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3. 11:00ㆍ수업 현장
뉴스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교실에서 선생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학생들 스스로 매체의 콘텐츠 생산자로 참여하여 현장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스스로 뉴스 리터러시를 배우는 공간이 있다. 중앙일보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매체 <소년중앙>과 <통>의 학생기자로 활동하는 학생들의 성장 이야기를 현직 기자가 직접 전한다. |
황정옥(중앙일보 청소년매체 팀장)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입니다. 하루에도 수천 아니 수억 개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죠. 누구와 만나서 어떤 음식을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와 같은, 과거라면 일기장 한 귀퉁이나 차지할 법한 사적인 내용부터 기업의 상태를 분석하고 미래 가치를 예측하는 고급 정보를 담은 리포트까지 그 종류와 깊이도 다양합니다. 이렇게 전 세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아놓은 정보는 인터넷을 열고 네모난 창에 원하는 단어를 적어 넣는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죠.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만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미디어의 역할은 사라진 걸까요. 이 질문의 답을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청소년 매체 플랫폼을 만들자
저는 현재 중앙일보 청소년 매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에는 두 가지 청소년 매체가 있습니다. 10~14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소년중앙>과 15~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매체<통(tong)>이죠. 저는 이 두 매체의 창간 작업을 하는 행운을 얻었고 독자와 미디어,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글은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심이 많은 여러분과 그동안 저의 경험을 나누고 국내에 효과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방법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작성했습니다.
중앙일보는 2013년 4월 <소년중앙 위클리>를 부활시켰습니다.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되던 어린이 영자신문 <애플>과 어린이 경제신문 <틴틴중앙>을 통합해 하나의 어린이 매체로 제작하게 된 것이죠. 새 매체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기존 독자가 있는 두 매체의 통합은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여러 날 회의를 거듭했지만 뚜렷하게 잡히는 콘셉트가 없었습니다. 머릿속은 어지러운 질문들로 가득했죠.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사회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아이들 세계의 이슈와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영어, 경제처럼 한 가지 콘텐츠에 집중해 매체를 생산하는 것이 옳은가?’, ‘어른들의 뉴스를 정리해 소개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우리는 왜 어린이 매체를 만드는 것이지?’ 질문 끝에 우리가 찾은 답은 플랫폼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콘텐츠보다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구축해 그때그때 독자 이슈에 맞는 콘텐츠를 독자와 함께 생산하겠다는 계획이었죠. 플랫폼 하면 네이버·다음 같은 IT회사들의 서비스가 떠오를 겁니다. 블로그·카페·유튜브 같은 것들이죠. 이들은 ‘불특정 다수가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든지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매주 종이로 발행하는 신문이 IT회사와 같은 플랫폼 서비스를 어떻게 만드냐고요? 앞서 서비스 설명을 이렇게 바꾸면 이해가 쉽습니다. ‘특정 소수가 원하는 콘텐츠를 완성도 높게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우리는 <소년중앙> 지면을 플랫폼으로 보고, 콘텐츠 생산자를 세 가지 트랙으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 트랙은 어른 기자군입니다. 수많은 뉴스 중에 독자들과 나눴으면 하는 내용을 독자 눈높이에 맞게 조정하고 설명해주는 일과, 독자 맞춤형 뉴스를 생산하고 학생 기자와 독자가 보내온 기사를 정리해 다듬는 일을 하죠.
두 번째 트랙은 어른 기자들과 함께 뉴스를 생산할 학생군입니다. 지면 기획에 참여해 또래 친구들이 생각하는 이슈를 제공하고 어른 기자들과 함께 취재해 기사를 생산하죠.
세 번째 트랙은 뉴스 외 콘텐츠를 생산하는 독자군입니다. 지면에 연재할 소설을 쓰기도 하고, 매주 소개되는 신간의 서평과 시사 토론에 의견을 보내는 군입니다. 이들은 또 영화 시사회, 체험평가단, 시간탐험대 등 단발적인 활동에 참여해 직접 현장을 경험하며 뉴스 콘텐츠를 생산할 기회도 갖습니다. 독자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지면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죠. 이와 같은 방식으로 24개 면이 매주 제작되고 있습니다.
