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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세울 수 없다고요?



‘콜럼버스의 달걀’도 고정관념


아이 간식으로 달걀을 삶아 에그샌드위치를 만들었어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은 아이가 남은 달걀 하나를 식탁 유리판 위에 조심조심 세울 때만 해도, 귀여운 장난이라는 생각만 했지 달걀이 서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엄마! 달걀이 섰어!"

"와..."

믿어지지 않았어요. 달걀은 세울 수 없다고 다들 말하잖아요. 삶은 달걀이라서 선 걸까? 날달걀은 안 되지 않을까? 긴가민가 싶어서 다음날, 둥우리에서 갓 꺼내온 달걀을 조심조심 세워봤습니다. 


매끈한 싱크대 상판 위에서 달걀이 흔들림 없이 섰습니다. 우둘투둘한 달걀 표면에 그 비밀이 있어요.


와! 달걀이 섰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비밀은 달걀 아랫면에 있어요. 우리집 달걀 중에는 이렇게 우둘투둘한 표면을 가진 게 종종 있거든요. 


표면이 거친 달걀도 잘 섰네요. 우리 닭들은 이런 거칠거칠한 달걀도 종종 낳습니다.


이번엔 다른 달걀을 세워봤습니다. 역시 쉽게 섰어요. 표면이 유난히 거칠거칠한 달걀이에요. 갓 낳은 싱싱한 달걀 중에 가끔 이런 달걀이 있지요. 아이의 호기심 덕에 신기한 경험을 했지 뭐예요. 직접 해보는 것이, 안 하고 그저 믿어버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콜럼버스는 달걀을 깨뜨려 고정관념을 깼지만, '달걀은 깨뜨려야만 세울 수 있다' 역시 또 다른 고정관념일지 몰라요. 고정관념이란 참 무섭지요. 


달걀에도 얼굴이 있어요


처음 닭을 키울 땐 조그만 닭장에 토종닭 3마리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병아리들이 깨어나 자라서 어미닭이 되고 그 후손들이 계속 대를 잇다보니 지금은 닭장도 커지고 닭들도 수십 마리로 늘었지요. 달걀도 우리만 먹기엔 너무 많아서 때때로 선물도 하는데, 달걀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즐거워해요. 이렇게 갖가지 모양의 달걀은 처음 본대요. 똑같은 크기, 똑같은 색깔의 마트 달걀만 보다가 제각각 다채로운 우리 달걀을 보니 신기한가 봐요. 


대규모 양계장의 산란계들은 마치 복제라도 한 듯 똑같은 얼굴이지만, 우리집 암탉들은 얼굴과 몸 빛깔과 볏의 모양까지 다 달라요.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줄 수도 있답니다.


달걀이 다채롭다니,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달걀에도 얼굴이 있답니다. 빽빽하게 쌓아올린 비좁은 배터리 케이지 닭장에 수만 마리가 꼼짝없이 갇혀 사는 양계장의 산란계들은 얼굴도 똑같고 달걀의 색과 모양도 균일하지만, 우리집 암탉들은 얼굴도 다 다르고 달걀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요. 


해질녘 부드러운 햇살이 둥우리 안을 비춥니다. 우리 암탉들이 낳은 달걀들은 크기, 모양, 색깔이 다 제각각이에요. 앙증맞게 작은 달걀은 중병아리 티를 갓 벗어난 어린 암탉들이 낳은 초란이고, 큰 달걀은 몸집 크고 나이 든 암탉들이 낳은 알이지요. 점점이 무늬가 찍히거나, 유난히 길쭉한 달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답니다.


예전엔, 거둬온 달걀만 봐도 누가 낳은 달걀인지 다 맞췄어요. “오늘은 백설이랑 오골이랑 얼룩이가 알을 낳았구나. 졸졸이는 오늘 쉬었네.” 그러면서요. 근데 새내기 암탉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젠 수수께끼 풀듯 어려워졌어요. 닭둥우리 앞에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있으면 좀 파악이 되려나요?


