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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디어교육 전문가 데이비드 버킹엄 교수 #2

우리나라의 미디어교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아직 다양한 해결과제가 남아있다. 이에 미디어교육에서 저명한 학자인 데이비드 버킹엄(David Buckingham)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한다.



정현선(경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Q. 미디어교육을 위해서 다양한 주체(정부, 공적 기관, 학계, 학교, 언론사, 가정 등)가 참여하는데, 각 주체가 수행해야 할 주요 역할은 무엇인가?

A. 미디어교육과 관계된 다양한 주체들 간에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우선 교사와 학교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어린이는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학교에서 미디어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가정에서도 미디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부모 중에는 미디어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경청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미디어교육 외에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을 수도 있으며, 미디어교육이 매우 어려운 도전 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부모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미루어서는 안 된다. 


학교 밖의 미디어 기관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 프로젝트, 마을 미디어, NGO 등은 미디어교육을 위한 제3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미디어를 제작하는 일이나 어린이와 청소년의 하위문화에 관여하는 일은 학교에서 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학교 밖 기관의 프로젝트는 재정 지원이 단기적이므로 이런 프로그램에만 의존하면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이 파편화될 위험이 있다.


텔레비전 방송이나 소셜 미디어 기업과 같은 미디어 산업 및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미디어교육에 대한 기여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디어 관련 공공 기관과 상업적 미디어도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구글, 페이스북 등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 영리 기업의 경우 ‘자신이 운영하는 미디어 기업 활동에 대한 비판적 이해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가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들이 어떻게 이윤을 남기는지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거의 독점 기업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독점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팔아서 이윤을 창출한다. 심지어 구글과 트위터는 우리의 데이터를 소유하기까지 한다. 이들이 우리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아마도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미디어 산업은 ‘과연 미디어 소비자가 비판적 이용자가 되는 것을 바라는가?’의 물음으로 볼 때 한계가 있다. 


또한,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누구도 ‘문맹’ 상태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터러시가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그룹이 다양한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데비이드 버킹엄 교수는 창의적 미디어 제작은 비판적 미디어 분석과 연계되어 교육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Q. 미디어교육 관련해서 많은 연구를 했겠지만, 실제로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미디어교육을 지도했던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자녀를 대상으로 미디어교육을 다뤄본 적이 있는가?

A. 나 자신을 미디어교육을 잘 하는 부모의 모델로 제시하고 싶지 않다. (웃음) 부모를 대상으로 한 글쓰기와 강연은 늘 조심스럽다. 부모들을 나쁜 부모라고 비난하게 되기 쉽다.  많은 부모교육 서적에서 엄격한 조언 혹은 비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녀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에 대한 조언은 부모의 기분을 안심시켜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꼭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게는 이제 성인이 된 두 아들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 역시 미디어가 가지는 폭력성에 대해 걱정했다. 미디어가 다루는 마초적인 남성의 모습을 아들들이 닮지 않기를 바랐다.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인의 감정에 섬세하게 반응하고 배려하는 젊은이로 자라기를 소망했다. “He Man”이라는 슈퍼히어로 만화가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못 보게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바를 말해 주었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들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칼이나 총과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니 꼭 이런 장난감이 아니라 빵 조각 하나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폭력적인 놀이를 못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에게 장난감 총을 갖고 놀지 못하게 해도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만든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플라스틱 장난감 무기를 갖고 논다고 해서 아이들이 자라 무기 거래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내와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바라던 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섬세하게 반응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며, 여성과 남성이 동반자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2, 3살 정도의 아이 행동은 부모가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6, 7살이 된 아이의 행동은 통제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걱정하는 바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아이가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함께 보는 것도 중요하다. 컴퓨터 게임은 함께하기 어렵다. 아이가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도 크면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고 싶어 하고, 부모가 뭐든지 같이 하자고 하면 짜증을 낸다. 따라서 부모가 뒤로 물러나 자녀를 좀 더 믿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녀가 이용하는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 나눌 필요는 있다. 


 

아이에 대한 믿음과 관심은 데이비드 버킹엄 교수가 두 아들을 양육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나도 내 아들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둘째 아들은 이제 27살이 되었는데, 학부에서 미디어 연구를 전공했으며, 음악을 가르친다. 나와 아들은 취향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들이 왜 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지를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아들을 짜증나게 할 때도 있다. (웃음) 내가 질문을 하면 아들은 “이건 쓸데없는 게 아니에요. 저한테 자꾸 강의하지 마세요.”라고 반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쓸데없는 것이라고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그것을 왜 좋아하니?”라고 물어보고 궁금한 것에 대해 대답해 달라고 말하면서, 아이가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Q. 한국에서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시니어들은 본인의 가치관이 확고해서 그들을 대상으로 미디어교육을 수행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A. 영국에서는 나이 든 인터넷 이용자를 ‘실버 서핑족(silver surfer)’이라고 한다. 노인을 위한 미디어교육에 관련해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온라인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get elderly people online)”는 정책도 있다. 나는 X 세대, Y 세대, 디지털 이주민, 이런 용어와 마찬가지로, i-Gen[각주:1]이라는 말로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것에 저항하고 싶다. 


세대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기술결정론을 따르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가 많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기술을 빨리 따라잡기도 한다. 페이스북만 하더라도 손자, 손녀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세대론의 관점에는 나이 든 사람들을 ‘결핍 모델’로 바라보는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결핍된 존재로 바라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점은 ‘그들에게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회적 목적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1905년에 태어난 나의 장모님은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 이용의 ‘사회적 목적’이다. 대부분의 나이 든 사람들은 해당 기술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마땅히 없으므로 새로운 미디어 이용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세대 차이를 일반화하려는 논의는 매우 경계해야 한다.


