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가 생각한 북한 신문의 마지막 이야기

2011. 12. 26. 09:1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저는 국제부 기자라 외신을 다루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2011년 국제사회의 주요 화두는 리비아였죠. 북한과 리비아가 공통점도 적지 않아 리비아 뉴스를 챙겨보던 중 몇 달 전 CNN에서 흥미 있는 르포를 보게 됐습니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뒤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였던 벵가지에서 새 신문들이 우후죽순처럼 창간된다는 내용이었죠. 카다피 정권시절 리비아에는 전국지가 불과 4개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철저히 정부 어용 언론으로 북한과 비슷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벵가지가 시민군 손에 떨어진 지 불과 8개월 만에 이 도시에선 무려 120여 개의 독립신문이 탄생했습니다. 지식인, 대학생 등이 저저마다 신문을 창간했는데, 처음엔 기사 쓰는 법도 모르다가 점차 자리잡아간다는 내용이었죠. 
  
벵가지에서 나타난 ‘신문의 봄’은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억눌렸던 곳에 자유가 찾아오면 언론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개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이 내용을 동아일보에 ‘기자의 눈’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신문은 제작이 상대적으로 쉬우며 상세한 정보를 담을 수 있어 방송 라디오 등 다른 언론에 비해 경쟁력이 있습니다.


<출처: http://owni.eu>

 
북한에도 어떤 형태로든 자유가 찾아오면 저런 신문의 봄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통일한국의 사정은 리비아와는 다른 점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혼자 발전해야 하는 고립된 지역이 아니며 같은 말을 쓰는 혈육이자 경제적으로나 언론환경에 있어서나 매우 앞서 있는 남한이라는 존재가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통일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 종이신문이 살아있을지는 저도 장담키 어렵습니다. IT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몇 년 뒤엔 사람들이 종이신문 대신 집에서 TV같은 기기를 통해 신문을 받아보는 시대가 올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100년에 육박하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 메이저 신문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매체들이 북한이라는 블루 오션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입니다.


정보에 굶주려 있던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신문을 볼 수 있는 자유의 기쁨을 절대 외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북한의 신문 구독률은 어마어마하게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때면 노동신문처럼 기존의 어용매체들은 북한 주민들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할 것입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신문사가 창간되겠지만, 만약 한국 매체가 북한에서 진출한다면 신생 북한 언론이 남한 언론과 경쟁하기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이것이 벵가지와는 다른 점이죠.
  
저는 이런 날이 온다면 어느 신문이 가장 유리할지 예전부터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 본 결과 저는 통일이 되면 북한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경쟁체제가 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물론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누구도 모르고, 제 생각도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지만 나름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북한에서 동아일보는 인지도가 매우 좋습니다. 그런 점에선 아마 1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아일보만큼 북한 언론들이 자주 인용해 온 신문은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 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부친인 김형직도 동아일보 지국장으로 했고,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항일투쟁을 서술하면서 동아일보를 참 자주 인용해 썼습니다. 동아일보는 북한에서 항일지, 민족지의 이미지를 갖고 있죠. 분단 이후에도 동아일보가 오랫동안 정부와 대립한 야당지로 존재해오다 보니 북한 언론도 동아일보를 오랫동안 인용해왔고 긍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조금 민감한 이야기 같지만 통일된 이후 한국의 일부 신문들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에게 가지는 반감의 크기에 비례해서 북한에 발붙이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의 보수진영이 “저 신문은 김정일을 두둔해 왔다”고 낙인을 씌운다면 북한 주민들이 거부감을 가질 것임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모르고 또 장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위에 언급된 서술은 어디까지나 북한에서 나서 자랐고 남한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제 개인적 경험과 판단에 기초한 예언입니다. 예언은 어디까지나 예언에 불과할 뿐이죠.
  
지금까지 북한의 신문에 대해 10회 분량으로 써왔습니다. 처음에 5~6회 정도로 끝낼까 했는데, 생각나는대로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미숙한 저의 연재 글이 여러분들이 북한의 신문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제 글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그리고 저에게 북한 신문에 대한 글을 쓸 기회를 마련해주신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블로그 다독다독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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