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편집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 똑똑한 독자가 되려면?

2011. 9. 27. 15:0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 독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신문을 재편집할 때 지면 읽기란 신문 편집자와 한 판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둔 수를 보며 그 의중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 (신문읽기의 혁명 1-P. 280)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개의 시선들

우리는 한 번쯤 외눈박이 나라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곳이니 그 나라에서는 눈이 두 개인 우리들이 이상한 사람이죠.

‘세상에 두 개의 눈으로 혼란스럽게 사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어떻게 눈이 두 개일 수 있단 말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운 나라. 그렇다고 해서 외눈박이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들이 살아온 사회와 문화에서 눈이 한 개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죠.

이처럼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이 배우고 느끼고 살아온 경험의 총체이며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일 뿐이지만 사람들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생각의 근거가 됩니다. 보통 ‘읽는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텍스트뿐만 아니라 시청각 매체를 포함하는데요. 책은 물론이고 신문과 잡지 등 문자로 된 읽을거리와 매체로 된 읽을거리를 통해 사람들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그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자신의 말과 글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보다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과 생각, 행동의 변화는 결국 읽는 사람의 결정에 달려있는데요. 아래 두 개의 광고를 살펴보겠습니다.

 



2011년의 가장 뜨거운 감자 ‘무상급식’은 서울시장은 물론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좌우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관심사였습니다.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 원인과 결과 즉,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생각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사람들의 생각은 광고처럼 상반됩니다.

왼쪽은 서울시가 무상급식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광고이고 오른쪽은 이 광고를 본 한 네티즌이 만든 패러디 광고입니다. 무상급식을 서울시 전체 행정의 ‘비용’ 측면에서만 생각해 봐도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고, ‘복지’ 측면에서 접근하더라도 여러 생각이 충돌합니다. 

옳고 그른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대척점에 서게 됩니다. 더구나 언론 역시 상반된 입장에서 여론을 부추기죠.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판단 기준의 바탕에는 언론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우리가 매일 접하는 언론의 힘은 매우 막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언론,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

신문과 TV, 인터넷, SNS를 통해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정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 개인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정보량은 아무리 빠른 컴퓨터라도 그 처리가 벅찰 정도로 시시각각 쏟아집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많은 정보들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본질’보다 드러난 ‘현상’에 집착하고 ‘진실’보다 ‘소문’에 관심을 갖기 쉽습니다. ‘이 바쁜 세상에서 내가 진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이 많지만 대표적인 책 한 권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2003년에 나온 『신문읽기의 혁명1』과 2009년에 나온 『신문읽기의 혁명2』는 언론에 대해 새로운 눈을 갖게 해주는 책입니다. 
 




『신문읽기의 혁명1』은 한 마디로 ‘편집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에요. 역사도 마찬가지지만 수많은 사건 중에서 ‘어떤 것(what)’을 선택할 것인가와 ‘어떻게(how)’ 보여줄 것인가에 따라 사실은 전혀 다른 형태로 전달됩니다. 

방송과 신문으로 대표되는 언론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방송사와 신문사마다 헤드라인이 다르고 톱뉴스에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느냐 또 동일한 사건이라도 누구의 입장에서 전달하느냐에 따라 시청자와 독자들의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입체적으로 전달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을, 사실 너머의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이라구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접하는 언론을 맹신하는 멍청한 군중이 되고 만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이념의 잣대나 편견으로 재단하면 우리는 외눈박이 나라에 갇혀 살 수밖에 없습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것을 종합적이고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언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흔히 언론은 중립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요?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시각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정부의 정책과 사회적 이슈에 따라 사안별로 달라지지 않기도 하구요.

『신문읽기의 혁명1』이 ‘편집’에 초점을 두었다면 『신문읽기의 혁명2』는 ‘정치와 경제’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인 ‘경제’를 통해 정치와 사회적 사건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말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선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치에 선행하는 ‘돈’의 위력은 점점 우리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합니다. 이념의 중립은 자본 앞에 무력해지고 민주주의와 삶의 가치 또한 자본 앞에 초라해지죠. 우리는 언론이 객관적 사실을 전달할 거라는 순진한 믿음, 권력과 자본의 감시자 역할을 할 거라는 원론적인 생각이 얼마나 유효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적 편향성이나 맹목적인 자본의 논리가 아닌 참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문읽기의 혁명』의 저자의 말을 다시 한 번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언론기관’이라는 골리앗 앞에서 대단히 무기력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신문을 올바르게 읽어 나간다면 독자들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이 될 수 있다. 신문을 볼 때 편집을 읽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제도 결국 다윗이 골리앗에게 던졌던 돌멩이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 P.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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