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주민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의 미디어

2018. 7. 31. 21:36특집

결혼 이주민의 수가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누적 규모가 2001년 대비 무려 6배나 늘어났다. 이렇게 많은 이주이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편견 시선과 마주해야 한다. 이에 미디어가 그리고 있는 이주민의 모습을 결혼 이주민의 눈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글: 아사히 노리코(일본)




아사히 노리코 씨는 니가타현에 있는 한 병원에서 관리영양사로 일하던 중 현재의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 한국에 오게 됐다. 15년째 한국에서 생활하며 아들 셋을 키우고 있다.   


저는 일본에 있을 때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계기로 일본에서 공부 하던 한국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애를 하였고 드라마와 같이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국 지금의 남편과 결혼에 성공하였습니다. 

지금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들을 낳아 한국에서 가정을 꾸려 잘살고 있으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삽입곡 '개똥벌레'를 즐겨 부르는 한국 아줌마입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저와 같이 결혼해서 한국에 이주해 온 분들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렵지 않게 그러한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느꼈던 변화를 조금 풀어 보고자 합니다.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선 중요

먼저, 저와 같은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혼돈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다문화 가족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단순히 문화가 다양하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우리의 가정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단어의 원래의 뜻은 그렇다 하지만 다문화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약간 부정적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는 이주민들을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 혹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느 순간 결혼 이주민, 결혼 이민자, 결혼 이주여성, 국제결혼이주여성, 여성결혼이민자 등 수많은 말이 나왔습니다. 앞서 말한 부정적 어감 때문에 다문화 이외의 용어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기에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한국 사람들의 노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우리 이주여성들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아무리 좋은 단어가 나와도 편견을 가지고 본다면 그 단어 역시 부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과거보다 우리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호기심, 다름, 배려의 대상에서 평범한 이웃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필자는 이주여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미디어 속 이주민, 섣부른 일반화는 금물

하지만 방송이나 영화 등을 보면 아직 우리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과거에 방영됐던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이주여성들을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의 사람들로 나타냈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이주여성 중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문화 가족이라서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다문화 가족일 뿐입니다. ‘다문화가족=가난, 배려의 대상’으로 일반화한 방송을 보면 저도 사람인지라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위의 프로그램 이외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엘리트들은 대체로 영미권에 가서 유학하고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영미권 국가는 선진국이고 발전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반면 동남아시아 등은 가난하고 어려운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노동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과연 영미권 사람들은 모두 신사이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일까요?

작년에 개봉한 한 영화에서는 중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를 ‘경찰들도 잘 안 다니는 위험한 동네’로 묘사하였습니다. 물론 영화라는 특성상 필요 이상의 표현과 묘사가 사용된 것이겠지만, 사람들에게 잘못된 편견을 심어 줄 수 있기에 조심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용어와 제가 본 미디어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몇 글자 좀 더 적고자 합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 가족들과 살아갈 나라입니다. 미디어에서 우리를 다른 존재로 묘사하기보다 대한민국에서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정하고 그려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본 결혼이주여성과 미디어에 대한 소회[각주:1]

“그들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웃이에요.”

글: 양영아(숭실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


“진짜 맛있어요. 이거 제가 만든 거예요.”


쑥인절미를 먹어보라고 내미는 그녀가 수줍게 웃는다. 

그녀의 이름은 ‘마오 주다’. 우리 나이로 이제 서른 살이다. 그녀에게는 네 살 된 아들과 이제 10개월 된 딸이 있다. 앙코르와트의 나라, 캄보디아에서 온 그녀를 사람들은 이제 재성이 엄마, 재인이 엄마로 부른다. 2014년 캄보디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꿈같은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만 오면 모든 게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서울에서 살 수 있었고 남편의 식당이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도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캄보디아에서 유적지 관리사무소 직원이었던 그녀는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잘나가는 여자였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캄보디아 시엠립에 있는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공부했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 취업도 했고 무엇보다도 예뻤다. 

“내 고향에서 나는 참 예뻤어요. 지금은 뚱뚱해졌지만, 그때는 예뻤어요.”

사진 속의 그녀는 정말 날씬하고 예쁘고 환했다. 그런 그녀가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한 것은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결혼하고 4년이 흘렀다. 지금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살이 쪘고, 시부모님 집에서 얹혀산다. 식당이 문을 닫게 되어 남편이 실직자가 됐기 때문에 이제 부부는 시부모님에게 용돈까지 받으며 살아야 한다. 남편이 큰아들이어서 큰며느리로서 챙겨야 하는 제사도 많고, 잔소리하는 시어머니가 야속하고 힘들 때도 많다. 그때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배운 솜씨를 발휘해서 찰밥을 하고 산에서 캐온 쑥으로 쑥떡을 해 먹는다. 그리고 캄보디아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사는 딸을 자랑스러워하시는 엄마. 어쩐지 쑥떡을 먹으면 캄보디아에 계시는 엄마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그러고 나면 거짓말처럼 힘이 솟는다고 한다. 쑥떡의 힘. 나는 그녀가 한국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의 한국어 수업을 하다 보면 수많은 마오 주다 씨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요즘은 미디어에서 다문화 여성들의 삶을 많이 접한다. 미디어 속 그들의 삶은 항상 갈등을 일으키는 주인공이거나 가정‧사회에서 소외된 양극단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현실 속 의 삶을 들여다보면 한국 여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언어의 차이로 더 고단하게 삶을 꾸려갈 뿐이다.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더 힘들어요. 하지만 살 거예요.”라는 의 말에 고단함과 희망이 함께 담겨있다. 힘들지만 씩씩하게 웃는 수많은 마오 주다 씨가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필자는 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외국 학생, 다문화 가정 구성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교육 현장에 있는 이주 여성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미디어에 비친 그들과 실제와의 차이에 대한 느낀 점을 담고자 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