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윤제균 감독, 평범한 직장인에서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2011. 9. 23. 14:07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1999년 한 달 동안 쓴 시나리오가 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
2001년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의 관객수 330만명
2009년 각본, 연출, 제작한 영화 관객수 1,131만명
2010년 제 4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수상
2010년 제 1회 서울문화예술대상 영화감독부문 대상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이 사람, 그는 바로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입니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일찍부터 자신의 길을 깨닫고 매진해 온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1000만 관객을 달성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해운대'>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는 영화 연출은 커녕 단편 영화 한 편 찍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면,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세요? 게다가 IMF 시절 무급 휴직 기간에 밖에 나갈 차비도 없어 방에서 돈 없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궁리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그 시나리오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면?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았네’, ‘타이밍이 기가 막혔나 보지’, ‘인맥이 특별했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영화광이었거나, 기본적으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 9월 21일 강원대학교에서 열린 신문읽기 순회특강 <리더스 콘서트>에서 윤제균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특별히 영화감독을 꿈꾸지도 않았고 처음엔 상금으로 아내 몰래 대출금을 갚을 요량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은 윤제균 감독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에는 분명한 이유와 노하우가 있었는데요. 

평범한 샐러리맨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영화의 감독이 되기까지, 윤제균 감독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그 만의 성공법, 궁금하시죠? 

“모든 크리에이티브의 시작, 읽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연을 소개해 드립니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다 시작한 시나리오
 




그는 강연에 참석한 청중들에게 “계획대로 인생이 움직이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설사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운 일들이 중간에 힘들어지고 잘못된다고 해도, 인생 자체가 원래 그러려니 생각을 하시고 최선을 다하면 될 것 같아요”라며 용기를 잃지 말고 성실히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는데요. 


지금은 성공한 연출가,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이지만, 불과 10년 전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에 무급휴가 때에는 밖에 나갈 차비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합니다. 

윤 감독의 아버님이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뒤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그는 아르바이트로 대학 등록금을 충당했다는데요. 결혼할 당시에도 돈이 없어서 부인 몰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대출을 받았다고 하면 부인이 결혼을 안 해줄 것 같아 윤 감독은 어머님이 돈을 주셨다고 거짓말을 하는데요. 부인이 모르는 이 대출금은 나중에 그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시나리오 공모전에 지원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를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그가 결혼한 1998년에는 한국 사회가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IMF사태가 벌어졌는데요. 당시 윤 감독이 다니던 회사는 IMF를 극복하고자 돌아가면서 전 직원에게 한 달 간 무급휴직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무급휴가 때, 문제가 터진 거죠.

당시 윤 감독이 매달 내야 하는 이자는 100만원 정도였고, 세금을 제외한 월급이 100만원 정도였기 때문에 그에게 저축은 남의 이야기였는데요. 월급이 없는 윤 감독의 무급휴직 생활, 어땠을지 상상이 가시죠? 

어떻게 보면 무급휴직은 직장인들에게는 평생에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이기도 한데요. 다른 동료들은 해외여행이다 뭐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윤 감독은 차비가 없어 밖에 나갈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은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그라도, 무급휴직이 시작한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 돈이 다 떨어지고 나자 부인과의 갈등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요. 그는 부인과 싸우지 않기 위해 한동안 각 방을 사용했다고 해요. 

속 편하게 부인이 일어나기 전에 밖에 나갔다가 부인이 잠들고 나서 들어오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안방은 아내가, 작은 방은 윤 감독이 차지하는 것은 차비와 밥 한끼 먹을 돈도 없었던 그가 택할 수 있는 ‘싸움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지요. 

“그 당시에는 나라는 인간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고, 와이프 일어나기 전에 작은 방에 들어가서 와이프 자고 나면 혼자 밥 먹고. 되게 서글펐어요. 그래서 그 골방에서 뭘 할까 생각을 했는데, 세상에 돈 없이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가 있더라고요. 그게 글을 쓰는 거였어요. 제가 영화를 직업으로 삼겠다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제가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한 달 동안 영화를 만들어보자, 해서 시나리오를 써보게 됐습니다.”


신문 읽기가 모든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인 이유


 


이렇게 해서 그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작법도 몰랐던 그는 시나리오를 구해 많이 읽어 보고, “120분 정도의 영화는 120씬 정도로 구성이 되어 있고 한 씬이 1분 정도 걸리니까, 두 시간 정도 영화면 120씬 정도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삼 주 정도 남은 무급휴가에 120씬을 완성시키기 위해 하루에 10씬 씩 쓰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 다음은 구성에 대한 고민을 할 차례인데요. 그는 누구나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면서, 그 자신도 “학교 다닐 때 배운 발단, 전개, 위기(절정), 결말”에 따라 구성했다고 해요. 

그 다음은 가장 중요한 영화의 소재를 정할 차례인데요. 그가 신문과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모든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어요. 

