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4. 15:45ㆍ언론진흥재단 소식
경북 내성초등학교 주광혁 교사
1. 미디어 시대의 관심법(觀心法)
지구의 역사가 지층과 화석에 기록된다면 인간의 역사는 어디에 남을까요? 미디어일 것입니다. 영상과 사진으로 우리의 시간을 저장하고 있지 않은가요? 저의 미디어리터러시에 대한 관심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보통신윤리 선도교원으로 ‘소셜미디어 시대의 스마트한 시민되기’ 연수를 받았습니다. 당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청소년들의 미디어리터러시가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이전보다 미디어의 힘은 더 막강해졌습니다.
고려사에는 궁예가 얼토당토 않은 이유를 들어 죄 없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른바 관심법입니다. 있지 않은 일도 공포와 협박에 사실이 되는 순간, 올바름은 사라지고 불안이 사회에 자리잡히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가짜뉴스, 혐오와 차별, 불건전한 정보, 사이버 폭력 등 미디어의 역기능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고 디지털 시민성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발견하고 공감하는 생활 주제를 찾아 책임 있는 행동으로 나서도록 도와야겠지요. 이 도움의 과정이 핵심개념과 역량을 바탕으로 융합교육의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교사를 연수의 공간으로 이끕니다.
2. 오현도 선생님의 청소년 체커톤 지도 사례
프로젝트 학습은 ‘학습자가 주체가 되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학습자의 삶과 목적이 연결된 과정에서 가치 있는 학습이 시작된다는 것이죠. 국가 주도의 교육과정인 우리 교육현실에서 프로젝트 학습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프로젝트 학습을 고민해 온 오현도 선생님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체커톤(Checkathon) 대회를 주목했습니다.
2019년에 펼쳐진 제 1회 대회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지정된 문제 중에서 선택하여 하루 동안의 활동기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대회라고 생각하는 흐름이죠. 그런데 오현도 선생님이 참여한 제 3회 체커톤 대회에서는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혐오와 차별과 관련된 주제를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여 해결해 나갑니다. 대회가 예선과 본선을 포함하여 3개월의 활동기간이라 놀랍습니다.
대회 참여 자체가 프로젝트 수업의 과정입니다. 팩트체크 자체가 비판적 사고력과 사회적 실천이라는 고차원적 사고를 요구합니다. 당연히 어려운 과정이 예상됩니다. 오현도 선생님은 그럴수록 미디어 정보에 접근하는 기본부터 시작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학생들은 한 걸음씩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바람직한 영향을 사회에 펼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는다는 겁니다.
오현도 선생님의 학급에서는 미디어 교육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인지 이미 아이들이 팩트체커로서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체커톤 대회에 출전한 팀이 학급의 절반인 세 팀이고 여기서 두 팀이 수상을 했으니 그 도전이 아름답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미리내 팀과 다빈치 팀의 수행과정을 살펴보며 예선과 본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해 나갔습니다.
[예선]
예선에서 교사는 리포트를 작성하고 증빙자료를 제출합니다. 리포트에는 세 가지가 들어갑니다. 첫째, 허위정보를 탐색하면서 혐오와 차별과 관련된 주제 선정. 둘째, 학생들은 자료조사와 전문가 면담, 설문 등으로 팩트체크의 과정. 셋째, 올바른 인식을 알릴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주제 선정]
미리내 팀은 뉴스에서 허위정보를 발견했습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상황을 다룬 뉴스에서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정보에 대해 팩트체크 주제를 선정합니다. 이 주제를 발전시켜 학생들이 사는 지역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것인지 설문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다빈치 팀) “핫팬츠 女승객 쓰러졌는데 남자들 외면, 2021년판 ‘착한 사마리아인’ 논쟁” 기사와 댓글 분석에서 남녀혐오 현상을 발견하고 사람의 생명(구조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기사에 대한 댓글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주제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오현도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팩트체크 활동]
미리내 팀은 부동산 전문가, 변호사, 특수교육 전문가와의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특수학교 설립만으로는 집값이 떨어진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면담 외에 자료조사를 통해서도 재확인됩니다. 오히려 잘못된 인식 때문에 특수학교의 설립이 필요하지만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특수학교가 과밀학급이거나 높은 언덕에 설립되는 열악한 환경임을 알게 됩니다.
다빈치 팀은 응급처치를 하다가 결과가 잘못되면 처벌받거나 성추행범으로 몰려 처벌받는 지, 여성의 옷차림이 응급처치에 영향을 끼치는지 이러한 의심스러운 정보를 소방관 전문가 면담과 설문, 자료조사를 통해 확인해 나갔습니다. 결론적으로 앞선 정보들은 거짓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언론사들의 반박 기사를 통해 여승객의 노출이 심하지 않았고 주변의 도움도 쉽게 얻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오현도 선생님은 무엇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최우선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방관의 말씀을 강조합니다. 잘못된 관심법에 가장 중요한 생명이 가려져 있던 것이죠.
