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고 질문하라”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 성평등 교육의 핵심 - 2부 -

2021. 12. 17. 19:31웹진<미디어리터러시>




성인지 감수성 수업
송: 제 경우는 성폭력을 다루는 기사를 함께 살펴보는 수업을 했어요. 팩트체크의 맥락이 아니라 기사에서 사용한 표현, 삽화, 사진 같은 것이 어떻게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을 벗어났는지 보도 원칙과 함께 살펴보았어요. 성평등한 관점,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해 봤을 때 무엇이 문제인지를 같이 이야기 해보는 것이죠.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에는 아주 섬세하고 어렵고 복잡한 얘기지만 “우리는 결국 해야 돼”라고 결론이 나는 것이 있어요. 예를 들어 성범죄자에 대한 기사를 공부하면서 성범죄자는 우리와 매우 다른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말함으로써 윤리적 감각과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었어요.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 중 어떤 것을 밝히고 있으며, 어떤 효과를 낳는가. 남성이 피해자일 때, 여성이 피해자일 때의 기사 등. 이런 복잡한 문제를 끊임없이 계속 제기하고 있지만 답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도 질문을 던지고 원칙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어선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교육적 관점에서는 굉장히 원칙적인 말씀입니다. 언론의 기본 원칙과 미디어의 성차별적 기사에 대해 함께 비교하고 논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성평등 교육과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성평등 교육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교육에서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세계 시민 의식,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일상에 적용하고 생각해보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으로서 아직 심층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보는 미디어를 좀 낯설게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인어공주가 노래하는 장면과, 이란 출신 여성 마르잔 사트라피의 작품인 <페르세폴리스>에서 주인공이 ‘아이오브더타이거(Eye of the tiger)’를 부르는 장면을 함께 보면서 여성의 목소리, 신체, 노래하는 방식 등을 비교해보는 것이죠. 초등학교 저학년이더라도 “아, 좀 다르게 표현됐네요”라고 이야기해요. 우리는 디즈니 같은 상업 스튜디오에서 재현된 젠더 이미지에 익숙해 있지만 다양한 문화권과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보면서 ‘미디어는 구성되어 있구나’라는 점을 깨닫게 되죠. 그것만으로 아이들이 충분히 미디어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송: 예전에 여고에서 근무할 때 디즈니와 관련된 페미니즘 수업을 한 번 했어요. 전통적 가치관을 담은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부터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면서 디즈니가 상당히 급진적인 여성 인권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절반 이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수적인 선택을 했음을 함께 보았어요. 또 앞으로 나올 디즈니의 공주들은 어떤 모습일까 등을 전망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박: 디즈니나 지브리 같은 대형 스튜디오에서 나온 작품의 젠더 재현 양상을 초등학생은 저차원적인 관점에서, 고등학생은 미디어 산업, 사회 구조 등과 관련해서 조금 더 비평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성평등 교사 모임인 아웃박스 선생님들께서 진행하는 미디어 관련 성평등 수업 사례를 소개해 주시죠.

황: 아웃박스의 많은 수업들이 미디어와 관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별을 알기 어려운 학생이 하루 종일 생활하는 장면이 나오는 광고가 있어요. 자전거 타고 나무도 타고 벌레도 잡고, 그런데 손톱 (매니큐어) 발랐고, 안경은 빨갛고. 학생들한테 이 광고를 보고 떠오르는 질문을 물어보면, “여자예요 남자예요?”라는 질문이 꼭 나와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죠.

그 모호함이 학생들에게 불안감을 불러 일으켜요. 그래서 여러분의 생각을 말하라고 하면 느낀 대로 그냥 이야기를 해요.
“손톱을 발랐다고 해서 여자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 다음 우리 안의 특성은 정말 어떤지 살펴봐요. 예를 들어서 자기의 취향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적어요. 그리고 비슷한 특성을 지닌 친구의 이름을 옆에 적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성별이 다 섞여있어요. 파란색을 좋아하거나 축구를 좋아 한다 등은 성별에 특정된 것이 아니라고 마무리하면서 그 광고, 더 나아가 미디어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들을 살펴봐요.

