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문에 광고가 실리지 않는 이유
2011. 9. 23. 09:15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앞선 글을 통해 북한 신문의 종류와 기자들의 생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드렸습니다. 오늘은 북한 노동신문의 면별 배치와 편집 특성을 살펴볼까 합니다.
노동신문의 경우 6개 면을 발행합니다. 북한에서 6개 면을 발행하는 신문은 노동신문이 유일하고 다른 신문은 4개 면을 발행합니다. 신문은 접었다가 한 장씩 넘기면서 보는 형태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면이 4개면씩 늘거나 줄어듭니다. 요즘 한국 신문들은 보통 32면을 발행하며 광고가 적게 들어와 감면할 때는 28면을, 증면할 때는 36면을 발행합니다. 그런데, 노동신문의 6개 면은 쉽게 말해서 신문용지 3장입니다. 그래서 2장은 서로 접혀 연결되지만 남은 1장은 속지 형식으로 끼워져 나옵니다. 북한 주민들도 1~4면을 본지, 5, 6면은 속지라고 부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세계의 모든 신문들은 그날 가장 중요한 뉴스를 1면에 싣습니다. 그러나 북한 신문 1면은 김정일 동정이나 우상화를 싣기 때문에 북한에서 가장 가독성이 떨어지는 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1면은 그냥 대충 휙 흩어보고 넘깁니다. 어차피 거기 있는 내용은 어제나 오늘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가 북에 있던 1990년대엔 김정일이 군부대를 방문했다는 뉴스가 자주 1면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몇 년 치 신문을 쌓아놓아도 군부대 방문을 했다는 1면 사진과 보도 내용은 거의 달라지지 않아 외울 정도입니다.
1면 사진은 무표정한 김정일이 바싹 긴장해 꼿꼿하게 서있는 군부대 군인들과 찍은 단체 사진이 실립니다. 2면 쯤에는 김정일이 고위 군관들의 안내를 받아 부대 곳곳을 돌아보며 웃고 있는 사진, 김정일 앞에서 군인들이 예술 공연을 하는 사진, 김정일이 식당에 들어가 오이나 산나물 같은 것을 들고 만족해하는 사진 등이 실립니다. 물론 이런 식당의 야채나 나물은 늘 있는 것이 아니고 김정일에게 만족을 준다는 명목 하에 전 군단에서 모아 걷어온 것이며 김정일이 가고 나면 다시 간부들이 걷어간다는 상식 쯤은 북한 주민들도 다 압니다.
1면 기사 내용도 김정일이 며칠 인민군 **군부대를 현지 지도했고, 누가 동행했고, 부대원들이 어떻게 감격했고, 김정일이 어떤 말을 했고 등등을 싣는데 늘 똑같습니다. 김정일의 부대 참관 코스도 처음에 김일성 기념비에 가서 인사하고 진지에 올라가고 식당 보고 병실에서 공연을 본 뒤 마지막에 쌍안경, 기관총 등을 선물로 주고 기념사진을 찍고, 이런 똑같은 내용을 탈북하기 전까지 5년 넘게 신문 1면에서 지겹게 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1면과 2면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3면도 당과 수령의 배려와 은덕, 그리고 이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충신들이 어떻게 했다는 등의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도 북한 주민들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내용들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서 가장 인기 있는 지면은 남조선면인 5면과 국제면인 6면입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 글에 북한 주민들의 신문 구독 태도를 설명드리며 더 자세히 쓰겠습니다.
노동신문은 가로쓰기 편집체제이며 한자나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지면의 크기는 가로 40.5㎝, 세로 54.5㎝입니다. 한국의 대판 신문에 비해 보면 가로가 1㎝ 더 길며, 세로는 8단입니다. 대다수가 세로 7단을 사용하는 한국 신문들과 비교하면 조금 답답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활자체는 8호 명조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글씨가 매우 작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김일성, 김정일의 이름이나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고딕체를 사용해 눈에 띄게 합니다. 이는 북한의 모든 신문과 잡지에서 공통적인 것입니다.
노동신문을 포함한 북한 신문들은 상업성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광고란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6개 면 모두 기사로 빽빽하게 차있습니다. 신문 활자가 작다는 것과 지면 전체가 기사로 차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기사량은 한국의 12면 신문과 비슷할 것입니다.
북한 신문에 광고가 없기는 하지만 지방지인 평양신문에는 간혹 상점의 판매 안내와 같은 공지가 실릴 때도 있습니다. 물론 북한 언론일꾼에게 물어보면 이것은 광고가 절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면서 인민을 위한 정보서비스일 뿐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북한 신문에 광고가 실리는 일은 아주 요원해 보입니다. 김정일 스스로가 광고를 매우 싫어합니다. 2000년 8월 한국 언론사 사장단과 만난 김정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고가 없어서 KBS TV를 내가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KBS TV만 봅니다. NHK도 광고가 없어서 좋고 국제정치도 잘 다루고 있고, 프로그램을 점잖게 보내서 보수적이어서 내가 좋아합니다. 그러나 중국 CCTV와 러시아 TV들은 관영인지 아닌지 매우 혼탁스럽습니다. 국가소리를 내는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광고를 하지 않고 말이지요... 나는 NHK와 BBC를 존중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북한에서 누군가가 독단적으로 광고를 실었다가는 그날로 매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목숨을 걸지 않는 한 누가 그런 용단을 내릴 생각도 하지 못하죠. 이러저러한 점을 고려하면 아마 세계에서 광고비가 가장 ‘비쌀’ 신문은 노동신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이지만 김정일은 남측 사장단과 만나 “보도 경쟁에서 북측 언론이 질 수 있으나 정확성에 관해서는 남측 언론 못지 않습니다. 우리가 훨씬 정확합니다”라고 자화자찬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가 진짜로 북한 신문이 매우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그렇다면 난감한 일이죠.
김정일은 한국 신문의 북한관련 기사는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당시 서울신문 연재소설을 쭉 보고 있는데 재미있다고 스스럼없이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 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 북한 언론은 철저히 김정일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는 까닭에 김정일을 빼고는 북한 언론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의 언론관을 엿보면 북한 언론이 왜 저런지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철저히 김정일의 입맛대로 제작되는 북한 신문이 주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이에 대해선 다음 글에 계속 이야기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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