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다.

2014. 11. 6.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 (3) 두 번째 탐험 - 서점의 발견 / 2014.10.27. / 한국일보



누구나 어떤 생각이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관련된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닌데 불현 듯 말이죠. 그리고 그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올 때가 있습니다. 물론 서로 관련이 있는 내용이 아니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이 됩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두통약을 떠올렸는데, 전혀 관련이 없는 어린 시절 딱지치기를 하던 기억이 이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연결해서 추위가 생각납니다. 서로 다른 듯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왔지만, 이것들은 실상 연결고리가 있답니다. 어린 시절 매서운 추위에도 밖에 나가 딱지치기를 하다가 감기에 걸려 두통약을 먹었던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이죠. 


이렇듯 생각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을 다르게 이야기하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죠. 많은 창작을 하는 작가나 작곡가, 예술가 등의 사람들은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일보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인데요. 오늘은 서점에서 출발해서 아이디어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함께 읽어볼까요?





 서점 여행으로 숨은 보물찾기


서울 시내의 대형 서점에 들르면 늘 특정분야의 책만 보고 오곤 합니다. 일단 문구점에 들러서 (필기구와 수첩류에) 새로 나온 제품이 없나 살펴보고, 조금이라도 머리가 맑을 때 인문학 책부터 살핍니다.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것이 직업인데도 이상하게 서점에만 가면 빨리 피로를 느끼는 체질이기 때문이죠. 세계의 온갖 지성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장소라 주눅이 드는 것인지 아니면 제 책이 이렇게 큰 서점에 입고돼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다리가 후들거리기 때문인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우선 종교와 역사와 철학을 두루두루 거치고 문학 쪽으로 갑니다. 외국소설과 에세이와 새로 나온 시집을 살펴보고 곧장 예술 쪽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기에는 보고 싶은 책이 무척 많습니다. 음악, 미술, 스포츠와 영화, 춤의 책들이 저를 사로잡죠.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자연과학, 컴퓨터, 프로그램 책을 보고 이어폰, 휴대전화 케이스 같은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에서 한참 아이쇼핑을 마치는 것이 저의 서점 여행입니다.


서점에 갈 때마다 매번 놀라는 것은 세상에는 여전히 참으로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황이든 안 팔리든 인문학과 소설의 위기든 어쨌거나 사람들은 책을 만들고 또 책을 삽니다.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어쩌면 기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활자도 넘쳐나고 독자를 유혹하는 책의 기운이 천장까지 뻗어있습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있으면 책을 찾는 저 같은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겠죠?(그렇습니다, 저, 컴퓨터, 디자인, 스포츠, 연애, 꽃꽂이, 바둑, 기타, 피아노 조율..... 모든 것을 책으로 배웠어요.) 저는 저라는 인간을 만들어준 책의 힘을 믿습니다. 책을 만들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사람의 절실함도 잘 알고, 책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사람의 절실함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과 서점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출처_ 그린비출판사  



한때 자기계발서를 미워했습니다. 고백하건데 죽도록 싫어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런 마음을 다 버리지는 못했지만, ‘자기 계발’이라는 단어를 ‘싸잡아’ 욕하지는 않게 됐습니다. 얼마 전부터 자기계발서들을 조금씩 찾아서 보기 시작했는데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거기에도 숨은 보물이 많았습니다. 


편견을 내려놓고 책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니 재미있는 책들이 꽤 많았고, ‘창작의 비밀’에 도움이 될 만한 책도 많았습니다. 50페이지면 될 얘기를 300페이지로 쓴 책도 더러 있었고,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책도 많이 있었지만, 김민철씨의 ‘우리 회의나 할까?’와 같은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제가 원하던 ‘자기계발서’였답니다. 




 아이디어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인가?


‘우리 회의나 할까?’는 ‘TBWA KOREA’라는 광고대행사의 회의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TBWA KOREA’는 ‘책은 도끼다’ 등의 책으로 유명한 박웅현씨가 몸담고 있는 회사이기도 한데, 저자는 팀장인 박웅현씨와 팀원들의 회의 과정을 책에다 그대로 담았습니다. 저는 이 책이야말로 ‘아이디어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좋은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회의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 속에서 꼬인 실뭉치가 풀어지는 느낌이니까요. 회의실을 묘사한 부분을 읽고 있는데, 분명히 어디서 본 풍경이었습니다. 제가 이 회의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디서 봤을까요?


잡지사로부터 특정 주제에 대한 에세이를 청탁 받으면 오케이 사인을 보낸 직후 수많은 의견들이 머릿속의 탁자 위에 올라옵니다. 예를 들어 ‘내 인생의 공간’이라는 글을 청탁 받는 순간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공간을 떠올리죠. 그 공간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공간 속에서 좀 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발굴해내기 위해서 뜸을 들입니다. 매일 바뀌는 이야깃거리가 떠올라 더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한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 회의나 할까?’를 읽다가 무릎을 쳤습니다. “이 회의실 풍경이 매일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잖아!”라는 외침과 함께. 맞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회의실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TBWA KOREA의 회의실과 제 머릿속의 회의실을 1대1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구조는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자인 김민철 씨가 궁금했습니다. 또한, 회의실 풍경을 좀 더 알고 싶었답니다. 바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출처_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 (3) 두 번째 탐험 - 서점의 발견 / 2014.10.27. / 한국일보



“책을 보니 카피라이터 시험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에요. 박웅현씨 표현을 빌자면 '제가 내고도 제가 떨어졌을 시험'에는 어떤 문제가 출제되나요?

