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5. 14:00ㆍ해외 미디어 교육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모든 교육비가 무료인 나라, 바로 세계 교육 경쟁력에서 1위를 차지하는 핀란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핀란드식 교육 방법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우리가 핀란드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다른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규 교과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때문이다.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현황을 소개한다. |
심미선(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1
오늘날 미디어는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한다. 길을 찾기도 하고, 정보를 검색하기도 하며, 음악을 듣기도 한다. 또 심심할 때는 클립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혜택은 바로 이런 편리함일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런 편리함 뒤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가짜 정보, 가짜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 공간에는 사실과는 다른 정보와 뉴스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런 가짜 뉴스를 진짜 뉴스로부터 구분해낼 능력이 충분치 않다. 뉴스는 정확한 사실 정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뉴스 형식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접하면 일단은 사실로 받아들인다. 가짜 뉴스의 문제는 현실에 대한 잘못된 판단의 근거로 사용된다는 데 있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인터넷으로 확산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미디어의 편리함을 향유하면서 가짜 뉴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뉴스로부터 가짜 뉴스를 구분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심을 갖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핀란드에서 배우는 교육 철학
우리나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오래 전부터 몇몇 연구자를 중심으로 미디어교육의 필요성은 제기됐지만, 지금처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에서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우리보다 앞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해 발전시켜온 핀란드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핀란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핀란드의 인구는 아주 적다. 서울 인구의 절반인 500만의 인구가 한반도의 3배에 달하는 넓은 땅에서 흩어져 살고 있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이다. 특별히 뛰어난 소수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뒤처지는 아이들까지도 함께 끌고 가는 교육을 한다. 1등보다는 2등을 지원해서 2등이 1등과 경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핀란드의 교육 철학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무료이다. 그만큼 교육을 중시하고, 모든 학생에게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나라가 바로 핀란드이다.
핀란드 지역신문사 '아물레티(AAMULEHTI)'의 내부 모습<사진 출처 : 언론진흥재단 지역신문팀>
또 하나 핀란드는 12세기 중엽 십자군 전쟁 당시부터 스웨덴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북방 전쟁(1700~1721년)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핀란드 영토의 상당부분이 러시아 통치로 넘어가게 된다. 이후 200여 년이 흐른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이후에야 핀란드는 독립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핀란드는 다시 소련의 침공을 받게 되고, 1947년 파리조약에 의해 주권을 회복할 때까지 소련과 두 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도 핀란드는 소련에 엄청난 전쟁 배상을 해야 했고, 소련은 핀란드 내정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핀란드는 1992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야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독립된 국가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탐페레대학 시르쿠 코티라이넨 교수 2는 오랜 식민 통치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핀란드는 오랫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식민 통치를 받았는데, 그 당시 신문은 시민 독자를 위한 언론이 아니라 정부 기관의 선전지였다. 신문 기사의 의도를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사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지지하고 나라의 이익과 주권을 지키는 길이라고 핀란드 사람들은 생각했다는 것이다. 코티라이넨 교수는 핀란드가 수백 년의 식민 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독립할 수 있었던 것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핀란드의 전 교과에 걸쳐 중요하게 활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초등 3학년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크게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단계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말하기, 글쓰기 교육이 미디어 리터러시의 첫 단계에 해당한다. 핀란드에서 1단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도서관에 가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를 찾고, 그 자료들을 모아 글로 표현하고, 이를 말하게 하는 교육이 시작한다.
