 존재한다. 우선 여기에는 다양한 갈등 당사자가 관련되어 있고, 이들의 상충하는 이해관계, 사회적 파급효과, 문제점 해결방안과 같은 더 광범위한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언론은 이 요소들을 다루면서 언론 자체의 성향에 따라 일부를 생략, 강조, 재구성하기에 뉴스 이용자들이 뉴스를 통해 접하는 현실은 언론마다, 또한 실제와도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띤다. 따라서 뉴스 이용자는 갈등 뉴스를 접할 때 뉴스에서 제시된 부분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거나 축소, 왜곡된 측면들을 추정하면서 실제 사건의 전모를 재구성해보는 비판적 능력을 길러야 한다. 뉴스 리터러시 교육에서는 바로 이러한 능력을 어떻게 길러줄 것인지가 한 가지 중요한 현안으로 남아 있다.
갈등 뉴스는 왜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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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갈등 뉴스는 어떤 점에서 현실에 대한 뉴스 이용자의 이해를 ‘왜곡’하게 되는가? 예컨대 어떤 대기업 노동조합이 회사 측에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으나 회사 측은 이를 거부했다. 협상이 결렬되자 노동조합은 시내 한복판에서 대규모 길거리 시위를 벌여 사회적 이슈화를 시도했는데, 출동한 경찰과 충돌해 폭력 사태가 빚어지고 여러 사람이 다쳤다. 마침 시위가 퇴근 시간 무렵에 벌어지는 바람에 교통 혼잡으로 퇴근길의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언론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할까? 노동조합의 요구 자체보다 의견 표현 방법의 폭력성과 불편 야기를 강조하는 언론도 있고, 심지어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를 경제적 불황과 연계 지으면서 집단 이기주의라며 비판하는 친기업적 성향의 언론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시위의 계기가 된 해당 업종 임금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조의 언론은 상대적으로 친노동적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갈등 사안을 접근하면서 어느 정도 선별성을 발휘해 보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언론의 시각 차이가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시각은 언론사가 지향하는 가치나 정파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
물론 언론보도는 칼럼이나 논설, 논평 등 의견 기사와 스트레이트 뉴스 같은 보도기사로 구분된다. 원칙적으로 언론의 정파적 시각은 의견 기사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지만, 보도기사에서도 간접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복잡한 사안에서 특정한 측면(가령 시위에서 발생한 폭력 등)을 강조한다든지, 제목의 표현을 자극적으로 뽑는다든지 (‘폭력’ 시위, 혹은 ‘과격한 주동자’, ‘집단 이기주의’ 같은 표현) 하는 수법은 보도기사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는 보도기사의 형식은 갖추었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뉴스 이용자들에게 특정한 시각(반노동적이고 친기업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특정한 해법(시위 강력 진압과 노동조합의 활동 규제)을 선택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의견과 해석의 오염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실 ‘왜곡’은 왜 발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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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언론의 편향성은 왜 일어나는가? 이는 단순히 언론의 잘못된 직업 윤리적 판단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은 아니며 언론보도 관행 자체에 내재하는 한계와도 관련이 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다양한 행위자와 이해관계가 뒤얽힌 복잡한 사안이다. 기자가 이를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행위와 사건과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쉽지 않고, 사건에 대해 종합적이면서도 일목요연하게 보도하기도 어렵다. 설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 진지한 지식층을 제외하면 대다수 이용자들은 이러한 식의 복잡하고 지루한 설명을 소화하기 버겁다. 언론은 광범위한 대중이 소비하는 상품이니만큼 사건에 대한 설명을 단순화해서 좀 더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이야기 구조가 간결하며 흥미로운 ‘드라마’로 재구성해서 전달하는 쪽을 선호한다. 이처럼 복잡한 사안을 단순한 이야기로 구조화하는 관행은 이용자의 이해를 높이고 흥미를 유발하려는 동기가 기사 내용과 형식을 지배해 현실 재현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관행은 언론이 현실을 객관적 입장에서 보도하는 중립적 존재가 아니라, 상업적 이익이나 정파성이라는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에서도 비롯한다. 특히 한국 언론에서는 사회적·정치적 갈등 사안에서 정파적 성향이 뉴스 편향을 초래하는 사례가 잦은데, 이러한 특성은 상업주의와 정파성이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정파성 역시 종사자의 정치적 성향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언론사의 상업적 전략의 한 방안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용자들이 뉴스를 현실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의견을 형성하는 데 참고하는 도구로 삼고자 한다면, 언론이 자체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어떻게 현실을 왜곡해서 재현하는지 꿰뚫어보아야 한다.
