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과학자 최재천이 말하는 '쉽게 쓰는 법'
2011. 9. 26. 13:21ㆍ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스마트폰의 선두 주자 아이폰.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두고 “여기에 인문학을 담았다”는 말을 했는데요. 이 말은 첨단 IT 제품이라고 해서 단순히 기술만으로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구동 원리와 작동 방법, 화면전환 방식 등 이 모든 것을 사람이 사용하기에 가장 편리하도록 ‘사람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자의 서재>를 쓴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스티브 잡스, 제임스 캐머론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통섭형 인재의 표본이다”라고 했는데요. 통섭형 인재란 말은 한 가지 분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을 조합해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뜻합니다. 지금까지의 시대는 빠르게 남을 쫓는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의 시대였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즉, 시장 선도자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바뀌게 될텐데요. 이런 시대일수록 통섭형 인재가 각광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통섭형 인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재천 교수는 그 방법에 대해 먼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것’ 그리고 ‘많이 읽고 많이 써볼 것’을 주문했는데요. 어려운 과학지식을 재미있는 글로 풀어쓰는 ‘글 쓰는 과학자’ 최재천 교수. 지난 9월 22일, 부산대에서 열린 <리더스 콘서트>에서 만나보았습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통섭의 시대
눈웃음이 매력적인 최재천 교수. 그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강연 내내 학생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는데요. 그는 “제가 경험한 모든 일을 둘러봐도, 이 세상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글쓰기가 있다”라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글이란 연애편지가 될 수도 있고, 논문이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요. 논문은 똑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더라도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쓰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논문 같은 경우에는, 수학 공식을 쓰는 게 아니라 공식과 공식을 이어주는 말이 필요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면 단 한 문장도 넘어가질 못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최재천 교수는 이외수 작가를 예로 들며 “트위터 팔로워 수가 가장 많은 사람이 이외수 씨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그 짧은 글에도 이외수 씨만의 글쓰기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는데요. 더불어 과학이든 인문이든, 분야에 상관없이 글쓰기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하버드 대학 유학시절, 세계 최고의 학문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지도교수였다고 해요.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그저 소통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나면 뭔가를 창조해내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여 최재천 교수는 ‘통섭’이라는 학문용어를 만들게 되었다는데요.
통섭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최 교수는 “어느덧 우리시대는 통섭의 시대가 되었다. 아직 우리나라는 통섭의 시대가 제대로 열리진 못했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하고 있다”며 오늘의 강연의 핵심은 ‘이러한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숙제는 잘하는데 왜 출제는 못하나
최근 우리나라 자동차는 디자인도 예쁘고 성능도 좋아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최재천 교수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 차 한번 만들어봐라”라는 숙제를 내주면 기술력, 디자인 능력 등을 총동원해서 참 잘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숙제는 제법 하는데 아직도 ‘출제’는 못하고 있다는데요. “우리도 잘 만드는데, 왜 ‘스티브 잡스’가 나오면 전세계가 열광하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야 하냐”며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화 ‘아바타’ 제작 당시 한국인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여럿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론의 주문에 따라 작업을 했는데요. 이것을 ‘하청’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도 하청 일은 곧잘하는데 저런 작품을 만들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요. 아바타와 같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컴퓨터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도 그려야 하고, 스토리도 만들어야 하고, 과학도 알아야 하는 등 인문학적 바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학문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스티브 잡스와 제임스 캐머런 같은 인재가 나타나며 창조가 가능해진다라는 건데요.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2만 불 벽에 걸려서 못 넘어간지가 거의 10년이 되고, 대한민국 국민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또 아이큐 테스트를 하면 대한민국이 1~2등을 한다는데요. ‘머리도 제일 좋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우리는 왜 이럴까?’를 생각해보니 ‘혹시 숙제만 잘하고, 하청만 열심히 해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한도가 저기 아닐까’라는 걱정이 앞선다고 합니다.
최 교수는 황병기 명인이 첼리스트 장한나에게 덕담한 이야기를 인용하며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고 하셨는데요. “20세기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따로 놀았지만 21세기는 여러 학문이 만나고 함께 넓게 파야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환경운동가이자 미국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는 하버드 대학 시절 은사인 로저 레벨 교수의 영향으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을 냈는데요. 그 후, ‘불편한 진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선댄스 영화제, 칸 영화제 등에서 격찬을 받고,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전세계에 알린 공로로 200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앨 고어는 영화를 만들 때 직접 연출을 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되겠지만, 실제로는 지나치게 딱딱한 엘리트였다고 해요. 그랬던 그가 영화를 만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앨 고어의 대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할리우드 액션 스타 ‘토미 리 존스’의 영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얻었기 때문인데요. 이것이 바로 하버드의 교육이라고 합니다.
앨 고어가 대학시절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룸메이트로 인해 고생은 많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진정한 리더로 태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셈이죠.
하버드 대학은 오랜 역사와 함께 세계적인 영향력, 많은 재산으로 세계 일류 대학 중 하나가 되었는데요. 그 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를 봤을 때 최재천 교수는 “과감하고 또 기가 막히게 다양한 사람들을 조합하여 그들과 소통하고, 또 그 과정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닌 치열하게 파고들어야 하는 행위
마지막으로 최재천 교수는 최근에 펴낸 <과학자의 서재> 이야기를 하면서, 책을 쓰기 위해 인생을 둘러보니 방황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하는데요. 그는 한번 재수를 하고도 의예과에 떨어져 2지망으로 들어간 동물학과에서 공부를 하는 대신 겉돌기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방황의 순간마다 책이 옆에 있어줬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는데요. 그는 “책을 가까이 해라,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으면,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큰 힘을 줄 것이다”라며, 그 역시도 프랑스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책이 본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독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최재천 교수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독서를 취미로 읽을 거라면 그만둬라. 눈 나빠진다. 차라리 클럽 가서 춤을 춰라”고 말이죠. 취미로 독서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건 ‘해리포터 시리즈’ 뿐일 것이라며, 진짜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고 했는데요.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에 술술 읽히는 사람이 없듯이 책은 씨름하면서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계속 비슷한 책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책장이 넘어가고, 신문에 그 분야 이야기가 나오면 또 읽고, 그렇게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는 거라고 해요.
또한, 책뿐만 아니라 신문 읽기 역시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이르면 지금의 현대인들은 100살까지 살기 위해 평생 5~6번 직업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렇게 바뀐 상황에 적응하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신문에서 얻은 지식과 독서가 제일 좋은 답이 된다고 합니다.
최재천 교수는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결국은 ‘글쓰기’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잘 쓰려면 역시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닌, 내가 모르는 분야와 씨름하면서 치열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강연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최재천 교수와의 질의응답 시간에 한 여학생은 “독서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했는데요. 그는 “책방에 가면 한 분야의 책 제목 전체를 쭉 훑어 보고, 흥미로운 게 있으면 빼서 펼쳐봅니다. 몇 개월 반복하다 보면 그 분야의 흐름이 보이게 되더군요” 또한 “그럴 때에는 어떤 책을 사야 하는지도 눈에 들어오는데요. 요즘은 신문 기사들도 참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나 주제를 짜임새 있게 전달하는 신문 기사를 찾아서 꼼꼼히 읽는 것도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콘텐츠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불일치가 생기면 컬트가 되는 것이고, 일치되면 흥행이 되는 것이 것이다’라고 하는데요. 이제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지식이 있더라도,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박물관 속의 박제나 다름없겠죠? 어려운 과학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쓰는 스토리텔링의 달인 최재천 교수, 그는 진정 콘텐츠를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알고 있는 이 시대의 강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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