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21. 09:29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출처_ flickr by Ernst Moeksis
세월호 침몰 사고를 지켜보며 지난해 여름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도 세월호 사고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7월 15일 노량진 지하상수도관 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범람한 강물에 휩쓸려 사망했었죠. 당시 공사 현장 관리자는 강물이 범람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인부들에게 대피 명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저는 언론사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있던 날, 동기 한 명과 함께 북부지법으로 향하고 있었답니다. 북부지법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부 선배를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반쯤 갔을 때 또 다른 사회부 선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노량진으로 가라.” 아침 뉴스를 보고 사고가 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곳으로 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현장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줄지어 늘어선 언론사 차량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자들, 현장을 통제하는 수많은 경찰과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가족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그것과는 달랐죠. 곧 선배의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스케치를 하라” “피해자 가족의 상황을 알아보고,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라” “경찰 투입 인원을 확인하라” 등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을 당장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실수를 하고, 선배로부터 몇 번의 야단을 맞으며 열두 시간이 흘렀고, 퇴근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알던 세상보다 훨씬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 사람의 이야기를 글에 담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제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같은 의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전 기자라는 길을 한 번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량진 사고 현장을 보고 사고라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던 것처럼 결국 가보지 않고는, 해보지 않고는 실체에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만일 그때 언론사 인턴을 하지 않고 기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면, 노량진 사고 현장에서 취재를 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기자를 계속 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때의 진지한 고민 없이 기자란 이름을 얻었다면, 그 부담감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언론사의 인턴제도는 그래서 필요합니다.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진지한 고민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결국 후회하고 마는 그런 특수함 때문입니다.
출처_ flickr by Richard Taylor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취업’을 원합니다. 갈수록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취업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취업만을 원하는 이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몇몇 스타 강사들은 흔히 꿈을 가지라고, 꿈이 없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합니다. 없는 꿈을 억지로 품으라고 하는 것도 폭력인데도 말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언론사를 지원하는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꿈을 가진 이들입니다(목표와 꿈을 가졌다는 게 더 낫다는 가치 판단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들은 기자가 되기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꿈을 꾸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무작정 기자가 되면 위험합니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아무런 경험 없이 바로 얻게 되면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좌절이 생기는 것입니다. 언론사 입사자들이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필자는 인턴 신분으로 일명 ‘하리꼬미(경찰서 기자실에서 먹고 자는 것을 뜻함)’를 하면서 ‘마와리(서울 지역 경찰서를 돌면서 취재하는 것)’를 돌았습니다. 석 달 동안 하루에 잠은 두 시간 이상 잘 수 없었고, 기삿거리를 찾아내 취재해야 한다는 압박에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언론사에 들어간 선배들의 하리꼬미 경험담을 들으면서 나도 저 일을 하고 싶다고, 제가 하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_ flickr by Bellamy
하지만 현실은 달랐답니다.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며 인내심의 끝을 봐야 했습니다. 취재 아이템을 찾아내지 못하고 선배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두 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마지막 한 달은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 버텼습니다.
필자가 그렇게 버티던 그 순간 동고동락하던 동기 중 몇 명이 회사를 나갔고, 함께 경찰서를 출입하던 타사 동기들 또한 기자가 이런 것인지 몰랐다며 퇴사했습니다. 하리꼬미 생활을 끝내고 정식 기자로 활동하게 돼도 위의 어려움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업무 강도는 여전히 높고 아이템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언론사와 기자 생활의 민낯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인턴제도가 아직 우리나라 언론사에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인턴 제도를 기자 ‘체험’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선배의 지시에 따라 취재를 하고 기사를 씁니다. 자신의 생각이 없이 기사를 쓰고 운이 좋으면 신문지상에 채택이 됩니다. 이 과정 속에는 치열함이 없습니다. 기자라는 프로가 되기 위한 연습 과정이 없는 것이죠. 기자가 이렇게 생활하는 구나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준 채로 입사했다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는 애초에 언론사가 인턴을 정식 기자로 전환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턴 제도를 ‘대학생들에게 언론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식의 자사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필요할 때 잠깐 단순 업무를 할 수 있는 인력을 충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부당한 면이 존재하는데, 언론사가 이러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청춘의 노동을 착취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사 인턴을 지원하는 지원자는 많고 경쟁률이 높아지자 인턴을 쉽게 선발하고 더 쉽게 내치는 것입니다. 언론사의 이런 의도를 아는 지망생들 또한 언론사 인턴 제도를 스펙 쌓기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 경우 거의 대부분이 금방 퇴사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인턴과 공채를 따로 선발하는 채용방식을 바꿔야합니다. 인턴 제도를 철저하게 정식 채용 이전 단계로 활용해서 기자에 대한 적성이 있는지 여부를 현장에 뛰어든 사람에게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론사 지망생과 언론사에도 모두 좋은 채용방식이 됩니다. 언론사 지망생들은 자신의 적성을 확인하고 언론사는 인턴 제도를 통해서 심층적인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_ flickr by M M
세월호 사고를 보도하던 언론사와 기자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기레기’였습니다. 말 그대로 기자는 쓰레기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과격한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번 사고를 전하는 언론의 태도는 결코 올바르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이런 것들이 현실적인 인턴제도 시행으로 고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인즉슨 양질의 기자를 만들어 길러낼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언론사들이 좀더 정확한 경험을 하게 하는 옥석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잇는 실제적인 인턴제도를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위의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6월호 손정빈 뉴시스 기자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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