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5. 11:42ㆍ수업 현장
초등학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은 힘들다. 토론 주제 정하기에서부터 어떻게 아이들의 토론을 이끌지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실과 과목 시간에 뉴스를 활용해 관련 이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직접 신문사 기고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전주양지초등학교를 소개한다. |
김주영(전주양지초등학교 수석교사)
지난 2년간 실과로 4개 반의 아이들과 호흡했다. 실과 시간에 운동장에서 텐트 치며 함께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땐 병설 유치원 어린이들이 신기해하며 모두 나와서 구경하기도 했다. 벚꽃이 흩날리던 날에는 야외에서 나무벤치를 만들어보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컴퓨터로 PPT와 영상도 만들다 보니 실과 수업은 제법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수업 중에 한 번씩 “얘들아? 실과는 무엇을 줄인 말이지?” “네, 실과는 실제 생활에 꼭 필요한 과목의 줄임말이에요” 하면서 5∼6학년 때 처음 접하는 과목, 실과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과로 자리 잡았다.
김주영 선생님의 실제 수업지도안. 하단의 버튼을 통해 양식을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동물복지를 배우다
어느 날 6학년 ‘동물의 이용’이라는 단원을 준비하다가 아주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웃음을 띤 돼지의 그림을 보았다. 원래 돼지가 사는 환경은 좋지 않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어색해 보였다. 그래서 만든 교수·학습과정안이 바로 동물복지와 관련한 뉴스 리터러시 교수·학습과정안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돼지 농가는 세 곳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수많은 돼지 농가 중에 겨우 세 곳. 그런데 그중 한 곳처럼 보이는 농가의 그림이 교과서에 실린 것이다. “이 돼지의 표정이 어떤가요?” “웃고 있는데요.” “아니야, 지금은 웃고 있지만 네 뱃속으로 들어가면 울걸”하면서 아이들은 키득키득 자기들끼리 웃었다.
“오늘의 뉴스브리핑 시간입니다. 아나운서 할 친구 한 명 나와 주세요.” 아이들 중 한 명에게 신문을 주며 앞에 나와 아나운서처럼 읽도록 했다. 방송국의 9시 뉴스 시그널 음악과 함께 뉴스 브리핑을 시작했다. “어미 돼지는 폭 60cm, 길이 2m의 철제 우리에서 평생을 제대로 몸도 돌리지 못하고 산다.
폐쇄된 좁은 축사에서 키우는 돼지는 스트레스로 다른 돼지들의 꼬리를 물어뜯기 때문에 새끼 돼지의 꼬리를 자른다. 닭은 어떤가? A4의 2/3의 크기에 갇혀 날갯짓은 물론 본능적 행동 중 하나인 모래 목욕도 못 한 채 자라고, 매우 좁은 공간에서 자란 닭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닭들의 깃털을 쪼는데, 이를 막기 위해 병아리 때 부리를 자른다.” 뉴스 브리핑을 듣던 아이들은 숙연해졌다.
A4를 한 장씩 나눠주고 2/3 크기로 접어보게 한 뒤 그 안에 타원형(좁은 공간에서 몸을 한껏 구부린 닭 모양)을 그려 보게 했다. 그런 다음 닭의 입장이 되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라고 했다. 마이크를 들고 몇몇 아이들과 인터뷰를 해 보았다. 아이들은 닭과 돼지의 입장에서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동물복지란 무엇인지 뉴스 기사를 읽고 짝에게 설명하는 활동을 했다. “설명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지 못한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 아이들이라 자기가 이해한 말로 자기 언어로 동물복지를 짝에게 설명했다.
