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연합선택교육과정 <미디어비평> 수업 사례

2018. 10. 31. 15:51수업 현장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나 자란 청소년들은 미디어를 정확히 알고 이용해야 하며, 허위 정보를 판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청소년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애경(서울 자양고등학교 교사)


방학을 앞둔 교사들에게도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방과 후 학교 담당교사로부터 이번 방학 기간, 부디 방과 후 학교 개설에 협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나면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제목은 다르지만 늘 비슷했던 수업들이 떠오른다. 국어 교사인 나의 단골 메뉴는 고전 문학의 이해’, ‘문법 기출문제로 완성하기’, ‘논술의 실제등이었다. 그렇지만 얼마든지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넘쳐나는 사교육 시장 안에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과연 이게 필요한 수업인가?’ 하는 회의가 늘 들었다. 고민 끝에 3년 전부터 <미디어비평>이라는 수업을 개설해 진행하고 있다. 광고, 1인 미디어 방송, 애니메이션과 같은 미디어 텍스트를 비평적 시각으로 읽는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이다. 수업은 여섯 차례 아이들과 함께했고, 올해 1학기에는 인근 학교 학생들까지 모여서 연합선택교육과정으로 <미디어와 사회> 수업이 진행되었다.

 

미디어비평 수업에서 허위 정보 수업까지

미디어비평 수업 개설 처음 결심했을 때는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교사라는 위치에 있지만, 결코 아이들보다 미디어에 익숙하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들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르치지 않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평생을 미디어에 노출되어 살아 아이들이 적어도 자체 필터는 갖추어야 올바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모형이 아직 다양하지 않아서 수십 편의 논문을 읽어가며(고백하건대 인생에서 그렇게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수업을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엉성하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모든 수업을 참여식 모둠 수업으로 하겠다고 했음에도 용감하게 수강 신청한 아이들 앞에서, “나는 너희들만큼 모를 수 있다. 함께 공부하자고백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아이들은 거듭 나를 가르치는 수업을 만들어 주었다.

수업 초기에는 한 가지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 아이들의 일상 속에 익숙해진 여러 미디어 콘텐츠를 다양하게 비틀어 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변신 소녀 애니메이션에서 왜 주인공 소녀들은 항상 예쁜 성인 여자로 변신하는지, 변신 로봇을 조종하는 소년들은 변신하지 않고도 힘을 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라면, 과일, 물까지 하루 만에 배송해주겠다는 대형 마트의 온라인쇼핑 광고를 본 아이들은 대형 유통회사가 우리 동네 작은 슈퍼마켓까지 잠식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또한, 포털사이트가 우리에게 걸러주는 뉴스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다.

나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모둠별로 토론하고 발표한 내용, 개별적으로 쓴 짧은 에세이 모아 자료집으로 만들었다. 한 권 한 권 늘어가는 미디어비평 자료집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기록이 되었다.

그러던 중 2017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개최한 미디어교육 전국대회에서 허위 정보에 대한 여러 생각을 접하게 됐고, 겨울 방과 후 수업으로 개설될 미디어비평 수업에 허위 정보에 관한 내용을 넣어보기로 했다. 허위 정보의 정의를 내리면서 그 특징과 영향을 살펴보고, 허위 정보를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기본 뼈대로 수업을 계획했다. 학생들이 허위 정보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기본 목표였다. 선거나 정치적 이슈에서 허위 정보가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허위 정보가 내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것은 깨달음을 생활과 실천으로 이식하는 중요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배우는 허위 정보 판별법

목표를 정하고 나니 수업의 도입부가 고민되기 시작했다. 10대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무겁지 않게 해야 했다. 서동이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거짓 내용으로 서동요를 지어 퍼트린 것도 가짜 뉴스라고 하면 너무 국어 교사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진실 게임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모둠별로 명제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이 명제가 진실이라는 것을 다른 친구들이 믿도록 전략을 짜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이 명제 중 절반은 진실이고, 절반은 거짓이라고 했다. 거짓인 명제도 진실로 믿도록 만들어야 하고 진실인 명제도 의심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발표를 듣고 난 다른 모둠의 학생들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여 투표한다. 발표 준비를 위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지만, 발표가 시작되면 절대 검색 수 없다. 진실과 거짓을 정확히 구별한 개개인에게도 점수가 있고 모둠별 투표 점수도 있게 만들었는데, 사실 이것은 아이들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기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장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명제는 모두 거짓이기 때문이다. 명제 중 두 가지만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거짓 명제 1> 2018, 광진구 있는 고등학교 내에 협동조합이 생기면서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가 생긴다. 우리 학교에도 샌드위치와 음료를 판매하는 부스가 생기고 희망하는 학생들이 운영하게 된다.

