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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대안학교 호산나대학의 미디어교육

미디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이미 초·중·고교 및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어떻게 진행될까? 호산나대학의 시사 수업의 사례를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 현장과 의미를 짚어본다.



박미영(한국 NIE 협회 공동대표)


편집자 주 : 수업 현장의 생동감을 전달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시점에서 글을 풀어나갑니다.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여기는 20대 발달장애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호산나대학입니다. 호산나대학에는 ‘시사 따라잡기’라는 수업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지요. 발달장애(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미디어교육이 필요하냐고요? 물론입니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미디어교육이 더욱 필요합니다.


지적 발달이 늦은 학생도, 외부에는 도통 관심 없이 오직 ‘나’만의 세계에서 평온하게 지내는 학생도, 언젠가는 ‘부모 보호 없이 혼자 살아내기’와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라는 난코스를 지나야 합니다. 그래서 호산나대학에서는 시사 시간에 학생들이 미디어(주로 신문, 인터넷)를 통해 내가 뛰어들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미디어에 소개된 이슈를 접한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교감하는지 몇몇 사례를 소개합니다.


미국대선 : 사과하기

지난 미국 대선 때 우리 학교는 떠들썩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일방적으로 한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미국 대선 뉴스를 보며 우리나라에 불리한 후보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어쩌나 걱정했고, 나쁜 말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함께 살펴본 뉴스는 ‘트럼프 낙마 위기(「중앙일보」2016.10.10.)’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우리는 ‘나쁜 말을 하거나 옳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는 사과해야 한다.’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사진2) 또, 사과할 때 웃거나 몸을 흔들며 말하면 안 되고,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는 것, 진심으로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물론 공부한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요.


수업에 사용한 기사 : 「중앙일보」 2016.10.10. 2 학생들이 음담패설 논란이 되었던 트럼프 미 대선 후보자의 입장에서 쓴 사과문


지난주 수업 시간에 저(지적장애)는 앞에 앉은 경철이에게 틈만 나면 “미안해, 이젠 안 그럴게.”라고 사과했습니다. 아침에 제가 경철이를 살짝 밀쳤거든요. 하지만 경철이는 전혀 몰랐는지 사과를 받으면서도 뭔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공부한 대로 진심을 담아 수업 중에 열 번도 넘게 사과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자꾸 “미안하다.”고 크게 말하는 바람에 수업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았지만 수업에 방해되는 게 문제가 아니죠. 대통령 후보도 잘못하면 사과하는 세상이거든요. 역시 사과하는 법을 배우니 참 좋습니다. 아는 게 힘입니다.


미중 정상회담 : 한국 역사 설명하기

얼마 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 뉴스(「중앙일보」 2017.4.20.)를 보니 저(지적장애)도 아는 한국 역사를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어른들이 모르는 게 아니겠어요?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한국 역사를 모른다니 이상했습니다. 어찌나 안타깝던지 두 정상에게 한국 역사를 설명해주기 위해 시사 시간에 삼국시대 공부를 했죠.


미중 정상회담 관련 기사를 읽으며, 한국 역사를 모르는 두 정상에게 한국 역사를 설명해보는 수업을 했다.


교수님이 들려주시는 역사 이야기를 아마 초등학교 때도 배웠을 텐데 오랜만에 듣다 보니 꼭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로웠습니다.


그나저나 김유신 장군과 광개토대왕은 참 용감하더라고요.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김유신 장군이 형인가요? 광개토대왕이 형인가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세계의 지도자 : 내 생각 써보기

사람들은 제(자폐장애)가 잘생겼다고 말합니다. 전 참 행복합니다. 칠판을 봐도 웃음이 나오고, 천장을 봐도 웃음이 나오죠.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늘 웃음이 나옵니다.


어느 때는 제 손바닥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걸요. 전 인사도 잘합니다. 어른들께는 꼭 90도로 폴더인사하며 “안녕하십니까?”라고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합니다. 전 아베도 알고 트럼프도 알고 시진핑도 압니다. 글씨도 예쁘게 씁니다.


딱 하나 어려운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생각하기’입니다. 교수님은 자꾸 저에게 “네 생각을 써볼까?”라고 하시는데, 생각나지 않는 생각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곤 합니다. 그럼 교수님이 조용히 말씀해주시죠. “지금 이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어?”라고요. 아하, 그게 생각이라는 것이로군요. 진작 그것을 쓰라고 하셨으면 제가 “안녕하십니까?”라고 썼을 텐데, 수업 끝날 때야 말씀해주시는 이유가 뭔지 교수님 속을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세계의 지도자 이름을 많이 알아서 친구들에게 그 이름을 알려주려고 퀴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다음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또 “네 생각은?”이라고 물어보실 텐데, 어휴~ 제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그것 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중간고사 : 배려가 넘치는 중간고사

①이상한 규칙

이번 중간고사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얼마나 재밌던지 중간고사를 한 번 더 보자고 교수님을 졸랐습니다. 야호, 교수님이 우리 요청을 들어주셔서 우리 반은 중간고사를 두 번이나 봤답니다. 중간고사는 팀 대항 퀴즈대회였습니다. 이번 중간고사는 개인별 점수가 아니라 팀별 점수였는데 중간고사 시험문제, 즉 퀴즈 문제를 우리가 출제했거든요. 신문을 뒤적이며 중간고사 문제를 출제하다 보니 꼭 제(지적장애)가 교수님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으쓱했습니다. 그런데 두 개의 게임 규칙이 좀 이상했습니다.


