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라는 ‘문패’는 적합한 걸까?

2015. 5. 20.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우버는 공유경제 나무에서 자란 열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차량을 중개하는 ‘우버’의 국내 진출 논란과 공유경제에 대해서는 <다독다독>에서 작년 말부터 2~3회에 걸쳐 다뤘습니다. 2013년 8월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우버 택시’가 올 3월에 운행 중단되었다는 뉴스가 우버에 관한 마지막 소식이었죠. <다독다독>을 비롯해 많은 언론이 우버에 주목해왔던 이유는 단순히 국제적인 택시 서비스가 국내에서 퇴출되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닙니다. 우버는 공유경제의 토양에서 자란 열매에 불과하니까요.


플랫폼 개념과 실시간 디지털 네트워크의 결합


지금까지 <다독다독>이 소개한 공유경제의 특징에 대해 한 번 정리해 볼까요? “소유하지 않고도 사용한다”는 모토를 내건 공유경제는 개방‧협력‧참여 등 이름만 들어도 근사한 가치를 지향하는 경제 시스템으로 통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패’를 더욱 확실히 얻을 수 있었던 건 ‘실시간 디지털 네트워크’와 ‘플랫폼(platform)’ 덕분입니다. 플랫폼은 지하철에 타고 내릴 때 우리가 매일 밟는 그 발판을 가리키는 말이죠. 사람들이 오가고 교통 서비스가 이뤄지는 통로입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플랫폼이란 말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교류나 교환, 거래 등을 촉진하는 중개수단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플랫폼이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과 결합하면 사람들 사이에 ‘상호작용적인 실시간 반응(RTIR: Real Time Interactive Responsiveness)’을 이끌어낼 수 있는 창구가 됩니다. 우버가 승객과 차량을, 에어비앤비가 여행객과 숙소를 거의 즉각적으로 찾아줄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애플리케이션(플랫폼)을 중심으로 한편에는 서비스 제공자가, 다른 한편에는 소비자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실시간 네트워크를 통해 재화 공유


공유경제는 ‘실시간 디지털 네트워크 중개업’입니다.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급자와 이용자 사이에 거래 가능한 상품과 서비스라면 무엇이든 수익 창출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있죠.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그런 자원의 사례일 뿐 공유경제 그 자체는 아닙니다. 공유경제는 물건을 팔고 싶은데 수요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공급자와 자신의 필요에 부합하는 재화를 못 찾아 서성대는 이용자를 연결해 주기도 하지만, 사장될 수 있는 재화와 수요를 적극 발굴해 수익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시장 잠재력이 대단합니다. 거래가 성사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수많은 유통 관문들이 플랫폼 하나로 간단히 해결되니 비용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 장점도 있고요.


플랫폼을 매개로 한 파괴적인 네트워크 효과


공유경제 시스템은 유연합니다. 산업 경제의 소비자는 자본이나 기술, 전문 지식이 없어 생산자 영역에 진입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공유경제에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공급자 네트워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이용자라도 자신의 재화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는 공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디지털 네트워크로 얽힌 공급자와 이용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경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 탓에 우버의 경우처럼 면허를 가진 기존 사업자와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공유경제는 개인과 개인이 상호의존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하는 수평적인 협력 시스템입니다. 다채로운 품목의 재화를 원하는 소비자가 그 욕구를 충족하면 할수록 ‘공급자-플랫폼-이용자’의 네트워크로 인한 상승효과는 가히 파괴적으로 불어납니다. 6살 밖에 안 된 ‘꼬마 우버’가 50년 역사의 현대자동차와 시가 총액에서 비슷한 수준(약 40조, 2014년 12월 기준)이라고 하니까요. 골드만삭스 같은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투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림 출처_양희동(2014.10). 공유경제 비즈니스 모델과 향후 전망. , 11쪽.


보츠먼이 분류한 공유경제 사례 


그렇다면 기업 가치가 현대자동차와 맞먹는 우버, 7년 동안 2300만 명을 끌어 모아 2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에어비앤비 외에 공유경제를 모델로 한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런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공유경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공유경제의 기본 정의는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유경제 분류방식에 관해 명시된 합의가 아직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산업 분석가 제레미 오양(Jeremy Owyang)은 품목을 기준으로 9천여 개 신규업체(start-ups)를 음식, 물류, 건강, 금융, 운송, 공간, 인력, 물품, 에너지, 교육 등 11개 분야로 나눕니다. 컨설턴트 출신의 사회적 혁신가 레이철 보츠먼(Rachel Botsman)은 공유경제를 ‘주체’와 ‘방식’에 따라 분류합니다. 


