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0. 11:00ㆍ해외 미디어 교육
지난 6월 구글은 ‘비 인터넷 어썸(Be internet awesome)’이라는 어린이용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게임 방식을 이용해 쉽고 재미있게 올바른 인터넷 사용법을 안내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인터넷 이용 교육을 하는 교사와 부모를 위한 교안까지 담고 있다. 필자가 자신의 초등학생 자녀와 직접 체험해 본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오세욱(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큰 아이는 그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혼자만 쓸 수 있는 컴퓨터를 줬다(그 명분으로 나는 최신형 컴퓨터로 갈아탔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필요 없다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익숙하게 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딱히 이용 시간을 통제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하라고 간섭도 하지 않았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 큰 아이는 컴퓨터로 뭘 하는지 모르겠고 작은 아이는 남이 게임을 하는 방송을 보든가 자신이 직접 게임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 관련 내용을 검색하기도 한다. 나름 미디어 연구자라고 여기저기에 ‘이러면 좋다, 저러면 좋다’라며 고상한 척하는 글을 쓰면서도 막상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스스로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이 검색이나 제대로 할 줄 아는지 걱정될 때가 많다.
‘사이버 불링’ 괴물 무찌르기
지난 6월 구글은 ‘인터넷을 기가 막히게 멋진 곳으로 만들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비 인터넷 어썸(Be internet awesome)’이라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연구자로서 호기심에 접속했지만 인터넷의 어둠의 세계에 더 익숙한 나로서는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디지털 시민으로서 예의를 갖추고 피싱(phishing), 가짜 정보 등을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 아이들이 인터넷을 자신감 있게 활용하게 한다는 목표는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온라인 공간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영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겠다는데, 그게 가능한지도 회의적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정보를 조심스럽게 공유해야 하며, 거짓 정보를 잘 구별해내야 하며, 나에 대한 정보를 소중히 보관해야 하며, 나를 대하듯이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하며, 의심스러우면 즉각 말하라는 지침들도 이미 다 아는 얘기로 들렸다. 간략한 소개 바로 아래에는 ‘인터랜드(Interland)’라는 게임이 있었다. 별도로 내려 받지 않아도 브라우저를 통해 간단하게 실행이 가능했다. 새로운 게임이있다고 둘째 아이를 불렀다.
구글의 ‘비 인터넷 어썸’에 실린 인터랜드 게임 중 ‘친절한 왕국’ 실행 장면. 빨간 색 인터너트를 괴롭히는 노란색 트롤을 피해 인터너트에게 하트를 건네주면 점수를 획득한다.
첫 번째 단계는 ‘친절한 왕국(Kind Kingdom)’이었다. 괴물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에 시달리는 ‘인터너트(internaut)’ 1들에게 하트 모양의 친절함(kindness)을 가져다 줘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면 점수를 따는 방식이었다. 방향키와 스페이스바만 누르면 되는 간단한 방식이었는데 아이가 재미있어 했다. 갑자기 아이가 물었다. “자꾸 나오는 저 괴물, 사이버 불링이 뭐야?” “응, 사이버 불링이란 인터넷에서 자기 얼굴 안 보인다고 댓글, 메시지 등으로 상대방을 막 괴롭히는 행동을 말하는 거야.” “나쁜 짓이네.” “응, 인터넷하다 보면, 얼굴 안 보인다고 저런 사람 많은데, 결국 다 알게 돼. 그러니까 넌 그러지 마.” 아이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다 깼다.
두 번째 단계는 ‘현실의 강(Reality River)’이었다. 주어진 질문에 보기 세 개를 주고 그중에 맞는 답을 선택하면 징검다리가 놓여 강을 건너는 방식이었다. 10개의 질문을 모두 맞혀야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은 “피셔(Phisher)가 뭐냐”였다. 정답은 “온라인상의 사기꾼으로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함”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나는 주기 싫은데 누군가가 자꾸 내 개인 정보를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정답은 “대화를 멈추고 즉시 믿을 수 있는 어른한테 얘기한다”였다. 물론, 질문과 답은 다 영어였고 아이에게는 내가 해석해서 들려줬다. 이러한 내용의 질문과 답을 이어가다 보니 다 깼다.