꼭 필요한 연민, 살림의 감정


맑고 푸르른 가을 아침, 어미가 되겠다고 고집 피우던 암탉의 가슴 밑에서 쏙쏙, 병아리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난치가 솟은 작은 부리와 새까만 눈망울이 또록또록 귀여워요. 병아리는 보통 봄에 깨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봄 여름 가을 어느 때고 깰 수 있어요. 모성애 강한 어미닭들은 1년에 2~3차례 이상 알을 품고 새끼를 키워내거든요. 물론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엔 품지 않아요. 추운 날엔 새끼를 기르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가을 병아리들이 깨어났어요. 닭장의 여러 암탉들이 낳은 다양한 알들이 한 엄마의 품속으로 들어가 이토록 다양한 색깔의 병아리들로 깨어났습니다.


우리 닭장의 암탉들은 병아리를 아주 잘 까요. 암탉이 병아리 까는 게 무슨 자랑거리인가 싶겠지만, 생명체라면 당연히 지니는 종의 유지 본능조차 요즘 닭들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거든요. 왜 그럴까요? 알을 품어 병아리를 키우는 동안 암탉은 달걀을 낳지 않아요. 마치 임신기와 수유기에 배란이 멎는 여성처럼요. 사람들은 달걀을 많이 얻기 위해 이 ‘비효율적인 과정’을 없애버렸어요. 닭의 유전자를 조작해 알 품는 본능을 삭제해버린 거예요. 그렇게 탄생한 두 종류의 닭이, 알을 많이 낳는 산란계와 단기간에 살이 찌는 육계입니다. 시중의 닭고기와 달걀은 대부분 이 육계와 산란계에게서 나오지요. 병아리들은 부화기계로 대량 생산되고요. 산란계는 한 마리당 A4용지 절반 크기도 안 되는 비좁은 배터리 케이지에서 밤낮없이 달걀을 뽑아내다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면 일찌감치 폐기처분돼요. 비대한 육계 병아리는 알에서 깬 지 겨우 한 달 만에, 어른닭으로 커보지도 못하고 후라이드치킨이 됩니다. 


산업적인 공장식 사육장은 동물들을 감정을 가진 대상으로 대해서는 이익도 효율도 낼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동물들을 사료를 투입하면 고기나 젖 또는 달걀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기계로 대한다. 아무런 감정도 권리도 없는 한낱 자동판매기로 취급하는 것이다.

                                                                           - 제인 구달, <희망의 밥상>(사이언스북스) 중에서


공장식 사육 시스템은 대량 소비와 대량 공급을 위해 일반화된 육류 생산방식이에요. 이제는 닭과 돼지와 소를 ‘가축’이라 부르기 어렵게 됐어요.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아니라 원가를 줄여 저렴하게 뽑아내야 하는 값싼 가공 원료에 불과하지요. 


풀밭을 헤치고 벌레를 잡아먹고 흙목욕을 즐기면서 닭답게 살고 있는 우리집 닭들과 병아리들.


먹거리와 농사, 땅에 대한 성찰이 담긴 책 <온 삶을 먹다>(낮은산)에서 저자 웬델 베리는 “농사를 잘 짓는 일은 동식물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명에게 정성을 들이는 일”이라며 “꼭 필요한 연민”, “살림으로서의 농사를 하면서 가져야 할 감정”을 설명할 방법을 찾다가 테리 커민스의 글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자기가 다른 것들의 기분을 좋게 해준다는 걸 알게 되면, 자기 기분도 좋아진다. (...) 지치고 더워하는 말에게 땀에 절은 마구를 벗겨주는 게 특별히 주목할 일은 아닐 것이다. 찬비를 맞으며 바깥에 서 있는 양에게 외양간 문을 열어주는 것, 닭에게 모이 몇 알을 던져주는 것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일들이 자기 안에 쌓이면, 자기가 중요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이 말이 품고 있는 느낌을 나는 알아요. 생명을 돌보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과 같거든요. 나와 이 세계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요. 다른 생명에게 가혹할 때 인간은 황폐해집니다. 기름진 식단을 위해 동물을 가혹하게 다루는 세상, 지구 한쪽에서 사람들이 굶주려 쓰러지는 세상은 행복하지 않아요. ‘고통의 고기’를 대량 소비하는 육식의 습관을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는 일,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공장식 사육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일, 달걀 하나를 사더라도 좀더 건강한 사육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을 선택함으로써 닭들의 사육환경을 개선시키는 일 등,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웬델 베리가 말한 ‘꼭 필요한 연민’이자 스스로 ‘중요한 존재’로 설 수 있는 ‘살림의 감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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