[본선]
본선 준비는 팩트체크한 결과를 어떻게 알리고 잘못된 인식은 어떻게 바르게 고쳐나갈 것인지 결과물을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인식개선 결과물 제작]
미리내 팀은 뉴스 영상, 특수학교 건축 모형을, 다빈치 팀은 일일교사 체험, 성장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으로 계획하였습니다. 팀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역시 미디어입니다. 미디어를 바라보는 것에서 미디어를 직접 산출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으로 반전된 상황입니다.
영상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획안과 촬영 구성안, 대본을 작성하는 과정은 여러 고민과 수정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촬영과 편집의 본격적인 과정도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특수학교와 지역사회의 아름다운 공존 사례를 전하며 인식 전환을 의도하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기도록 학생들은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제작한 뉴스를 감상하고 인식 전후의 변화를 조사하는 학습지를 제작하여 구체적인 결과물로 수집했습니다.
지역사회 특수학교 건축모형 제작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이상적인 특수학교를 구상하여 설계하고 재료를 준비하여 건축모형을 제작했습니다.
다빈치 팀은 일일교사 체험을 통해 성장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프로젝트였습니다. 3, 6학년을 대상으로 팩트체크의 의미와 필요성, 남녀혐오에 관한 팩트체크, 상황극을 활용한 남녀 응급처치 교육을 수업내용으로 선정하여 동기유발 영상, 수업PPT와 학습지 자료를 제작했습니다. 앱과 디자인도구의 이용, 수업 시나리오 작성과 모의수업에 학교 앞 문방구와 협업한 상품권 이벤트 등 세심한 수업준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성장 다큐멘터리는 현직PD 튜터의 지원을 받아 기존 다큐멘터리를 참고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선 PT]
본선 PT는 10분 발표, 10분 질의응답으로 진행됩니다. PPT를 제작하고 대본을 작성하여 시연과 질의응답의 준비과정을 거칩니다. 도덕적 성격이 강한 대신 명확하게 주제가 드러나지 않았던 다빈치 팀의 경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인 ‘졸업’이라는 발표 컨셉을 잡고 개성을 잡아가며 이를 보완하는 모습도 바람직했습니다.
오현도 선생님은 체커톤 대회 소감으로 팩트체크는 팩트체크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실천이 곧 활동의 진정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팩트체크만을 위한 수업을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학생들의 생활과 생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이는 프로젝트 본연의 의미를 지켜나가라는 의미이겠지요.
3. 그 외 미디어리터러시 프로젝트 기반 융합 수업 사례
오현도 선생님은 체커톤에 이어 뉴스 바로 읽기, 영화를 활용한 교육과정 연계 수업, 편집장 역할을 활용한 학교 뉴스 제작 등의 수업 사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뉴스 바로 읽기는 학생들과 꾸준하게 미디어리터러시 역량을 키워왔음을 확인하는 사례였습니다.
[뉴스 바로 읽기(뉴스일기 쓰기)]
이외에도 오현도 선생님이 기본으로 진행했던 수업이 뉴스 바로 읽기(뉴스일기 쓰기)였습니다. 수업 초반에 교사가 어린이 신문에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관련된 기사를 선정해 읽어주고 일기를 작성합니다. 이 중에서 부산창의공작소 체험학습과 연계하여 업사이클링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현장에서 업사이클링의 의미를 이해하여 집에서 가져온 재활용품과 비치된 목재를 활용해 생활용품을 만든 활동이 흥미를 끌었습니다.
수업 중반에는 학생들이 직접 기사를 살펴보고 추천하여 패들렛에 공유하는 큐레이션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학생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고 팩트체크, 정책분석, 만화그리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갈수록 높은 사고 수준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수업은 언론진흥재단에서 제공하는 ‘뉴스읽기 뉴스일기’에서 전범이 되는 좋은 사례를 제시하여 학생들이 방향을 찾게 했습니다.
오현도 선생님은 뉴스일기 초반에 KLWI전략을 활용한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배경지식과 새로운 지식에서 생긴 인지부조화로 궁금하거나 더 알고 싶은 것을 찾고 이를 나와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과정이 팩트체크 사고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외에 키워드로 요약문을 작성하며 빙고게임을 활용하고 다양한 디지털도구를 이용하여 수업을 다변화해 나갔습니다.
수업 후반에는 토의토론, 카드뉴스와 영상 뉴스 제작, 팩트체크 활동을 통한 사회적 참여로 이어졌습니다. 학급의 한 학생이 어린이용 SNS의 출시를 반대하는 의견을 어린이신문 커뮤니티에 공유하여 기사화되었는데 참여 그 자체로 동기와 즐거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현도 선생님의 수업 사례를 만나고 미디어리터러시에 대한 나침반을 하나 얻은 느낌입니다. 이제 배를 움직일 열정과 꾸준함을 스스로 찾고 돛을 올리는 일이 남았네요.
4. 호모 미디어쿠스의 관심(關心)
미디어 시대의 인간을 호모 미디어쿠스라고 부릅니다. 곧 여섯 살이 될 제 딸은 좋아하는 미디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아마 미디어는 아이의 일상에서 빠지지 않는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교육자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미디어에 가치가 담겨있고 그 가치가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에 관심을 가지고 미디어로부터 주인이 된 삶을 살아가도록 역량을 키워주며 나도 그렇게 사는 것, 이 시대의 교육자에게 필요한 새로운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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