 

(왼쪽부터) 서울 이대부고 송현민 교사, 고양 관산초 황고운 교사, 고양 대화중 최은옥 교사 (사진=필자제공)
 
 

성평등 수업이 어려운 이유
황: 사실 SNS 에티켓을 비롯해서 불법 촬영 등도 미디어 리터러시와 관련되어 있어요. 서울교대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있었을 때도 대책위 제안 중 하나가 성평등 교육이었어요. “예비 교사를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을 실시해라. 현재 학교 교육 커리큘럼에 없다.” 그런데 그때 굉장히 반발이 많았어요.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 되지 왜 성평등 교육을 하냐고 물어요. 성폭력과 성평등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성인지 감수성 교육은 미디어 에티켓부터 시작해서 불법 촬영이 왜 인권의 문제인가, 미디어에서 여성 피해자를 그리는 방식은 왜 문제가 있는가, 그동안 만들어진 불법 촬영 관련 포스터와 문구가 왜 문제인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성인지 감수성뿐 아니라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력도 길러져요. 하지만 이 교육을 할 때 어려운 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제가 초등젠더교육을 한다고 했을 때, 교장선생님께서 "그런 거 위험한거 아니에요"라며 걱정하셨어요. 그래서 1년 정도는 항상 지도안을 미리 보여드리고 수업을 했어요. 

혹시 민원이 들어오면 교장 선생님이 아셔야 하니까요. 그런데 SNS 에티켓과 불법 촬영에 관한 공개 수업 지도안을 보시고 교장 선생님이 걱정을 하셨어요. 불법 촬영은 폭력과 안전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성인지 감수성 교육과는 달리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불법 촬영 범죄의 가해자는 보통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인데 남학생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겠냐. 하지만 실제 수업에서 학생들은 절대로 성별의 편을 들지 않았어요. 학생들은 선량한 시민 편이지 절대로 여자 또는 남자 편이 아닙니다. 제가 젠더 갈등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은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성별과 관련된 이슈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시민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장면이 성별의 갈등으로 비춰진다는 게 우려됩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편견 때문에 자존심 상하죠.

박: 아이들은 시민성 차원에서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어른들의 섣부른 편견이 문제라는 이야기는 무척 중요한 말씀입니다. 또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이런 성평등 교육을 하기 어려운 또 다른 상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즈음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해 온 선생님들께서 성평등 교육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너무 어렵고 그동안 해온 시민성 차원의 수업을 할 때에도 어려움이 많다는 말씀을 하셔서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이렇게 교육 현장을 어렵게 할까요?

송: 여성과 남성이라는 얘기만 나오면 성별 갈등의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결국엔 성평등 교육도 인권과 반차별 영역의 일부이고 상당히 핵심적인 기반이라고도 생각하는데, 그런 큰 원칙하에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모든 평등을 지원한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성평등만 문제가 될 이유는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이 모두를 성평등과 함께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성별 갈등이라는 구도에 가두어 버리는 것,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 경우 수업 시간에 성평등 주제를 다루면 간혹 학생들이 자료를 가지고 와서 “표 보시면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 순위가 이렇게 높지 않냐?”고 이야기를 해요. 아무리 제가 국어 교사라도 기본적인 영어는 아는데 (웃음) 영어로 된 표를 가지고 와요. 여성 고등 교육 진학률을 가져와서 여성의 지위 순위라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이게 팩트다!”라고 주장하며 자료를 내미는 친구들이 꼭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죠.

박: 왜곡된 데이터를 받은 거죠? 그리고 그걸 스스로 읽지 않죠?

송: 맞습니다. 다만 몇 년 전과 양상이 조금 다른데 예전에는 ‘여자가 차별을 받지 않는다’에 집중했다면, 요즘엔 ‘남자가 피해자’라는 인식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피해자여야 뭔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피해 관점에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맹점이긴 해요. 피해를 증명해야만 내가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환상에 빠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남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받고 있다, 능력만 가지고 따지면 남자가 여자에게 밀리지 않는데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 같은 것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성 우대 정책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논쟁이 흐지부지 되어버리죠.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대한 담론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박: 결국은 실체가 없는 소위 역차별론이 10대 학생들에게 내면화됐다고 봐야겠네요. 아마 이것도 미디어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여자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남자 선생님으로서 그런 사례를 보신 적은 있나요?

