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31. 14:00ㆍ카테고리 없음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3월호>에 실린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김세은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공모하는 연구과제 가운데 문화와 관련한 주제가 나오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의아하면서도 반가웠습니다. 선정되고 나서는 정말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국 문화 저널리즘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의무감까지 생겨났습니다.
문화 기사의 우울한 현실
문화 저널리즘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이 문화 저널리즘인지, 어떻게 해야 문화 저널리즘을 진단하고 논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문화 저널리즘에 대한 체계적인 선행연구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독일을 제외하고는 ‘문화 저널리즘’이라는 용어조차 낯선 형편입니다. 주요 일간지의 문화 관련 보도를 양적으로 분석하여 10년 전과 비교하는 동시에, 일주일치 지면에 대한 질적 분석을 실시하여 각 신문의 특징을 입체적으로 짚어내기로 했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를 대상으로
2003~2004년과 2013~2014년의 각 1년 동안의 문화 관련 기사들을 표집하여 내용분석한 결과, 10년전 1,080건에서 751건으로 줄어들어 양적 감소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나마도 문화면에만 주로 게재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년 전에는 분석대상 기사의 12.5%가 1면에 실렸지만, 최근에는 단 0.3%의 문화 기사만이 1면에 실려 ‘문화면’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생각하는 문화 기사의 뉴스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진단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독자들의 선호와 무관하게 광고주의 선호나 언론사 경영진의 판단에 의해 뉴스 가치가 평가되는 우울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사회는 ‘인문학 열풍’으로 떠들썩한데, 정작 신문 문화면에서 학술과 지식 관련 기사 역시 줄어든 것으로 연구 결과 나타났습니다. 인터넷 매체들이 주도하는 대중문화의 보도 경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문화면이 학술 영역의 동향이나 진단을 기민하게 보도하거나 전문성 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 초점을 둔 기사, 문화 콘텐츠 중심의 기사가 줄어들었습니다. 또, ‘지식/교양으로서 문화’를 접근한 기사와 ‘오락으로서 문화’를 접근한 기사 모두 줄어들었고, ‘상품(광고)으로서의 문화’로 접근한 기사가 늘어났습니다.
문화에서 오락으로, 비평에서 단순 전달로
일부 신문들은 인터넷 뉴스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획/테마나 리뷰/비평 등을 늘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일부 신문은 비판 저널리즘을 상실하고 단순 전달형 뉴스를 생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신문의 구태의연한 기사형식과 문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일부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일정한 성취와 더불어 보다 창의적인 양식성을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의 세 신문에 경향신문을 더해 문화 관련 기사에 대한 질적 내용분석을 한 결과 몇 가지 특징이 관찰됐습니다.
첫째, 과거에 비해 대중문화 그리고 특히 라이프 스타일 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는 문화면 역시 일정한 확장과 더불어 장르적 세분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고급 예술이나 순수문학 등의 관습적인 영역을 넘어 비교적 다양하고 분화된 관심사가 문화면에서 꾸준히 다루어집니다. 이러한 주제와 영역의 확장은 크게 확대된 문화와 소비영역 그리고 대중의 일상적인 관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지면 구성과 전체적인 레이아웃 등 문화면 디자인은 언론사별로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별도의 문화섹션을 발행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경우, 전문잡지 형태의 디자인을 표방하거나 사진과 이미지 등의 시각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여 비교적 세련되고 감각적인 지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전체 지면에서 문화 관련 고정섹션을 요일에 따라 특화시켜 발행하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면 등과는 어느 정도 차별화를 두면서 지면구성과 시각적 요소 활용 등에서 디자인 측면도 일정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기사 스타일과 글쓰기 양식성에 있어서는 비평이나 해설보다 스트레이트성 단순 소개 기사나 행사와 동정 프레임을 담아내는 작업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양적 분석에서 드러난 것처럼, 보다 유연하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글쓰기에 대한 시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해외 언론의 기품 있는 문화면
외국의 문화 저널리즘은 어떨까요? 한마디로 문화면 혹은 문화 기사의 위상은 굳건하고 단단합니다. 프랑스 사례를 보면, 대중문화와 상품 홍보를 포괄하면서도 어떻게 ‘기품 있는’ 문화면을 만들어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문화 상품에 대한 홍보성 기사와 인물에 대한 보도가 문화면의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비판정신에 입각한 비평적 접근을 꾸준히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기자들의 수준 높은 글솜씨와 전문성은 프랑스 문화 저널리즘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 신문의 ‘포이통(Feuilleton)’ 즉 문화면에 실린 기사들은 대부분이 비교적 긴 비평이며 그 내용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바그너의 작품에 관한 음악 비평이나 하버마스와 같은 철학자의 논점을 풀어내는 관련 기사들을 문화면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포이통의 문화 비평은 일찍이 시민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단순한’ 문화 기사를 넘어 사회현상의 관계와 변화를 논의하는 정치적 포럼 혹은 공론장으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위협받는 기자들의 자긍심
문화부 기자들은 자신의 작업의 질 그리고 전문성과 관련하여 일정한 자긍심을 표출합니다. 인터넷 언론과 블로거들이 생산해내는 수많은 글과 경쟁해야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양질의 기사와 기획을 제공하려는 문화부 기자들의 노력도 각별합니다. 문화부 기자들은 새로운 뉴스나 트렌드가 될 거리를 찾아다니고, 신변잡기식의 혹은 비슷비슷한 인터넷 연예기사와는 차별화되는 기사 생산에 관해 고민하며, 분석과 해설이 깃든 전문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기사’와 ‘전문성 높은 기사’. 문화 저널리즘이 나아가야 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디지털 시대에는 전문성만으로는 읽히는 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인터넷 언론들이 쏟아내는 가십성, 단발성, 속보성, 그리고 흥미와 대중의 관심에만 주력하는 상업적인 기사들에 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화 저널리즘은 흥미로우면서도 질적으로 우수하고 전문성이 높게 표출되는 기사를 추구해야 합니다. 문화부 기자들의 고뇌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내부 인식 전환 먼저
디지털 시대 상황에서 다양한 문화현상을 진단하는 창의적인 해설과 비평, 품질 높은 기획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문화부 기자들의 노동 강도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체계적인 인적 지원, 취재 지원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문화 저널리즘을 바라보는 언론사 내부의 인식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문화부 기자들이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기사와 비평을 생산할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과 인적인 충원, (재)교육 등의 기회들이 보다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특히, 문화 관련 전문기자제도의 운용, 문화부 기자들의 역량을 배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글쓰기와 비평의 대안성과 실험성이 보다 능동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화는 그 어떤 분야보다 전문성과 심층성 그리고 독창성과 실험정신이 필요한 부문이기에 보다특화된 운용과 기획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측면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며 변화를 모색하는 언론사는 매우 드뭅니다. 프랑스나 독일의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똑같은 신문의 위기, 온라인 환경하에서도 문화 저널리즘은 결코 축소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