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9. 09:03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책이 얼마나 팔렸을까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의 첫 장 혹은 가장 마지막 장에 쓰여 있는 ‘0판 0쇄’를 보는 것입니다. 만약 책이 100쇄를 기록했다고 하면 말 그대로 책을 100번 인쇄했다는 것입니다. 출판사나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책을 시장에 처음 낼 때 약 3천~5천권 가량 찍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게 처음의 초판이 모두 팔리면 다시 몇 천 권을 인쇄하고 하는 과정을 100번 반복했다는 뜻이기에 대략적인 판매량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에도 책과 마찬가지로 ‘판’이 있습니다. 신문을 자주 보는 사람들도 유심히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신문 일면의 상단에는 발행날짜와 함께 몇 판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매일 다르지만, 많게는 40~50판이 찍혀있곤 하는데요. 신문의 판이라는 것도 책의 그것과 동일한 것일까요? 오늘은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논란도 많았던 신문의 판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신문은 내용에 있어서 방송과 달리 깊이가 있는 대표적인 뉴스 매체입니다. 깊이에 비해 속보성은 다소 부족할지 모르는데요. 인쇄와 배포에 있어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우리가 아침에 보는 신문은 대부분 전날 저녁 인쇄가 완료 돼 배송을 거쳐 받아 볼 수 있기에 신문 한 부가 완성되어 인쇄를 마치고 배송하는 과정에 생긴 일들은 다음 날 신문에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지역으로 보면 제주나 경남, 전남 지역에 보내는 신문은 이른 저녁 제작이 끝나는데요. 그렇다고 지역별로 신문의 내용은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게 아닌 이상은 처음 만든 신문과 나중에 만든 신문의 내용은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신문사는 대게 5~8번 가량 신문을 찍어냅니다. 책으로 따지자면 5~8번 인쇄를 한 것입니다.
통상 8번 인쇄하는 경우가 많은 신문이지만, 많게는 40판이라고 찍힌 신문도 간간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신문은 마흔 번째 새롭게 찍힌 신문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신문의 판에 대한 잘못된 관행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물론 마흔 번 찍을 수 있지만, 판수를 교묘하게 속이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정직과 신뢰가 생명인 신문인데, 신문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판수를 가리키는 숫자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판수에 대한 정확한 내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이전에는 첫 판을 10판이라 기입하고 다섯 번째 판을 50판이라고 기입하는 등의 관행이 있었다고 해요.
초기의 5~60년 대에는 판수가 1, 2, 3판 등으로 정확히 표시했지만 그후 각 신문사 신문의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판수 숫자가 과장되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판을 마감한 후 급하게 기사가 추가되어 기존 두 판 사이의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지금처럼 두 자리 숫자의 판수를 만들어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판수에 대한 오랜 관행은 언젠가부터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됐지만, 이에 대해 잘 모르는 구독자들은 자칫 특정 신문이 하루만에 50판이나 찍어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신문이라고 착각할지도 몰라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신문 사이의 과한 경쟁이 만든 관행에 대해 최근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신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각 신문사들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출처_ Flickr by micora
‘조선일보’를 비롯한 과거 몇몇 신문은 숫자 대신 가, 나, 다, 라 식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던 것을 제외하면 판수를 바로잡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잘못된 관행에서 시작된 판수 속이기를 고쳐나가는 신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뢰성 회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죠.
‘한겨레신문’의 경우에는 이런 관행이 있기 이전부터 처음 찍는 신문은 1판으로 표시하고 다음에 찍는 신문은 2판, 3판으로 있는 그대로 찍어내기를 지켜왔습니다. ‘세계신문’에서도 최근 잘못된 판수 표시 관행을 바꾸고 자체적인 신뢰성 확보를 위해 현실성 있는 판수로 변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초판을 10판으로 표기하는 것 등은 신문시장의 과열 경쟁 속에서 의도된 잘못이었음을 반성한다”며 과거의 잘못을 대중에게 알려 반성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기존 신문사의 경쟁으로 생겨난 판수 표시 거품을 빼는 실제 인쇄 판수 표시는 얼핏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신문사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밝히고 개선해 나가는 의지가 담긴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신문의 위기라거나 언론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것도 한두 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위기의 중심에는 바로 신문에 대한 ‘신뢰’가 있는데요. 신문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서는 결국 신문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하겠죠. 신뢰성을 높이는 열쇠는 신문 안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바론 ‘콘텐츠’입니다.
방송과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지금과 같지 않았을 때는 어떤 소식에 대해 “내가 신문에서 봤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긍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믿는다고 치부하곤 합니다. 그만큼 신뢰성이 떨어진 신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많아졌습니다.
인터넷 뉴스의 제목 선택 문제에 직격탄을 날린 ‘충격 고로케’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제목 앞에 ‘충격’을 붙여 포털 메인 화면에서 자주 보던 일명 낚시성 기사들을 모아 한눈에 보여주는 사이트로 개설 당시부터 큰 화제가 됐습니다. ‘미디어다음’의 경우 이 사이트에 소개된 기사들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밝히면서 포털의 반성과 정화의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출처_ 충격 고로케 메인 화면
‘충격 고로케’와 함께 일종의 대안 미디어인 ‘ㅍㅍㅅㅅ’의 등장은 지나치게 많은 뉴스 정보의 범람 속에서 바른 정보를 습득하는 ‘큐레이션’의 중요성과 좋은 콘텐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 사례입니다.
기사란 ‘사실을 적음, 또는 그 글’을 말합니다. 여기서 이미 신문의 신뢰성 회복을 위한 답은 나온 것이죠.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하는 것, 즉 사실을 시작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면 대중은 자연스럽게 알아줄 것입니다. 유행에 편승하지 않더라도 유행을 초월한 가치와 재미 그리고 양질의 콘텐츠가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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