학생 기자들과 어른 기자들이 함께 만든 <소년중앙> 지면. <사진 출처 : 소년중앙, 2017년 11월 10일자.>
실전에서 배우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학생들은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받게 됩니다. 현장을 취재 하고 기사를 쓰고 발행해 독자와 만나는 전 과정을 통해서 말이죠. 어떤 과정을 통해 교육받게 되는지 학생 기자 활동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학생 기자는 취재에 앞서 취재원에 대해 조사 활동을 하게 됩니다. 질문지를 작성하기 위해서죠. 이때 어른 기자군에서는 뉴스를 중심으로 출처를 확인하며 조사하라고 조언합니다. 사실관계가 틀리면 취재 진행이 어렵다는 엄포와 함께 말이죠.
▲학생 기자의 질문지가 도착하면 기사 방향에 따른 핵심 질문을 체크하고 취재 일시와 만나는 장소를 적어 피드백하고 현장에서 만납니다.
▲현장에서는 인사를 건네며 명함을 주는 법, 취재원의 이야기를 잘 듣고 정리하는 법 등 취재 매너를 교육하고 취재가 끝나면 인상적인 부분을 서로 나누며 기사를 어떤 방향으로 언제까지 쓸지 정합니다.
▲이후에 학생 기자의 원고가 오면 수정 사항을 정리해 다시 보내고 최종 원고가 도착하면 어른 기자의 원고와 합쳐 지면에 싣습니다.
정리하고 보니 학생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활동처럼 보이는데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난이도를 요구하지 않거든요. 글을 잘 쓰는 학생 기자에겐 기사를 단독으로 정리해 쓰게 하고,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 기자에겐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나, 인상적인 부분만 정리해 보내게 하죠. 학생 기자 활동의 목적이 학생들에게 뉴스 생산 방식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른 기자들은 학생 기자들의 성향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콘텐츠 생산에 참여시킵니다. 지면의 최종 책임은 어른 기자들의 몫이기에 모두 열심히 학생 기자들을 돕죠.
▲마지막 교육은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이뤄집니다. 기사는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고 독자의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학생 기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취재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죠. 가끔은 악의적인 댓글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 역시 디지털 매너, 디지털 시민의식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통>은 2015년 9월 창간했습니다. <소년중앙>의 제작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더 많은 권한과 역할을 학생 기자에게 주기로 작정한 매체죠. 우선 모집 방식부터 달랐습니다. ▲함께 활동할 친구들을 모집해 동아리 형태로 신청하면 기자들은 신청서를 보고 학생 기자들을 선발합니다. ▲선발된 학생 기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취재 계획서를 올리면 기자들이 살펴보고 ‘의견이 다른 사람도 만나봐라’, ‘이슈가 있는 문제니 이해관계를 잘 살펴 취재해라’ 등의 취재 가이드를 제공하죠. ▲취재를 마친 학생 기자들이 원고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면 담당 기자들이 1차 데스킹하고, 이후 편집장의 최종 데스킹을 거쳐 발행됩니다. <통>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기획부터 섭외·취재까지 <소년중앙>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의 콘텐츠 생산 과정을 경험하게 되죠.
이렇게 <소년중앙>과 <통>을 통해 콘텐츠 생산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략 2,500여명(누적 인원 포함)이 됩니다. <소년중앙>의 시간탐험대, 체험평가단과 같은 단발성 콘텐츠 생산에 참여한 독자들의 수까지 합치면 3,000명이 넘죠.
15~19세 청소년 대상 온라인 매체 <통>의 1기 청소년 기자단 발대식.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
그럼, 콘텐츠 생산에 직접 참여한 학생들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수치로 효과를 증명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수치 심화 분석까진 못했습니다. 대신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우리가 기자인지, 보모인지, 선생님인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 ‘그래. 우리가 하는 일은 한 아이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며 대한민국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야’라고 다짐하게 했던 학생들의 사례입니다.