갈등 뉴스 재구성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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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회적 갈등 사안에 관한 보도는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 보도기사는 팩트 나열이 아니라 여러 관련된 팩트로 구성된 이야기 구조다. 뉴스를 읽을 때는 단순히 기사 문장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분에만 주목하지 말고 뉴스에서 어떤 부분이 강조되는지, 특히 어떤 요소가 생략되거나 주변화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이야기의 전개 구조나 암시되는 도덕적 결론처럼 큰 틀은 물론이고, 이 틀을 지탱하는 사실적 기반에까지 적용된다.
우선 뉴스의 이야기 구조가 누구의 관점에서 설정되고 어떤 결론을 시사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노동조합 파업 보도 사례에서 파업의 폭력성이나 사회적 불편을 강조하는 기사와 노사갈등의 맥락에 초점을 두는 기사의 이야기 구조는 이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폭력시위 기사는 노동조합을 마치 대중적인 드라마에서처럼 잠재적인 사회적 ‘악당’으로 설정하고 사회 전체나 시민들(그리고 기업)을 피해자로 전제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부정적이고 자본에 우호적인 해법으로 유도하게 된다. 반면에 노사 ‘관계’에 초점을 두는 기사는 양자를 경쟁적인 행위자로 설정하고 사건을 이러한 갈등 관계의 맥락 안에서 파악하기에, 폭력이나 시위에 따른 불편은 일화적이거나 우발적인 주변적 요인으로 간주하게 된다. 이러한 보도 시각은 노사 양측의 이익을 절충하는 생산적 노사 관계를 지향하는 방안을 옹호한다.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의 차이는 곧 갈등 해결 방안 제시에서도 입장 차이로 이어지게 된다.
더 나아가 뉴스 편향은 이야기의 근거가 되는 팩트 선택에서도 나타난다. 팩트 자체도 훨씬 더 교묘하게 편향성을 띨 수가 있다. 예컨대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평가하는 기사에서는 다양한 지표를 근거로 삼을 수 있다. 1인당 소득 증가는 흔히 경제 전망을 낙관하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만, 지니 계수는 소득 불평등 심화를 나타내는 지표로 현재 상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 1인당 소득 지표 중에서도 평균치를 선택하는지, 중간값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결론이 나올 수가 있다. 평균치를 기준으로 삼으면 소득불평등 심화로 절대다수가 빈곤 상태인데도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반면에 중간값은 경제성장과 무관하게 일반 시민의 경제적 처지를 더 잘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팩트라 할지라도 이를 단지 객관적인 현실 반영으로 간주하지 말고, 그 팩트 선택이 시사하는 편향의 가능성이 무엇인지, 특정한 팩트 선택을 통해 은폐되는 또 다른 팩트는 어떤 것이 있는지 숙고해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스트레이트 뉴스는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고 다양한 시각을 공정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이처럼 선택된 사실이 특정한 의견을 옹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뉴스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며, 모든 뉴스는 어느 정도 현실 왜곡의 요소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뉴스를 액면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뉴스 리터러시 교육에서 강조해야 한다. 뉴스에서는 사실 자체도 편향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만큼 제시된 측면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현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특히 일반적인 스트레이트 뉴스에서는 생략되기 쉬운 ‘왜’, ‘어떤 맥락에서’라는 관점에서 사건의 전모를 상상해보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유용한 한 가지 방안은 자신이 지지하는 성향의 언론뿐 아니라 정반대 성향의 언론보도를 동시에 비교해보면서 현상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균형 잡힌 그림을 그려보는 습관을 기르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와 관점이 충돌하는 사회적 갈등이 일상적인 일이다. 따라서 뉴스를 뒤집어보고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의 배양은 민주 시민에게 필수 자질이자 뉴스 리터러시 교육에서도 핵심적 부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