“일단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을 봐요. 기억나는 문제 중 하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친구가 읽게 만드는 글을 써라’는 거였어요. 또 하나는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편지’를 쓰는 거였는데요, 몇 가지 조건이 있었죠. 절대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되고, 친한 친구가 봤을 때는 ‘너무 노골적인 애정 표현 아냐?’ 싶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뭐? 그냥 보통의 편지잖아.’ 싶은 그런 편지를 쓰는 문제였어요. 또 기억나는 건 단어를 스무 개 정도 주고, 거기에 대해 한 줄 뜻풀이를 하고, 세 줄로 자신의 느낌을 적는 거예요. 알랭 드 보통, 비제, 돌체앤가바나, 뱅앤올룹슨 같은 이름들이 시험에 나왔어요.”


“카피라이터가 되려면 그만큼 다양한 관심사가 필요하다는 뜻이겠네요.”

“그렇죠. 저는 최고의 직업은 백수라고 생각해요. 저, 정말 잘 놀 수 있어요(웃음, 방금 한 말이 진심임을 강조하는 웃음). 그런데 살면서 굳이 돈을 벌어야 한다면, 카피라이터가 제일 좋은 직업 같아요. 책상에 앉아서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만화를 봐도, ‘아, 쟤는 아이디어를 내려고 저러고 있구나.’ 생각하거든요.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도 아이디어로 바로 연결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어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필요할 때 나오게 돼 있어요. 제가 기억력이 엄청 안 좋거든요. 그래도 필요할 때가 되면 다 나와요.”


“(갑자기 흥분하며) 제 말이 그거예요. 실용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어디에 써먹으려고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소용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점점 책을 안 읽게 되는 거죠. (흥분한 걸 조금 머쓱해하며) 메모는 많이 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아이폰 메모장에다 정리해요.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저에게는 10년 된 홈페이지가 있어요. 좋아하는 문장이나 생각들을 정리해두고, 찍은 사진도 올리고 메모도 해두죠. 가끔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홈페이지 검색을 하면 관련된 글이 다 나와요.


“언제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인터뷰 하기 전에 ‘창작의 비밀’ 좀 읽어봤는데요. 저도 비슷해요. 샤워하면서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요. 출근하기 전에 한 10분 정도 샤워하는데, 어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지…. 샤워하면서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이유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에요. 아침 회의 시간에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죠.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러면서 샤워를 하니까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것 같아요.”


“아, 정말 창작의 비밀이네요. 역시 창작의 비밀은 ‘마감’이네요(웃음, 누구나 비슷한 것 같다는 씁쓸한 안도의 웃음).”

“맞아요, 마감이죠. 그런데 회의실에 들어가면 아주 편안해져요. 회의 시간에 돌아가면서 아이디어를 말하면 감이 딱 오거든요. 아, 오늘은 내 아이디어는 아니구나. 바로 비교가 돼요. 그때 열린 마음이 필요한데요, 몇 가지 아이디어를 결합해보면 아주 훌륭한 결과물이 될 때가 많거든요.


“생각을 확장시킬 때는 어떤 방법을 주로 써요?”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잡지를 보는 거예요. 집에 대한 광고를 준비한다고 집에 대한 잡지를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아무 잡지나 손에 잡히는 대로 봐요. 뭘 얻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잡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글 때문도 아니고 사진 때문도 아니고, 그냥 ‘아, 사람들이 이런 걸 원하지?’ 그런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나와요.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아이디어가 필요한 사람에게 제가 해주는 조언은 그거예요. ‘믿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라.’ 그 사람은 믿을 수 있긴 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전혀 몰라요. 그냥 자신이 생각하는 이야기를 할 뿐인데 저한테 와 닿는 거죠.


“김민철씨 경우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회사 회의실에 있는 거고요.”

“그렇죠. 전 회의실을 믿어요. 제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그거예요. 아이디어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자라는 거다. 완결된 형태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회의실에 들어갈 필요도 없죠. 회의실에 들어가면 이 단어와 저 단어가 싸우고, 저 단어와 그 단어가 합해지면서 공동의 결과물이 탄생하는 거예요.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회의실 책상에 올라와 있는 아이디어를 공동의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잠깐 쉬면서 김민철씨가 적은 회의록을 살폈습니다. 낙서 같은 단어들이, 의식의 흐름 같은 문장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죠. 이 단어와 저 단어가 싸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의 회의록은 사람들의 머릿속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 같았답니다. 



출처_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 (3) 두 번째 탐험 - 서점의 발견 / 2014.10.27. / 한국일보


위 내용은 한국일보에 연재 중인 김중혁 작가의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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