세대 차이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세대 간 불평등이 더 중요한 문제다. 영국을 예를 들면, 나는 이제 은퇴를 했지만 집을 소유하고 있고, 그간 일을 해 온 덕분에 연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내 아이들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이런 혜택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영국 젊은이들의 연령층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영국의 브렉시트의 경우, 청년층보다 노년층이 더 많이 찬성했다. 교육 정도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교육을 비교적 덜 받은 사람보다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의 반대 비율이 높았다. 도시 거주자들도 브렉시트에 반대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식으로 정치적인 문제는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Q. 교육에 있어서 교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디지털로 인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연차가 오래된 교사의 경우 젊은 층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고 교수법 역시 새로움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교사들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재교육을 하고 있는가?

A. 이 문제 역시 그렇게 간단하게 바라볼 수 없다. 사실 이 문제는 김아미 박사가 박사 논문에서 매우 깊이 있게 다뤘다. 세대 간의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의 차이보다 기술을 활용하는 목적의 차이다. 젊은이들은 엔터테인먼트를 매개하는 수단, 나이 든 사람들은 정보를 매개하는 수단으로 미디어 기술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왜 특정한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는가?’라는 목적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젊은이들은 새로운 기술에 잘 적응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기술에 가장 잘 적응하는 연령대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지, 그보다 어린 10대들이 아니다. 또한, 나이 든 사람도 새로운 기술에 꽤 빠르게 적응한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의 단순한 생각을 뒤엎는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을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학교 교실에서 교사들이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은 교육 수단으로 1920년대에는 시청각 보조 자료를, 1950년대에는 텔레비전을 사용했다. 교사들의 미디어 이용에도 역사가 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학습을 볼 때, 기술의 혁신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기업은 늘 기술을 판매하고자 하는데, 사실 그것은 기술에 대한 경외감과 관련 있다. 하지만 많은 교사가 나름의 이유로 새로운 기술에 저항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이 단지 표면적인 효과만 있다거나, 교실에서 사용하기 어려우므로 기술에 의존하다가 수업을 망칠 수 있다는 것 등의 교육적인 이유가 있다. 따라서 왜 교사들이 기술에 저항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사가 기술을 사용하는 이유는 교육을 위해서다. 소규모 그룹 토의를 면대 면으로 할 것인지 기술의 도움을 받아 할 것인지 결정할 때 기술이 그룹 토의를 통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지 알고 싶어 한다. 


교사 훈련의 방법도 고민해봐야 한다. 기술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사용해서 교육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덧붙여,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해서 교사들이 그것을 따라잡아야 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하지 않아야 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정현선 경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사진 출처: 필자 제공>


Q. 미디어교육의 효과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지, 미디어교육 효과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미디어교육의 효과를 측정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다. 큰 변화를 목표로 하는 데 비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너무나 작고 어렵게 여겨지는 것도 문제다. 때문에 사람들은 미디어교육의 효과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교실에서 미디어교육의 교수학습과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미디어교육이 이루어지기 이전과 이후를 검사해서 비교하는 것은 아주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평가를 할 때 테스트하기 쉬운 것, 예를 들어 ‘사실’만 테스트하는 경향이 있다. ‘이해’를 테스트하는 것이 ‘사실’을 테스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역사 학습을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역사를 공부한다고 생각해 보자. 누가 철도 엔진을 발명했는지 테스트하는 것은 매우 쉽다. 맞고 틀리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역사를 가르치는 진짜 목표는 제조 방식의 기술적 변화를 통해 도시 거주자의 삶이 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다. 학생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에세이를 쓰게 하는 것은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서술하도록 시간과 공간을 허용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평가는 매우 복잡한 문제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학습도 살펴보아야 하지만, 교실 밖에서의 경험도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학교 밖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평가해 볼 수 있다. ‘교실에서 광고에 대해 학습한 것이 학교 밖에서 경험하는 광고를 이해하는 데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하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를 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교육은 신념을 갖고 하는 행위이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 필요하다. 


Q. 한국의 미디어교육 활성화를 위해 조언을 해 달라. 

A. 현재 미디어교육은 매우 중요한 상황에 놓여 있다.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일상생활 전반과 교육의 큰 변화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에서도 교육의 목적이 단지 사실이나 박제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디어 규제의 측면에도 변화가 있다. 정부는 미디어 규제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보고, 정부의 통제를 강조하는 규제보다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통해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시민 양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디어교육을 위해 공공 기관, 지역 사회, 학교 교육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영국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교육은 미디어교육에서 절대적으로 중심에 놓여야 한다. 공공 기관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조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 부모도 미디어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모든 부모가 자녀의 미디어교육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의 미디어 영역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그 혜택은 일부 학생들에게만 도달한다. 따라서 학교 교육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에 더하여 미디어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과목에서 미디어 학습이 파편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행정가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행정가들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리터러시 학습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영국의 국가 리터러시 교육 전략은 인쇄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한계였다. 인쇄 매체에 대한 리터러시와 미디어 리터러시를 분리할 논리적 근거가 없었다. 또한,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리터러시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어떻게 기르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 재고하고, 기존의 방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과거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이끌어가는 선진적인 모델을 제시했지만, 최근에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포괄하여 리터러시를 새롭게 인식하고 교육하는 측면에서 실패했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1. 자세한 설명은 ‘http://time.com/4904288/igen-jean-m-twenge-review’를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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