뉴스 활용 토론 수업이 끝난 후 배우고 느낀 점을 종합해 자신의 의견을 직접 지역신문에 기고한 전주양지초등학교 학생들. <사진 출처: 전북일보 2016.6.17. 10면>
구제역과 AI가 동시에 발생했던 2011년에 도살 처분된 소·돼지, 닭과 오리의 수를 신문에서 찾아 써 보도록 했다. 소·돼지는 348만 마리, 닭과 오리는 647만 마리. 1,000만 마리 가까운 생명이 도살 처분됐다. 또한, 2009∼2015년에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에 투입된 정부의 예산(1조 2,000억 원) 중 많은 부분이 어미 돼지의 철제 우리를 만드는 데 즉, 동물 학대를 통한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됐다. 아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동물의 이용이 진정 ‘동물의 이용’인지 ‘동물의 학대’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구제역, AI로 늘 홍역을 치르는 우리 축산업의 근원적 문제가 무엇인지 보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공장식 축산과 동물복지 축산을 비교 정리해 보고 왜 동물복지가 필요한지 토론해 보았다. 낮은 가격에 고기를 많이 먹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적정한 가격에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소비 사이의 갈등을 쟁점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 후 소감을 물어보고 ‘어떻게 하면 우리 식탁에 행복한 돼지와 닭이 올라올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자기 생각을 써 보도록 했다.
기사형 광고도 골라내는 매의 눈
이 수업은 뉴스 리터러시 수업 중 뉴스 활용 수업에 가깝다. “현장에서 토론 수업이 활성화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사실 토론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여러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우리 스스로 토론 문화가 익숙지 않고 토론 주제 정하기부터 아이들과 어떻게 토론 수업을 할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 또한 그동안 토론 주제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신문을 꾸준하게 읽으면서 수업과 연관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토론의 배경 지식과 근거에도 뉴스는 좋은 자료가 됐다.
아이들도 토론에 뉴스를 활용하면서 자신이 사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를 갖는 뉴스 리터러시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아울러 아이들이 읽은 신문에서는 광고성 뉴스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광고성 뉴스가 있는지를 살펴보게 했다. 아이들은 신문에서 나온 기사이니 당연히 뉴스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동물복지 인증받은 특정 농장과 햄 등을 선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부분이요 : OO햄은 프리미엄 냉장 햄 시장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건강한 햄 브랜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올해 50억 원, 내년에는 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부분 맞지요?” 아이들이 처음에는 동물복지에 관한 뉴스인 줄만 알았다가 ‘광고가 섞여 있고 광고성 기사가 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렇게 뉴스를 보며 뉴스와 광고로 분리해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갔다.
다음으로, 미래 핵심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동물의 이용이라는 주제의 뉴스를 토론 수업의 주제로 활용해 비판적 사고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1. 특히,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역량에 역점을 두었다. 앎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토론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갖고 공동체의 발전에 관심을 두도록 했다.
수업 후에는 수업 내용과 관련된 신문 기고를 통해 사회 참여 활동을 이어나갔다. 동물복지, 미세먼지 등에 관한 기고와 만화 등은 지난 2년간 10회 이상 신문에 실리는 성과를 얻었다. 아이들은 글이 실린 친구를 축하해 주고, 글을 쓴 아이는 자긍심을 갖게 됐다.
실과 <식물의 이용>에서 수박의 꼭지 문제에 대한 뉴스 활용 수업을 한 뒤 ‘꼭지 없는 수박을 유통해 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한 학생의 글. <사진 출처: 어린이동아 2016.5.31. 4면>
초등생도 사회 참여형 수업 가능
하지만 그동안 뉴스 리터러시 수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①뉴스를 통해 사회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 ②뉴스의 형태로 자기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제작하도록 하는 교육, ③뉴스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경험하여 접근성을 높이는 교육 등은 교과 내에서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뉴스 콘텐츠의 내용이나 표현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과 뉴스 이용자로서의 윤리와 책임 있는 이용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교육, 그리고 뉴스를 체계적으로 검색하고 선택하는 방법을 익히는 교육 2 등을 추가로 하면 좀 더 풍성한 뉴스 리터러시 교육이 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교사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기본 방향을 보면 토론·협력학습, 탐구학습 등 학생 활동 중심의 교수·학습방법을 통한 교실 수업 개선이 명시돼있다. 아이들의 미래 핵심 역량 개발을 위해 그리고 교육과정 성취 기준을 생각한다면 뉴스를 활용한 토론 수업과 토론 수업 후 공동체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 볼 수 있는 학생 참여형 수업, 사회 참여형 수업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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