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 제목, 제 몫하고 있는걸까?

2012. 12. 5. 09:4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세상에는 별별 일이 다 생기고 뉴스는 이를 별스럽게 보도한다. 국내에 등록된 인터넷 언론사는 1천개가 넘고, 뉴스는 분초를 다투며 업데이트 된다. 뉴스 메이커와 뉴스 소비자 사이에는 취재기자와 편집기자가 있다. 현장을 누비는 취재기자와 달리 편집기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전투를 치른다. 제목 달기는 전투의 핵심이다. 제목은 기사 내용을 함축하는 동시에 독자를 유혹해야 한다. 이를테면 청순하면서 섹시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사 접근의 원근법


기사를 꼼꼼히 읽고 주제파악이 끝나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우선, 기사 속으로 들어가 본문에 있는 단어를 이리저리 조합해 제목을 뽑는다. 단박에 제목이 완성되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사실 본문과 제목은 성격이 다르다. 본문에는 어렵거나 낯설고, 복잡한 상황이 등장해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반면, 제목은 그러기가 힘들다. 글자 수의 압박도 있고, 독자의 시선을 가장 먼저 받는 만큼 맵시가 살아야 한다. 때문에 친숙하고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는 게 일반적이다. 생소한 낱말이 있다면 그건 논란을 일으킨 발언이거나 신조어를 설명하는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 


안에서 안 풀리면 밖으로 시야를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포대만 바꾸는 수법으로 묵은 쌀을 햅쌀로 둔갑시켜 이익을 챙긴 일당이 구속됐다‘는 기사가 있다고 하자. 건조한 제목으로 ‘묵은쌀 햅쌀 둔갑…포대갈이 일당 구속’ 뽑을 수 있다. 혹은 ‘밥 맛 없다 했더니’…묵은쌀 햅쌀 둔갑, 같은 내용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그럼에도 둘 중 어느 하나만 골라 ‘정답’이라고 얘기할 순 없다. 제목의 세계는 유일한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최선’이 있을 뿐이다. 제목은 기사 내용을 대변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것이 본문의 언어에 갇힌다는 뜻은 아니다.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은 후퇴가 아닌 전진이다.



[출처-네이버 캡쳐]





글짓기도 잘해요


종종 글짓기도 한다. 이미지로 내용을 전하는 ‘포토 뉴스’는 더욱 그렇다. 기사는 글자(제목)로 글자(본문 내용)를 대변하지만, 포토 뉴스는 이미지를 글자로 표현해야 한다. 이럴 땐 사진 속 인물이 말 했을 법(?)한 얘기를 제목으로 뽑는 게 노하우라면 노하우.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느라 눈을 잘 못 뜨는 상황이나, 연예인이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포토] 이놈의 인기는…’ 정도로 처리할 수 있다. 반대로 사진을 본 사람이 느꼈을 법(?)한 심정을 제목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꽃미남 배우의 자태를 보고 ‘조각상이 걸어 다니네’라거나, 아름다운 배우의 웃음에 ‘무인도로 가져가고픈 미소’라든지, ‘앉아만 있어도 화보네’처럼 사심을 담은 주관적인 제목이 탄생하기도 한다. 



[출처-서울신문 캡쳐]





유행어는 나의 힘


제목 짓기가 편집기자의 업무이긴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론 버거울 때도 있다. 머리를 이리저리 쥐어짜도 떠오르는 게 없다면 유행어가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 유행어는 사회 현상을 반영하고, 많은 사람들과 교감해 친숙해 제목의 재료로 손색이 없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줄곧 사람들 입에 오를 내릴 때는 정치, 경제, 사회 할 것 없이 ‘꼼수’란 단어가 제목에 뽑히는 일이 잦았다. MBC ‘나는 가수다’가 인기 일 때는 ‘나는 OOO이다’라는 제목이 늘었고, SBS ‘신사의 품격’이 화제를 낳자 ‘품격’ 운운하는 제목이 생겼으며, 올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신드롬으로 번지자 ‘OO스타일’로 제목이 도배되기도 했다. 



‘후덜덜’ 오타 


제목 오타 체크는 필수 항목이다. 하지만, 실수할 때도 있다. 사회학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회학자가 되고, 우방국이 낯뜨거운 방국이 되며, 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표기하는 사고도 발생한다. 이름도 예외가 아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이름을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과 혼동할 때도 있고, 김연아 선수는 김연자로, 배우 이정진이 이전진, PSY(싸이)가 SPY(스파이)로 소개될 때도 있다. 웃어넘길 정도의 가벼운 실수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따금 한 글자의 오타가 ‘치명타’ 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유혹의 기술


알고 보니, 결국…, 사실은, 충격, ~한 사연은. 모두 고전적인 유혹의 기술이다. 편집기자는 종종 딜레마에 빠진다. 사실 전달에 충실할 것인가, 유혹에 신경 쓸 것인가. (왜라고 물으면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독자는 바쁘다. 이를 고려해 제목이 기사 내용을 충실히 설명하다 보면 제목만 훑고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반면, 제목이 내용을 암시하는 방향으로 가면 소위 낚시 기사로 외면 받을까 우려된다. 게다가 볼거리, 읽을거리가 늘어나 뉴스도 점차 ‘소비재’가 되어가는 상황, 유혹의 필요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묘수를 찾아보지만 쉽지 않다.



[출처-네이버 캡쳐]




세상사는 상황에 따라 무엇이든 ‘별일’이 될 수 있다. 별안간 비가 내려도, 눈이 쏟아져도, 비가 너무 안 와도, 눈이 안 와도 뉴스가 된다. 자연 재해 뿐만이 아니다. 표심 잡기 경쟁이 치열한 선거 정국에서는 후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사로 뿌려진다. 지구촌 시대에 접어들어 나라 밖 일도 나라 안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제 뉴스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렇게 이것저것 따져보면 ‘뉴스’ 아닌 일이 없다. 매일 전투 아닌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 한 편집기자는 조용히 기도한다. 세계가 평화롭기를, 그리하여 ‘특보’가 없는 날이기를. (꼭 일하기 싫어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