<거짓 명제 2> 졸업하는 3학년 남학생 중 연예인 데뷔를 앞 학생이 있다. 2학년 여름에 길거리 캐스팅되었고, 중견 기획사 데뷔 예정인 6인조 아이돌의 멤버로 내정되어 있다.

 

아이들은 모둠별로 나누어준 수행지에 전략과 제시할 근거를 적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우리 모둠의 투표 성적, 성공 혹은 실패의 요인을 나중에 적을 수 있게 했다. 개인별로 다른 모둠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지도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일종의 전략적 보드게임처럼 받아들이며 열심히 작전을 짜기 시작했는데, 독한(?) 모둠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모둠에 들릴까 봐 필담을 나누거나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의논하기도 했다. 마침내 발표 시간.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그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서 사실을 알고 있는 나만 웃음을 참느라 고생이었다.



제시한 명제를 친구들이 진실이라고 믿도록 꾸미는 학생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이건 교육청 발표사항입니다(공신력 있는 기관 활용). 여러분도 학교 안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한 아침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셨잖아요(공감 유도)? 드디어 우리 학교의 교장 선생님도 교육청의 제안을 따르기로 하셨어요(권위자의 결정을 내세움). 서울 컨벤션고등학교에서 시행한 학생 카페는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그럴듯한 예시-사실은 완전 거짓). 얼마 전 우리 학교 2층을 리모델링한 것도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아이들도 알고 있는 사실을 섞음).” <거짓 명제 1에 관한 주장>

이건 우리 학교 3학년인 제 친언니에게 들은 건데(실제 존재하는 지인을 이용), 그 오빠가 학교를 잘 안 나온 데다 기획사가 완전 철저하게 보안에 보안을 유지해서 우리가 소문을 잘 모르는 거래요(정당성 부여). 결석이 잦아서 담임선생님이 거의 포기 상태였다고 합니다(아이들이 예상하는 연습생의 학교생활과 유사하게 꾸밈). 그렇게 잘생긴 건 아닌데(튈 정도로 잘 생겼으면 전교생이 모를 리 없으므로) 랩을 엄청나게 잘한대요." <거짓 명제 2에 관한 주장>

아이들은 공신력 있는 기관을 언급하거나 자기도 아는 친구의 언니가 그랬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믿기 시작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고민을 거듭해 진실과 거짓을 투표한 아이들에게 사실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하자 교실 안은 야유로 가득 찼다. “우와, 이럴 수가!”, “너 완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 잘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SNS에서 너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접한 허위 정보도 사실은 이렇게 만들어졌을 거라고. 그러니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허위 정보,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것도 허위 정보라고 말이다.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어떻게 허위 정보가 만들어지는지 예상할 수 있었고, 역으로 어떻게 허위 정보를 가려내야 하는지 체험해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인 게임을 통해 허위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허위 정보, 멀리 있지 않다

 

그동안 페이스북에서 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진짜라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심각하게 반성했어요. 그게 가짜일 수도 있다는 건 정말 생각 못 했거든요."(1학년 윤정)


이제 뉴스를 볼 때면 어디에서 만든 뉴스인지 살펴봐요. 정말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 의심부터 하고요.”(2학년 지우)

 

아이들의 수업 후기에서처럼, 의외로 허위 정보에 무심했던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이어지는 마무리 활동을 통해 허위 정보 판별법을 직접 만들어 보고, 다른 언론 기관 등에서 발표한 판별법과 비교해 보았는데, 참여 활동 뒤라 그런지 꽤 진지했고 몰입도도 높았다.

20181학기에 진행된 연합선택교육과정 <미디어와 사회> 수업에는 도입부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피아 게임'도 추가해서 정말 게임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참인 명제와 거짓인 명제를 섞어서 진실 게임을 했다. 싱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전략을 짜서 연기를 펼쳤고, 놀랍게도 아이들은 진실인 명제를 더욱 믿게 만들기 위해서 거짓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짓은 진실과 교묘하게 융합되어 판별하기 쉽지 않았고 아이들은 그 점을 매우 인상 깊게 받아들였다.

나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도, 그리고 그 안의 허위 정보 수업도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고 수정보완해야 할 점 투성이다. 특히 허위 정보 수업은 분량을 늘리고 아이들이 직접 만든 판별법을 SNS나 언론사의 다양한 뉴스에 적용해 보는 활동을 계획 중이다. 나아가 그렇게 정리한 결과와 판별법을 아이들이 직접 학교 교지나 언론사 등에 기고하여 허위 정보 방지를 위한 사회적 참여로 확장하려고 한다. 작다면 작은, 가볍다면 가벼운 활동이지만 이렇게 시작한 고민이 나중에 이 아이들을 깨어있는 시민으로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이 멀리 있지 않고, 내 삶에 분명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 수업에 사용된 교안 다운받기 ▽


진실 게임 2017.pdf

진실 게임 2018.pdf

10강 개인 카드.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