핀란드의 한 도서관 <사진 출처 : 필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찾는 자료는 뉴스에 나오는 지역 사회 문제나 핀란드의 현안 문제에 관한 것이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뉴스는 과학 교과에서 다루어지고, 난민 유입과 같은 인권 문제는 사회 교과에서 다루어진다. 핀란드 어린이는 말하기, 글쓰기의 시작부터 그 소재를 미디어 뉴스에서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 및 국가의 현안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말하기도 일반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시사적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훈련이다. 이렇게 말하기 글쓰기 단계에서부터 미디어 뉴스는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핀란드 교육에서 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1970년 개정 교육 과정에 뉴스를 활용한 교육 과정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들에게 민주 시민이란 자신이 사는 지역 사회의 이슈 및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명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시작이 말하기와 글쓰기로 시작한다는 점만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초등학생 때부터 사회 문제나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현하도록 교육시키는 것에 대해 가정에서도 원하지 않고, 학교도 바라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 문제에 대해 시민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에서부터 우리나라와 핀란드는 차이가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두 번째 단계는 뉴스를 직접 제작하는 단계이다. 학생들이 신문 기사를 작성하거나 동영상 뉴스를 제작하게 된다. 뉴스를 제작할 때는 언론인이 교육에 참여해 도움을 준다.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교사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그리고 미디어가 함께 한다. 핀란드 신문 업계는 200명 이상의 미디어 전문가와 함께 미디어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공영방송 일레(YLE)도 2016년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일환으로 ‘YLE뉴스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신문사와 방송사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적극 지원하지만, 뉴스 제작은 전적으로 학생 주도로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스스로 뉴스의 주제를 정하고 취재를 하고, 제작한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인 부분 등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에만 전문 언론인이 도와준다.
필자의 핀란드 공영방송사 일레(YLE) 방문 모습<사진 출처 : 언론진흥재단 지역신문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일환으로 학생에게 뉴스를 제작하게 하는 이유는 뉴스를 직접 제작해 봐야 뉴스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마지막 단계인 비판적 이용, 비판적 평가가 건전한 비판, 평가가 되려면 뉴스를 직접 제작해 보아야 한다고 핀란드는 믿는다.
세 번째 단계는 바로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과정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지향하는 바이다. 특히 온라인에서 엄청나게 많은 뉴스가 유통되는 스마트 미디어 환경에서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더 중요해졌다. 이를 위해 핀란드에서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뉴스를 비교 분석하는 교육을 한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왜 특정 언론은 다른 방향으로 보도했는지를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 유바스큘라대학의 마리 교수는 “트럼프 당선을 다룬 다른 문화권 또는 같은 문화권의 두 기사의 제목이 하나는 ‘Trump won’이고 다른 하나는 ‘Oh, Trump did it’인 경우 두 문화권 또는 같은 문화권에서 다른 용어를 사용한 이유를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고 말한다. 이런 분석과 토론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멀티 리터러시 교육’으로 업그레이드
이제 핀란드는 미디어 리터러시와 뉴스 리터러시를 통합한 ‘멀티 리터러시(multi literacy)’로 미디어교육의 범위를 확대해 가고 있다. 2016년 8월 1일부터 적용된 교육 과정에도 미디어 리터러시 대신 멀티 리터러시 개념을 도입했다. 멀티 리터러시는 기존 신문 중심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신문과 방송을 포괄하는 교육으로 확대한 것이며, 세계화 추세에 걸맞게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공영방송 일레가 멀티 리터러시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일레는 2016년부터 뉴스 교육용 앱을 만들고, 중학생의 뉴스 제작을 지원하며 학생이 제작한 뉴스를 방송하는 등 뉴스 리터러시 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핀란드가 이렇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이 바로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첫걸음이며,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미디어는 우리 일상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사회의 평등, 불평등이 미디어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고,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한 이유이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인 필자가 2017년 9월 17일부터 25일까지 공동 기획취재 지원으로 핀란드의 여러 지역신문사, 탐페레대학, 공영방송사 일레, 도서관, 신문박물관 등을 방문하여 듣고 느낀 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한 것이다. 또 일부는 2016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핀란드 미디어교육 연수 보고서>의 내용을 참조했다. [본문으로]
- 미디어 리터러시 전문가인 시르쿠 코티라이넨 교수는 탐페레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문으로]
- 2016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핀란드 미디어교육 연수 결과 보고서> 34쪽 각주 22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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