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습, 기억력이 아닌 관심과 반복으로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기억력이 좋아야 할까요? 그렇다면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는 것인가요? 영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은 많은 영어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많이 암기한 것이지 애초에 암기력이 좋아서라고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기억력과 영어학습, 그리고 영어신문 읽기와의 관계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나는 뭐든지 잘 외우지 못해서 암기과목은 성적이 좋지 않아’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저는 기억력이 좋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거나 하면 소위 암기과목 성적이 좋지 않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시절 영어성적은 좋았습니다. 영어는 일단 단어와 문장을 암기해야 했는데, 다른 암기 위주인 과목의 성적과 차이가 컸습니다. 진로를 영문과로 정해서 이후 대학에서 문학을 배웠고, 계속 영어단어와 문장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영어신문에서 근무하게 되어 직업 자체가 영어를 많이 사용하지요. 하지만 지금도 기억력, 혹은 암기력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주변에 부모님들을 보면 자녀가 ‘기억력은 좋은데 공부를 안 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 말에 숨어있는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력과 공부를 잘하는 것은 자동 등가관계가 아닙니다.
기억력의 선천적인 우열과 상관없이 학습(learning)은 얼마나 본인이 노력해서 공부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는 ‘기억력은 좋은데…’라는 말은 따라서 방향이 틀렸습니다. 기억력이 좋으면 상대적으로 빨리 무엇인가를 외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학은 기본적으로 마라톤과 같이 장기적인 과정입니다. 하루아침에 수천 단어를 외워서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꾸준히 외우고, 잊어먹고, 다시 외우고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기억력이 좋고 나쁨보다 자신의 노력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기억력의 좋고 나쁨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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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학습(learning)입니다. 학습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외국어 학습에서 이런 지식의 유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영어권의 일부 학자들은 외국어와 관련해서 학습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합니다.
“Learning results in a permanent change of behavior.”
외국어학습은 ‘영구적인 행동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영어지식을 입력했지만 ‘변화된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하면 (예를 들어 영어신문 기사를 많이 읽었지만, 영어작문 실력에 변화가 없다면)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어를 배울 때 이런 ‘학습’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언어지식을 입력할 때 제대로 해야 이후 출력도 잘 된다고 합니다. 보통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의 개념으로도 많이 설명하지만, 언어학자들은 부호화(encoding)와 검색(retrieval)으로도 묘사하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입력에 해당하는 부호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면 출력에 해당하는 언어지식의 검색과 활용이 쉬워집니다. 입력의 방법이 좋을수록 출력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실제 행동변화로 관찰되는 학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원리입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바로 이 부호화의 과정을 잘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독학으로 영어를 배우는 학습자도 마찬가지로 처음 언어지식을 입력하는 부호화를 잘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런 입력과정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어와 다른 외국어를 배워온 필자도 이 2가지 방법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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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심 (Attention)
관심은 인지심리학에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저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순으로 외국어를 배워가면서 관심의 중요성을 크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관심은 크게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과 그 해당 언어의 개별 요소에 대한 관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영어에 푹 빠져 있었는데, 이때 영어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의 수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강력한 관심으로 많은 양의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후에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울 때도 특정한 기간 해당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고 이런 부분이 외국어를 배울 때 상승작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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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차원에서의 관심과 더불어 외국어의 개별 부분에 대한 관심도 ‘정확도’ (accuracy) 향상을 위해 필요합니다. 관사나 전치사, 영어로 에세이를 쓸 때 알아야 하는 기본구조 등 개별 요소들이 많이 있고, 일정 수준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이런 개별 요소에 대한 관심을 높인 상태에서 입력을 진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주일 동안은 영어신문을 읽으면서 전치사에 관심을 가지고 봅니다. 이렇게 기간을 정해놓고 접근하면 이전에는 스쳐 지나가던 부분이 새롭게 ‘지식’으로 변화되어 자신의 어학 실력으로 흡수됩니다.
2) 다른 문맥에서의 반복 (Repetition in different contexts)
학습과 기억력에 관련된 2가지 방법론 중에서 관심과 함께 중요한 것이 바로 다른 문맥에서의 반복입니다. 단순반복의 비효율성은 모두 익숙할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빈 노트에 영어단어를 수십 번 반복해서 썼지만, 막상 시험을 치면 뜻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경험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무작정 반복은 뇌를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뭔가 ‘의미 있는’ (meaningful) 입력이 되어야 하는데 바로 다른 문맥에서의 반복이 바로 그 해결점이라고 봅니다.
영어의 많은 단어와 표현의 경우 한 번에 바로 습득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단어처럼 보이지만 문맥에 맞춰서 뜻이나 뉘앙스가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양한 문맥(context)에서 해당 단어가 사용되는 용례를 많이 봐야 합니다. 영한사전보다 문맥에 기반을 둬서 해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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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단어나 표현을 다른 문맥에서 지속해서 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영어소설책이나 영어신문 기사를 읽는 것입니다. 영어소설책의 경우 처음에는 줄거리를 따라가기 힘들지만 조금 지나면 단어를 문맥을 보고 뜻을 유추하면서 읽게 됩니다. 대부분 소설이 특정한 주제나 직업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만약 변호사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읽어가면서 영어로 된 법률용어를 반복적으로 다른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보게 됩니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영어신문은 이미 국문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건이나 이슈를 영어로 읽기 때문에 영어단어나 표현에 대한 유추가 좀 더 쉽습니다. 중요한 사건의 경우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기사가 나오기 때문에 한 달 정도만 주요 기사를 읽으면서 정리해도 같은 단어를 상당히 많은 다른 문맥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억력은 중요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간이 되는 능력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면 외국어를 배우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기억력이 나쁘니까 영어를 못해’라고 스스로 편견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영어학습에 장애를 가져옵니다.
영어를 배우는데 여러 요소가 있는데,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내가 지금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학습을 하고 있는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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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외국어 학습을 위해서 평소에 해당 언어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과 개별 요소에 대한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같은 단어와 표현을 다른 문맥에서 주기를 두고 계속 반복적으로 보는 학습을 지향하시기 바랍니다. 영어로 된 책이나 기사를 꾸준하게 읽는 것이 가장 쉽게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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