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1. 11: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요약] 지난 2월 영국 의회에서 ‘3부모 체외수정법’이 통과되며 논란이 일어났던 가운데, 최근 미국 연구진에 의해 세 명의 DNA를 가진 ‘세 부모 아기’가 출산됐습니다. 세 부모 아기 출산의 찬반양론을 살펴봤습니다.
세계 최초로 엄마, 아빠, 난자제공자 등 세 명의 유전자를 결합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유전 질환을 막는 획기적인 시술이라는 입장과 생명윤리의 금기를 넘었다는 입장이 엇갈려 의학계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죠. 세 부모 아기 출산, 찬반양론을 살펴봤습니다.
#유전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세계 최초로 세 부모를 가진 아기는 요르단 출신의 부모를 둔 아브라힘 하산입니다. 하산은 엄마의 유전자 변이를 물려받지 않기 위해 엄마의 난자에서 빼낸 핵을 공여자의 난자에 주입한 후 아빠의 정자와 체외 수정시키는 방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연합뉴스, '엄마 둘에 아빠 하나' 사상 첫 세 부모 아기 탄생 2016.09.28
미국 뉴욕 ‘새희망출산센터’의 존 장 센터장과 의료진은 “생물학적 부모 셋을 둔 사내아이의 탄생과 관련한 간추린 요약본을 의학저널 ‘임신과 불임’ 온라인판에 먼저 공개하고 10월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리는 미국생식의학학회 학술회의에서 더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세 부모 아이의 체외수정 기술은 의학적으로는 크게 어려운 기술이 아닙니다. 현재의 시험관아기 시술 프로그램의 핵이식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복잡한 체외수정을 시도했던 이유는 엄마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이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통해 섭취한 영양소를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발전소 같은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는 엄마로부터만 물려받는 세포소기관입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 이상이 있으면 당뇨, 청각장애, 근육쇠약증, 점진적 시각장애, 간질, 간 기능 장애, 치매 등의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대부분 사산하지만 어렵게 출산에 성공하더라도 생후 2∼3년 유전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발생빈도 역시 6,500명당 1명꼴입니다.
의학계에서는 세 부모 체외수정 시술의 합법화로 부모의 희망에 따라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질환의 대물림을 예방할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영국 의료재단 웰컴트러스트의 더그 턴벌 교수는 "세 부모 체외수정 합법화로 고통을 받아온 부모와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고, 의학윤리학자인 길리안 로크우드 박사는 "새로운 체외수정 시술법은 고장 난 생체 배터리를 제대로 작동시키려는 것이지 아이의 키나 눈 색깔, 지능 등과는 무관하다"고 지지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제3의 여성으로부터 받는 유전자는 DNA 1%의 10분의 1에 불과하므로 세 부모 시술이 아닌 2.0001 부모 시술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존 거던 박사 등 노벨상 수상자 5명을 비롯한 과학계 인사 40여 명은 앞서 "세 부모 체외수정' 선택권은 법이 아닌 부모에게 주어져야 한다"며 법안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질환 환자 가족인 레이첼 킨은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돼 환자 가족들은 대물림되는 무서운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반겼습니다.
#안전성과 윤리성의 문제가 남아 있다
이 같은 반응과 달리 시술의 안전성과 합법화에 따른 파장을 우려하는 반응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서식스 대학의 테드 모로 박사는 "보건당국은 이번 시술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안전성은 여전히 의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생명윤리 운동단체인 인간 유전학 경고운동(Human Genetics Alert) 협회의 데이비드 킹 박사는 "세 부모 체외수정은 생명윤리의 금기 선을 넘는 일"이라며 '맞춤형 아이'를 탄생시키려는 시도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보수당 소속 피오나 브루스 하원의원은 "여러 세대로 이어질 이번 결정의 결과는 간단히 예측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다시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가톨릭 교회와 영국 성공회도 이런 시술법은 안전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으며 배아세포를 파괴하고 변형하려는 시도가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성공회의 리 레이필드 스윈던 주교는 "세 부모 체외수정 합법화로 인류의 유전자 변형 시도가 금기 선을 넘어 통제 불능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의학 발전과 생명 윤리의 모순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세 부모 체외수정 기술’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현재로써는 알 수가 없으며, 윤리적 측면에서는 이 방법이 나아가 ‘맞춤형 아기’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의료재단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여성이 아기를 가지려면 건강한 여성의 난자를 기증받아 남편의 정자를 수정하는 체외수정 시술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기술적 어려움보다 기증자를 찾는 게 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종교계는 해당 시술이 난자와 배아를 파괴하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생명윤리 경시 현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구인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생명윤리학과 교수는 “생명을 살리는 게 의사가 해야 할 일인데, 시술 과정에서 많은 배아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세 부모 아기는 원초적으로 생명윤리 및 의료윤리의 금기 선을 넘어서는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일순 연세대 명예교수는 “세 부모 아기는 나중에 커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생명윤리법을 통해 유전자 조작에 의한 체외수정 시술을 금지하고 있다. 굳이 생명윤리 파괴 문제가 아니라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선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합니다. 박상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안양샘병원 이사장)은 “2세를 갖고 싶은 불임부부의 열망을 이해하지만, 임신을 위한 체외수정 과정에서 생명윤리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또한 나중에 미토콘드리아를 제공한 여성이 모성(母性)을 주장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세 부모 아기 체외수정법은 유전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로운 기술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유전병이 없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유전자 중 우월한 것만 고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유전자만을 골라 받아 ‘슈퍼 베이비’를 만들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인간에게서 생명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세 부모 아기에 관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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