세 번째 단계는 ‘의식이 충만한 산(Mindful Mountain)’이었다. 사각 판에 45도로 기울어져 있는 거울에 빛을 굴절시켜 원하는 목표물을 맞히는 방식이었다. 목표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소풍을 다녀온 영상을 부모님과 공유해도 될까”라는 질문에 빛을 굴절시켜 부모님 모양의 목표물을 맞히면 정답이 되는 것이다. “개인 이메일 비밀번호는 어디에 저장해야 될까”라는 질문에는 “개인의 비밀 금고”라는 정답을 빛을 굴절시켜 맞혀야 한다. 빛을 굴절시키는 계산이 다소 까다롭지만, 상당히 재미있다. 질문과 답 내용을 설명하면서 빛 굴절 계산은 아이가 하도록 했다.
인터랜드 게임의 세 번째 단계인 ‘의식이 충만한 산’ 실행 장면. 화면 하단의 장치를 좌우로 움직여 거울 판을 향해 빛을 발사 후 굴절시켜 원하는 목표물을 맞혀야 한다.
네 번째 단계는 ‘보물의 탑(Tower of Treasure)’이었다. 끝없이 달리면서 방향키를 좌우로 움직여 화면에 등장하는 알파벳 철자들과 숫자들을 모아 자신만의 비밀번호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조금만 실수하면 모아놓은 철자들을 놓치게 된다. 철자와 숫자들을 많이 모을수록 더 강력한 비밀번호를 만들 수 있다. 조작이 까다로워 아이가 어려워했다. “왜 이렇게 어렵냐”는 아이의 불만에 “비밀번호가 복잡해야 다른 사람이 모르지”라고 답했다.
부모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어디선가 이미 해 본 간단한 방식의 게임이었지만, 게임을 끝내고 생각해보니 아이와 이런 내용을 주제로 얘기를 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친김에 교사와 부모를 위한 교안 내용까지 읽어봤다. 조심스럽게 내용을 공유해 인터넷을 똑똑하게 이용하고, 가짜 정보를 잘 구별해내 인터넷에 경각심을 갖고, 나의 정보를 안전하게 보관해 인터넷을 튼튼하게 이용하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예의를 갖추고, 의심스러우면 바로 말해서 인터넷을 두려움 없이 이용하라는 지침들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지침들은 인터랜드 게임의 각 단계와 연관되어 있었고, 교안은 그 지침들과 관련한 주요 용어 설명, 내용 이해를 위한 간단한 퀴즈, 해보면 좋을 활동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천천히 읽어보니 이건 아이보다 부모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스스로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뭐가 좋고 나쁜지에 대해서 나 스스로 명확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막연하게 “이것저것 다 해 보면 좋지”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을 뿐, 어떻게 해 보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컴퓨터만 던져줬을 뿐이다.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 그 내용을 설명하고 질문에 답하고 난 뒤 교안 내용까지 보고 나니, “최소한의 방법은 알려줄 필요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알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경험하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깨달은 바를 실행하기 위해 교안의 내용에 따라 아이가 쓰고 있는 이메일 관리 방법을 알려주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내 눈에는 아직 한참 어려 보이는데 사생활이라서 보여줄 수 없다고 한다. 난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구글은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을까? 나 같은 무관심한 아빠들에게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위드구글(withgoogle)’이라는 도메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구글에 친숙해지기를 원해서다. 또한, 가족을 온라인 공간에서 구글 서비스로 묶어 두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구글의 ‘패밀리 링크(family link)’는 이러한 의도를 잘 보여준다. 패밀리 링크 앱은 13살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것이다. 아이들이 안드로이드 기기를 사용할 경우 부모들이 아이들의 앱 설치, 사용 시간, 취침 시간 등을 제어할 수 있게 해 준다. 콘텐츠 필터 기능도 제공해 가족만의 디지털 기기 이용 규칙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와 자녀 모두 구글 계정이 있어야 하며, 안드로이드 기기에서만 작동한다.
처음 만든 이메일 계정은 첫사랑에 대한 추억처럼 오래간다. 구글은 기가 막히게 멋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첫사랑이 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 아이들을 보다 안전하게 보호하고 적극 활용하도록 돕고 싶은 교육적 의도가 우선이기는 하다.
- Internet과 astronaut의 합성어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일반 이용자를 말한다. [본문으로]
'해외 미디어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네임리의 ‘미디어 리터러시 주간’ (0) | 2018.01.11 |
---|---|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국 핀란드 (0) | 2017.12.05 |
프랑스, 학부모를 위한 미디어교육 가이드북 발간 (0) | 2017.11.02 |
국가·지역사회가 밀어주고 학교는 열정으로 화답 (0) | 2017.09.26 |
EU 28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현황 보고서 (0) | 2017.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