일산에 사는 제하는 초등 4학년 때 <소년중앙> 블로그를 통해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찬반의사를 묻는 시사 이슈에 앞뒤 고민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던 막무가내 학생이었죠. 사실관계를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방법을 <소년중앙>활동을 통해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간탐험대 참여를 제안했습니다. 시간탐험대는 역사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돌아보며 역사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활동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하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그것도 등기우편으로 말이죠. 사진 몇 장과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 이주했던 역사적 장소인 옛 일산역이 방치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우리는 다음날 바로 제하에게 연락해 이 문제를 함께 취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고양시청 문화예술과 학예연구사를 만나 방치 이유를 듣고 소유권자인 코레일과 어떻게 사용할지 협의 중이라는 내용을 알게 됐죠. 이렇게 궁금증을 스스로 푼 제하는 의견을 내세울 때, 우기기식 주장보다 사실관계를 찾아보고 알아가는 데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심지어 다리를 다쳐 한동안 깁스를 했을 땐, 학교에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문제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교장 선생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죠. 뉴스 생산자 경험을 통해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바른 정보를 수집하고 생각을 정리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스스로 알게 된 겁니다.
<통> 학생 기자들의 활약상을 설명하려면 3박 4일을 꼬박 새도 어림없습니다. 특히 세월호부터 촛불 정국에 이르기까지 학생 기자들이 쏟아낸 기사는 엄청났습니다. 우리끼리는 “촛불집회를 승리로 이끈 건 <통> 기자단이야”라고 자찬할 정도죠. 언제 기회가 되면 자세히 소개하고 싶네요. 오늘은 최근에 인상적인 활동을 했던 월출산지부 <통> 청소년 기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소년중앙> 시간탐험대에서 활동하는 초등학생 박제하 군이 쓴 ‘옛 일산역’ 기사. 일제강점기 역사적 중요성을 담고 있는 건물이 방치되고 있다는 박제하 군의 문제 제기로 취재와 보도가 이루어졌다.
월출산지부는 전남 영암고 2학년 남학생 3명 신용경·안충원·최종찬으로 이뤄진 팀입니다. 이들은 지난 5월 전영진 열사에 관한 기사를 보내왔는데요. 전 열사의 부모님과 단짝 친구, 고교 은사를 찾아다니며 1980년 5월의 전 열사의 흔적을 찾아 기사로 작성한 것이죠. 취재는 꼼꼼했습니다. 5·18 기념재단에서 작성한 자료를 토대로 5명을 인터뷰했죠. 기사를 다 읽기도 전에 기특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데스킹을 끝낸 후, 취재 후기가 궁금해 충원이에게 전화했습니다. “어땠어?”라고 묻자 충원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열사 부모님이 우리를 붙잡고 ‘시몬(전 열사의 세례명)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네. 이렇게 찾아와 우리 시몬의 이야기를 물어보는 학생들이 있으니 말이야’라며 고맙다고 하시는데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기사를 쓰려고 녹취를 풀면서도 계속 눈물이 났죠. 기사를 쓸 땐,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이런 분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난 겨울 촛불집회도 생각났고요. 아무튼 우리가 민주주의 역사를 퇴보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참, 성적이 안 오르던 비문학을 만점 받았어요. 기사 쓰기 덕분인 것 같아요.”
저절로 커지는 4C
전 교육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21세기에는 인재를 키우는 핵심 역량으로 4C를 꼽습니다. 창의성과 문제 해결력(Critical thinking and problem solving)·협력(Collaboration)·인성(Character)·의사소통(Communication)이죠. 4가지 핵심 역량은 학습자 스스로 주체가 돼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길러진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어떤가요. 전 앞서 설명한 학생 기자의 사례가 4C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5년간 <소년중앙>과 <통>을 거쳐 간 학생 기자들을 보면서 이와 같은 활동이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통 미디어가 콘텐츠 생산 방식 노하우를 지역 시민에게 전수하고, 시민들과 함께 지역 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 노력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도 해봤죠. 그렇다면 적어도 가짜 뉴스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30조 원(현대경제연구원 발표)에 달한다는 발표를 듣는 일도, “우리나라가 공산국가가 된다는데 정말이니”라는 엄마의 뜬금 문자에 한숨을 쉬는 날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마무리는 멋있게 보이게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 한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공식적인 교육과정이 끝나면 뉴스가 선생님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감각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언론 매체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전혀 체계적으로 지도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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