규칙1

문제를 출제해서 상대 팀이 맞히면 출제한 팀은 2점, 맞힌 팀은 1점

규칙2

문제가 어려워서 상대 팀이 오답을 말하면 문제를 낸 팀에서 출제자를 도와 힌트를 말해도 된다.

퀴즈 규칙은 단순하다. 서로 돕고 배려하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맞힌 쪽은 1점이고 출제한 쪽은 2점이라니 이상한 평가 방법입니다. 상대방 눈높이에서 쉽게 문제를 출제하고 상대방이 맞힐 수 있도록 힌트를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태도는 ‘남을 배려하는 것’이므로 2점이라고 교수님이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 반은 12명이어서 A팀 6명, B팀 6명 두 팀으로 나눠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②A팀준비

제가 속한 A팀은 미리 작전을 짰습니다. 우리들은 쉬운 문제를 내려고 애썼습니다. 출제한 문제지를 함께 읽어보며 머리를 맞대고 힌트를 만들었습니다. B팀이 문제를 맞혀야 우리 팀이 2점을 획득하니까요. 진철이가 첫 번째 문제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우리 팀원 중 그 문제의 답을 아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평창 올림픽 지정 숙소의 주소를 말하세요.’ 진짜 어렵죠? 이 문제를 내면 B팀에서 아무도 못 맞힐 것 같아 우리는 문제를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평창 올림픽의 지정 숙소는 어느 지역에 있을까?’ 평창이 강원도에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배웠기 때문에 B팀에서 충분히 풀 수 있을 겁니다. B팀이 꼭 문제를 맞히길 바라며 출제하다 보니 B팀이 친형제처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평창 올림픽 관련 광고를 보며 출제한 퀴즈


③B팀 준비

B팀에는 자중지란이 일어났습니다. 뒤늦게 강의실에 들어온 영진이(자폐) 때문입니다. 경미는 늘 강의실에 일찍 도착해서 앞에 앉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영진이가 갑자기 경미 자리에 애착을 느꼈는지 경미 옆에 서서 계속 졸랐습니다.


왼쪽)서울역 고가 개통 기사를 읽고 학생들이 만든 퀴즈 문제 오른쪽)영국 총선 기사를 보며 각 당의 당수 이름을 맞히는 문제. 답항에 『해리포터』 등장인물을 제시하려고 스마트폰 검색을 하고 있다. 시사 시간에 신문과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있다.


“난 이 자리에 앉을 거예요.”


한번 마음에 둔 것을 꼭 실행하는 영진이에게 밀려 경미는 다른 자리에 앉았고, 기분이 상한 듯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B팀은 약간 토라진 분위기에서 서로 아무 말 없이 열심히 문제만 출제했습니다. 물론 함께 모여 문제의 난이도를 검토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4지선다형 문제여도 알쏭달쏭할 텐데, 스마트폰 검색까지 해서 보기를 10개나 만들었다니까요.


왼쪽)문제에 집중하는 모습 오른쪽)상대 팀 앞으로 가서 문제를 출제하는 모습


④이상한 퀴즈대회

퀴즈대회를 하며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문제를 꼭 풀고 싶어 집중하다 보니 어떤 친구는 책상 위로 올라갈 뻔했습니다. 상대방이 문제를 맞혀야 우리 팀이 2점을 득점하기 때문에 모두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고 힌트도 여러 개 알려줬습니다.


상대 팀 앞에 가까이 가서 출제한 문제를 친절하게 설명하며 문제 맞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다 보니 이상한 퀴즈대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팀이 문제를 맞히면 ‘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는데, 상대 팀이 정답을 말하면 ‘우와~!!!’ 하고 더 좋아했지요. 상대방이 잘하면 우리가 이기는 이런 신나는 게임,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원래 11시 50분에 수업이 마치는데 친구들이 계속 문제를 내겠다며 앞으로 나와 대기하는 바람에 결국 12시 5분까지 수업을 했습니다.


징검다리 학교의 안전창

호산나대학은 발달장애 학생들이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징검다리 학교입니다. 발달 정도가 느리거나 아주 느린 학생들을 점진적으로 사회화하는 곳이죠.


시사 교과는 ‘나’만의 세계에 살던 학생들에게 ‘사회’라는 정글을 체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무작정 정글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라는 안전한 창문을 통해 정글 세상을 요모조모 살펴보는 것입니다. 또한, 신문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배우고 익힙니다. 뉴스를 통해 남들이‘상식적’으로 아는 인물이나 사건, 예절, 관습 등을 익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초·중·고교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며 서서히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는 이곳 호산나대학에서 신문은 ‘세상을 보는 안전창’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서가 정리 등의 실습을 하는 학생(자폐, 22세)이 시진핑 주석에게 역사책 읽기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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