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만 5천여 학교에서는 왜 아침독서를 할까?

2011. 12. 22. 09:07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일본 열도가 '아침독서' 열풍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책읽기에 빠져드는 학생과 교사가 크게 늘어나면서 일본 전국의 아침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벌써 일본 전역의 초중고 4만여 개 학교 가운데 절반인 2만 4394개 학교가 아침독서에 참가하고 있습니다(일본 공명신문 2007년 4월 26일자). 일본 전국으로 따지면 약 780만 명의 학생이 아침 맑은 정신에 책읽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 '아침 독서'를 소개한 일본 <아사히 신문>


'아침 독서'란 매일 아침 각급 학교에서 홈룸과 수업 시작 전 10분 간, 학생과 선생님 모두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활동입니다. 독서감상문을 쓰거나 독서목록을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경쟁과 평가를 배제한 순수 독서교육입니다. 지난 98년 처음 실시된 '아침 독서'는 '모두 참여한다, 매일 한다,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그냥 읽는다'는 간단한 4원칙 아래 진행됩니다.


▲모두가 참여한다=학급 전원이 동시에 일제히 실시합니다. 전원이 참여함으로써 혼자서는 읽지 않던 아이도 자연히 책을 잡게 됩니다. 또 '아침독서'는 학생 뿐만 아니라 교사와 전 교직원이 동시에 실시해야 효과가 더 큽니다.

▲매일 한다=하루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만 있어도 아이들의 집중력이 지속돼 학생들의 읽는 힘은 커지고 책읽기를 몸에 익숙하게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읽을 책은 학생 스스로 선택하게 합니다. 자발적 의사로 책을 선택함으로써 독서에 흥미를 갖게 하고 주체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냥 읽는다=책을 읽는 즐거움을 체험하는 것이 목적일 뿐, 자칫 아이들의 마음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독서감상문이나 독서 목록 기록을 요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런 4원칙의 독서법을 실천하면서 일본 학생들은 거부감 없이 독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육현장에서는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가 사라졌다', '학생들의 태도가 차분해졌다', '집단 따돌림(이지메)이 없어졌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다', '지각이 줄어들었다', '결석하는 아이가 크게 감소했다', '독해력이 향상됐다', '문장력이 증진됐다', '학과목 성적이 올라갔다' 등 '아침 독서'의 구체적인 효과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 "아침독서 풍경" 일본 도쿄 가미히라이 초등학교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아침 독서'를 하고 있다. '아침 독서'는 ‘매일 학교에서 수업 시작 전 10분 간’, ‘학생과 교직원 전원 참여’,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교실에서 읽는다’,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4원칙으로 구성된다. 


위에 언급한 성과 외에도 '집중력이 향상됐다', '어휘가 늘어나고 언어능력이 신장됐다', '수업을 부드럽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생활태도가 달라졌다', '여유로운 마음가짐과 인간관계가 형성됐다',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됐다' 등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들이 아침독서 추진위원회 사무국으로 속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아침독서> 운동을 전국적인 규모로 전개한 것은 학생들의 독서 기피 현상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태평양 전쟁 후 일본 학생들의 독서 기피 현상이 점차 심화돼 1990년대 후반에 그 정점에 달합니다. 그 예로 지난 97년 제43회 학교독서 조사(마이니치 신문, 전국 학교도서관협의회 조사)를 보면 초중고교생의 한 달 독서량은 각각 6.3권, 1.6권, 1권으로 이 조사를 실시한 이래 최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당시 학생들의 독서 이탈 현상이 최고조에 달했을까요? 그것은 당시 사회 현상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때는 고성능 비디오 게임이 폭발적인 붐을 이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게임에 빠져들었고, 가정에서도 감각적인 TV 화면에 몰입하는 사회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학교 현장에서는 집단 따돌림(이지메), 학급 붕괴, 학생 흉악 범죄 등의 문제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고베에서 중학생이 연쇄 살인을 저지른 사건도 이 때 발생했습니다. 

 

▲ 일본 아침독서 추진위원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오쓰카씨 에미코(62)씨. 


아침독서 추진협의회 오쓰카 에미코 이사장(62)에 따르면 이 사건이 보도된 뒤 일본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아침 독서' 도입에 관한 문의가 쇄도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주입식 교육에만 충실했던 교육현장에서 정작 중요한 '심성 교육'이 결여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교육 관계자들이 곧바로 실천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대책으로 독서를 주목한 것입니다.

그때까지 해마다 200개 교 정도씩 늘어나던 '아침독서' 학교가 이듬해부터는 3배 이상인 약 700개 교로 증가했습니다. 이후 해마다 평균 3천 개의 학교가 '아침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해를 '아침 독서의 해'로 선포하고, 이듬해 12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활동추진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법률에 의해 전국 지자체에는 지역 어린이들의 독서활동 계획 수립과 환경 정비가 의무화됐습니다. 그리고 2005년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자•활자문화진흥법'이 공포됐습니다. 국민의 활자 이탈현상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으로 국가와 지자체에 대해 활자문화 진흥과 독서환경 정비에 필요한 재정상 각종 조치를 취하는 것이 법으로 규정됐습니다.

본 사회에서 이처럼 '아침독서'가 강조되는 것은 일본 학생들의 충격적인 성적표도 한 몫 했습니다. 지난 2004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한 학습도달도 조사에서 일본 학생의 학력이 이전 조사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조사는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학생들이 어느 정도 익히고 있는가를 OECD 가맹 41개국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평가한 것으로, 일본 학생들의 성적이 수학 분야에서 전년 1위에서 6위로, 독해력은 8위에서 14위로 크게 추락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모든 학력의 토대가 되는 독해력 저하입니다. 독해력이 떨어지면 모든 교과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필연적이고, 공부 이외에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기본 능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 교육전문가들 사이에 인간성을 키우는 독해력을 익히는 방법으로 독서의 습관화가 가장 효과적으로 꼽히며 책읽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 "책 읽어주기도 효과 만점" 일본 가미히라이 초등학교에서는 '아침 독서' 시간에 저학년 학생들에게 교사가 직접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아침 독서'를 실시한 지 3년째 접어들었을 때 일선 학교 내부에서는 '그냥 읽게만 해도 좋은가, 혹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와 같은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아침 독서'는 특별한 지도가 필요없기 때문에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도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왜 '아침 독서'를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매끄럽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면 이런 교사들의 염려가 기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아침 독서'가 학생들에게 자연스레 뿌리내릴 수 있었던 최대 이유는 '감상문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침 독서'는 아이들이 독서에 친근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독서가 즐거운 활동이란 점을 실감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읽기 능력이 아직 부족한 아이들에게 감상문을 목적으로 '아침 독서'를 시키면 독서 기피 현상을 초래하기 쉽습니다. 결과를 강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책읽기만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무리로 아침독서의 효과에 대해 일본 이와테 현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A교사의 육성을 옮깁니다. 

"학교에서 '아침 독서'를 도입한다고 발표하자 독서보다 산수, 한자, 문법 등의 공부를 아침 자습형태로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 독서교육에 거부감마저 느꼈다. 그러나 전교 일제히 '아침 독서'가 4원칙에 따라 실시된 뒤 아이들의 생활에 리드미컬한 변화가 나타났고, 독서의 즐거움과 기쁨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아이들의 변화와 성과를 목격한 뒤 나 자신도 생각이 달라져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독서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아침 독서>의 효과와 성공적인 정착을 선언하는 교육 현장의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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