“제가 단체 신혼여행을 갔었는데 거기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었어요. 분명 부부가 아닌데 하는 커플도 있고, 아직 대학생 커플도 있고, 나이 많으신 분들도 있고. 그래서 재밌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신혼여행이라는 소재를 잡았는데 그거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거예요. 뭔가 하나가 더 추가됐으면 좋겠는데, 싶을 때 마침 제가 우리나라 최고의 법의학자인 문국진 박사님의 책을 읽고 있었어요. 거기의 하나의 에피소드를 신혼여행에 삽입을 했고, 단체 신혼여행을 갔는데 사람이 한 명 죽고, 분명 범인은 단체 신혼여행객 안에 있는데 누가 범인일까 찾는 시나리오를 한 달 동안 적은 거죠.”


지겹던 신문 스크랩 업무가 지금의 초석

무사히 무급휴가를 끝낸 그는 다시 회사로 복귀합니다. 하지만 시나리오 한 편을 쓰고 나니, 신문 스크랩이 예전처럼 단순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영화의 소재들이 막 보였다고 해요. 그래서 윤 감독은 신문 스크랩 업무와는 별도로 나중에 영화에 쓸 만한 소재의 기사는 따로 스크랩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영화잡지에서 시나리오 공모전을 한다는 광고에 “대상 삼천만원”이라고 적힌 것을 보게 되는데요. ‘이 돈만 있으면 와이프 모르게 1,500만원 대출도 갚고,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 그는 적어 놓은 시나리오를 공모전에 보내게 되고, 대상에 당선이 되었던 거죠. 

사실 그가 쓴 시나리오나 연출한 영화들을 잘 살펴보면 얼핏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들이 섞여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기부금입학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간 조폭 두목이 오히려 학교의 횡포에 놀라고, 재개발 현장에 투입된 날건달이 동네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게 되는 등.

이렇게 잘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윤 감독만의 조합으로 재탄생시키는 게 가능한 것은 바로 그가 5년 동안이나 해왔던 신문 스크랩에 기초한다고 하는데요. 그가 회사에서 처음 담당한 일은 광고 전략을 기획하기 위해 매일같이 각 일간지를 쌓아 놓고 회사 광고 전략에 도움이 될 만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는 거였다네요. 

하지만 그는 “솔직히 그 때는 좋아서 신문을 본 게 아니라 업무라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제가 지금 영화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신문읽기나 독서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는 말인데요. 카메라가 돌지도 않았는데 “액션!”을 외쳤던 초보감독이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데에는 꾸준한 읽기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죠.


신문에 가득한 여러 소재를 섞으면? 무궁무진한 시나리오

그는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이 최근 본 신문 기사나 영화 몇 편의 소재를 섞어 즉석에서 스토리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지금도 신문을 매일 2개 이상 보며 영화 소재가 될 만한 기사는 휴대전화에 저장한다는 그는 “영화 소재가 없다. 영화 아이템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히기도 했어요. 


 


“영화의 소재를 찾는 저만의 노하우가 하나 있어요. 신문 안에 영화의 소재는 다 있거든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어요. 유에서 유를 찾아 내야지. 소재를 찾아내는 유용한 방법 중 하나는 소재들을 서로 섞고 혼합하는 거예요. 흥미로운 기사를 한 달 동안 스크랩해서 쫙 보면, 정말 많은 소재가 나와요. 하나 하나씩은 부족하지만 섞으면 재밌는 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 소재 발굴에는 물론 직접 경험이 가장 좋지만,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 경험에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요. 이 때문에 그는 더욱 신문 읽기를 강조했어요. 특히 각 분야의 전문가가 각자의 생각과 논조를 가지고 전개하는 신문 기사는 그의 창조적인 생각의 좋은 보고였던 셈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일기를 시나리오 형식으로 쓰거나, 신문 기사를 영화의 씬으로 구성해 써 볼 것을 권했는데요. 윤제균 감독이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성공한 영화감독이 될 수 있었던 배경 뒤에는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그의 성실함과 꾸준한 신문 읽기, 그리고 그 안에서 소재를 찾는 습관이 있었던 것이지요. 



  


강연이 끝나고 많은 학생들이 윤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는데요. 글쓰기와 읽기, 시나리오 작성과 연출, 영화 감독의 매력 등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습니다. 한 학생은 이전부터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는지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윤 감독은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며,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문학성이 뛰어난 시나리오가 아니라 가장 리얼하고 가장 쉽게 이해되는 시나리오”라고 답하면서, “결국은 소재와 아이템 싸움이에요. 소재가 새롭고 참신하고, 영화 만들 때 완성도만 높이면 되겠다 싶은 시나리오가 좋은 거죠. 가능성을 보는 겁니다. 월급쟁이가 쓴 시나리오가 왜 당선이 됐는가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템의 가능성이 있고, 실제 영화화할 수 있겠다 하는 것 때문에 당선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의 리얼한 모습과 사건 사고, 그리고 세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신문 읽기가 윤제균 감독이 모든 크리에이티브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유, 이제 알 것 같죠?

이 날 강연에서는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만드는 태도와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을 하려는 성실함, 그리고 세상의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섬세함과 통찰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는지를 볼 수 있었는데요. 용기를 잃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루하루 행하고 쌓다 보면, 언젠가 다른 많은 사람들도 윤제균 감독처럼 과거의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이 결국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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