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1. 17:00ㆍ해외 미디어 교육
미국에서 가짜 뉴스 논란에 대한 해법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 각 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활동과 사회 각계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가짜 뉴스나 잘못된 정보가 홍수처럼 늘어나는 현대에 미디어 리터러시의 역할을 되짚어 본다. |
류동협(미 콜로라도 대학교 언론학 박사)
2016년 미국 대선을 혼란에 빠지게 만든 주역으로 가짜 뉴스가 있었다. 디지털 혁신은 누구나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잘못된 정보가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는 악영향도 그만큼 커졌다. 가짜 뉴스의 확산에 대책 없이 노출된 청소년을 보호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 스탠퍼드대 역사 교육팀은 2015년에서 2016년까지 미 12개 주에서 7,804명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정보와 뉴스를 평가하는 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디지털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잘못된 정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각 주의 움직임
가짜 뉴스 논란이 거세져가는 가운데 미국 각 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주 가운데 하나가 워싱턴 주다. 제이 인슬리(Jay Inslee) 워싱턴 주지사는 2017년 4월에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시민의식, 인터넷 안전에 관한 교육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교사, 도서관 사서, 교장, 테크놀로지 책임자를 대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교과 과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며, 미디어 리터러시의 성공적 사례를 담은 웹사이트를 만들어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마코 리아스(Marko Liias) 워싱턴 주 상원의원은 가짜 정보와 진짜 정보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민주주의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다이앤 앨런(Diane Allen) 뉴저지 상원의원은 미래의 교육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조했다. 소셜 미디어를 책임 있게 사용하는 방법과 인터넷 보안 유의법, 비판적으로 미디어를 평가하는 방법 등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의 샘 와인버그(Sam Wineburg)교수는 학생들이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얻은 정보를 잘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 연구는 80% 이상의 학생이 뉴스와 광고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가짜 뉴스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르네 홉스(Rene Hobbes) 로드아일랜드대 교수 겸 미디어교육 연구소 소장은 가짜 뉴스가 미국의 저널리즘과 함께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혀서 잘못된 정보나 소문을 뉴스로 포장한 얼룩진 과거가 있고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도 가짜 뉴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코네티컷 주는 기본 교과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를 포함하면서 추가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에 안전한 소셜미디어 사용 방법을 포함할 것을 요구한다. 플로리다 주도 책임 있는 소셜미디어 활용을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에 걸쳐서 교육하고 있다. 오하이오 주는 기본 교과과정에 정보,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대한 학습을 국제적 수준에 맞춘다는 원칙을 고수하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게 했다. 유타 주는 디지털 시민의식과 안전한 테크놀로지 사용을 권장하는 법안을 최근에 통과시켰다. 2017년 2월 28일에 팀 브릭스(Tim Briggs) 펜실베이니아 주 하원의원은 유치원부터 12학년에 이르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각 학년에 맞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종합적으로 도입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취지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고양해서 소셜미디어 속 가짜 뉴스에 속지 않게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다양한 법안 도입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선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미 고메즈(Jimmy Gomez) 캘리포니아 주 의회 의원은 인터넷 뉴스를 읽고 평가할 수 있는 교육을 도입했다. 비슷한 취지로 빌 도드(Bill Dodd)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정규 교과과정에 편입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은 선행 법안을 바탕으로 개정되어 미래 세대가 가짜 뉴스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별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목적이다.
미네소타 주는 핵심 교과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르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했다. 이 기준은 유치원에서 12학년까지 모두 미디어 리터러시를 배울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도록 한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와 뉴욕 주에서도 디지털 시민의식과 미디어 리터러시를 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했다. 이 외에도 미국의 많은 주가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법안을 준비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사회 각계의 노력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영어 교육 교과과정의 한 부분으로 미디어 리터러시가 등장했는데 점차 선택과목이나 필수과목으로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고 있다. 미 연방 정부 차원이 아닌 50개의 주 정부마다 다른 형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현재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 데에는 법안 제정에 힘쓴 정책 관계자의 노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계와 시민단체가 지속해서 토론하면서 문제를 공론화하고 공동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의 성과가 가능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학자들의 경우, 2009년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저널」이라는 학술지를 만들었다. 이 저널은 학자뿐만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 활동가, 미디어교육자도 더불어 심도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나우(Media Literacy Now)’라는 전국적 규모의 시민단체가 결성되어 주마다 추진 중인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법안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에린 맥닐(Erin McNeill) 미디어 리터러시 나우 창립자는 모든 학생이 다양한 미디어 이슈와 관련해서 종합적 시각을 갖추게 할 교육 정책을 설립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대, 컬럼비아대, 텍사스 주립대, 로드아일랜드 주립대, 이타카대, 메릴랜드 주립대, 브리검영대 등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자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여름강좌 수업이 개설되고 있다. 미디어교육이 강화되면서 교육자 양성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공영방송 PBS의 러닝 미디어(Learning Media) 웹사이트 화면
미국 공영방송 PBS는 러닝 미디어(Learning Media)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교사와 학생들이 미디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습의 장과 소통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특히, 가짜 뉴스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자료와 학습 도구를 만들어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LA타임스」 기자인 알란 밀러(Alan Miller)가 2009년에 만든 비영리 온라인 플랫폼 체콜로지(Checkology)도 학생과 교사가 현명한 뉴스 소비자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온라인 강좌와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는 뉴스 리터러시 단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제 미국 교육계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가 주류가 되면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교육이 더욱 절실해졌다.
저학력, 저소득층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에 미디어 리터러시의 정규 교과과정 편입이 일부 주를 넘어선 전체 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들어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법안이 새롭게 제정되거나 보완되는 주가 많아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디어 생산도 중요하게 인식한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누구나 미디어 생산자가 되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나 잘못된 정보가 홍수처럼 늘어나는 시대에 미디어 리터러시는 하나의 해법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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