주체는 기업 혹은 개인…단기 공유냐 장기 공유냐


보츠먼은 공유주체를 ‘기업 대 개인(B2C)’과 ‘개인 대 개인(P2P)’ 모델로 구분합니다. 공유방식은 제품을 잠시 대여하거나 단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시적 공유’, 수공품의 물물교환이나 중고거래로 물건을 재활용하는 ‘장기적 공유(Ebay, Craigslist, Etsy 등)’ 그리고 제품 아이디어 협력 및 자금 협조와 연관된 ‘선택적 공유(Kickstarter, Zopa 등)’의 범주로 세분화됩니다. 가령, P2P 모델 중 일시적 공유에 해당하는 사업에는 아시다시피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대표적입니다. 일상적인 잡일의 단기 아르바이트 중개 서비스 ‘태스크래빗(TaskRabbit)’도 여기에 속합니다. B2C 모델의 일시적 공유에는 유료회원제로 운영되는 렌터카 서비스 ‘집카(Zipcar)’가 있습니다. 멤버십 카드로 차문을 열 수 있고, 렌터카 업체 방문 없이 온라인을 통해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된 차를 시간 단위로 빌릴 수 있어 편리합니다. 온라인 인력중개업체 ‘오데스크(oDesk)’도 집카와 동일한 범주로 묶입니다. 실리콘밸리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를 대상으로 시작했는데 비기술직 인력도 소개도 하고 있답니다. 장기 임대했지만 놀고 있는 사무실이나 책상 등을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리퀴드스페이스(LiquidSpace)’도 있습니다.


윤리적 가치도 자원으로 삼는 공유경제


공유경제는 디지털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신속하고 편리하게 유휴자원이나 잉여자원의 사용을 중개합니다. 친환경적이며 알뜰한 윤리적 소비를 권장하는 면이 있죠. 그러나 일부 사회운동이나 소규모 공동체를 제외하면 디지털 공간의 공유경제가 대의명분으로 추진력을 얻는 건 아닐 겁니다. 당연히 수익 없이 사회적 가치만으로 이뤄지는 공유경제를 유지하는 일은 탄탄한 신뢰와 투철한 공익적 마인드로 무장한 사람들에게도 버거운 일입니다. 저는 공유경제의 지속가능성은 ‘소비의 윤리화’ 덕택이 아니라 ‘윤리의 자원화’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공유경제는 공유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닌 듯합니다. 소비가 윤리 영역으로 들어온 게 아니란 뜻입니다.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을 통해 소비 자원의 영역으로 윤리적 가치를 끌어당긴 겁니다. 공유는 돈으로 전환될 수 있는 명분이니까요.


공유라는 이름은 명실상부한 것일까?


기존의 산업 경제 안에서 방치된 잔여 자원들까지 수익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공유라는 거창한 이름을 계속 내걸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물론 공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긴 하겠지만요. 이것이 제가 글의 초입에서 공유경제라는 문패가 아름답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음식 쓰레기는 남기지 말자고 말하면서 자원 낭비를 막고 효율적 분배를 촉진하며 돈도 벌 수 있는 디지털 공유경제 시스템에 왜 뜬금없이 시비를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공유경제를 그냥 ‘재활용 경제’라고 부르면 안 될 이유라도 있을까요? 공유라는 아름다운 말에 저처럼 ‘혹’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걱정돼서 드려본 말씀입니다. 




참고자료

박민우(2014.12.5.). 우버(Uber) 논란을 통해 본 공유경제 플랫폼에 대한 고찰. <디지에코 보고서>.

김동원(2013). 인터넷의 이중적 플랫폼: 공개‧공유‧참여의 광장이자 추적‧감시‧통제의 시장. <한국언론정보학보>, 64호, 5~30.

레이철 보츠먼, 루 로저스 지음/ 이은진 옮김(2011). <위 제너레이션>. 파주: 푸른숲.

양희동(2014.10). 공유경제 비즈니스 모델과 향후 전망. <Cheil>, 8~11.

Allen, D. & C. Berg(2014.12). The sharing economy: How over-regulation could destroy an economic revolution. Institute of Public Affairs.

Choi, S. Y. & A. Whinston(2000). The internet economy: Technology and practice. Austin, TX: SmartEcon.

소셜미디어가 바꿔놓은 산업...공유경제(2013.8.7.)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30807081919 

How the Collaborative Economy is impacting the Energy Sector(2015.4.23.)

http://www.web-strategist.com/blog/category/collaborative-economy/ 

서동욱 (2002). <들뢰즈와 철학>, 서울: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