송: 있죠. 제가 성평등 교육을 계속 하다 보니 여러 학교의 일반사회과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아요. 그런데 정말 기본적이고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하면서 성불평등에 관한 데이터나 표를 보여주면, “여성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니 꼴페미야.”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선생님 페미예요?” 이런 질문 자체가 자신이 남성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라는 사실을 성찰하지 못하고요. 
황: 일반적으로 교실에서의 권력 관계는 확실하게 교사 우위잖아요. 하지만 성별과 관련해선 너무 쉽게 뒤집히는 순간들이 있어요.

송: 맞아요. 분명히 일반사회과 교사로서 전공자이고, 전문성을 지닌 사람인데도 성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순간, 무슨 지식이나 사실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사견으로만 치부되죠. 그리고 이걸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대학 여성학 수업에서부터 봐왔던 모습입니다.

최: 만약 손가락을 다치게 되면 같은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그 아픔에 공감을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성별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공감적 감수성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평생 여자로 산 사람, 평생 남자로 산 사람이 아무리 공감 능력이 좋다고 해도 다른 성의 입장을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을까요? 《82년생 김지영》과 관련해서, “옛날 우리 어머니 같은 세대의 여자들이나 힘들었지, 82년생인 여자가 뭐가 힘들다는 거야”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평생 남자로 살아온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공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수업에서 성역할을 바꿔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건 다른 선생님께 들은 얘긴데, 불법촬영 성범죄 피해자가 된 여고생이 있었어요. 그런데 1학년 남학생들이 그 사건에 공감을 못하고 오히려 놀림거리로 만들거나 또는 ‘걔 어떡하냐’ 이런 식으로 반응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여학생들은 그 피해자에 대해서 다르게 인식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문제처럼 여겨지는 거죠. 다른 예를 들어 영화 <추격자>가 있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최애 영화로 뽑았다는데 저는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끔찍하고 피해자한테 공감이 돼서 정말 무서웠어요. 이게 입장에 따른 인식의 차이라는 거죠.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그 영화를 보면서 과연 잘못한 것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는 그 피해자의 마음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성평등 교육은 공감력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해요.

 

고양 대화중 최은옥 교사 (사진=필자제공)
 

 

성평등 교육과정이 없다고?
박: 최은옥 선생님께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지적해주셨습니다. 성차별 상황을 각자 자신의 상황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남학생은 여학생이 왜 피해자라고 하는지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인 듯합니다. 우리가 교실 안과 밖에서 다양한 사람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 공감을 하고, 왜 평등을 이뤄나가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공감력을 키우는 대신 자신의 피해자성을 부각시키거나 소수자를 공격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고, 이런 분위기를 정치, 언론 등 주류 사회에서 더 강화시켜주는 것이 굉장히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육의 장은 사회와 분리되어 있지 않죠.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보니까 교사 한 사람만으로는 역부족인 측면이 있습니다.

황: 공감은 배울 수 있어요. 그것이 교육의 역할이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갈등이 너무 심하고 교육과정에서도 충분히 다루지 않고, 또 교육 자료도 없어요. 그러다보니 선생님들이 섣불리 시도를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수업안을 만들어 전국에 뿌리는 입장이면서도 (다른 선생님들이 이 수업안을 가지고) 수업을 했다가 어떤 민원이 들어올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안전한 상황에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최: 양성평등 교육을 하면서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어보아야 ‘남자는 왜 억울함을 느끼는가’ 이런 이야기도 다루어볼 수 있어요.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너무 격하고 공감하려는 마음도, 철학도 부족해요.

박: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2018년에 호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사 연수를 갔었어요. 그때 한국 교사들이 한국의 차별과 혐오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호주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질문했더니, “그런 것은 틀린 의견이기 때문에 언론에서 다룰 수 없다. 교육에서도 언급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해요. 즉 그런 차별적인 말 자체를 동등한 의견으로 취급하지 않는 거죠. 반시민적, 차별적인 의견은 아예 탈락시켜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았을 때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는 우리가 차별 금지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과 시민 의식이 부족한 탓 같습니다. 무엇보다 사회 주류가 이와 관련한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심각하고요. 다만 호주에서도 요즘 유튜브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송: 아까 황고운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는 성평등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에 많은 난항을 겪는 것 같아요.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잖아요. 저는 민원이 들어왔을 때, 내세울 수 있는 교육과정의 근거 하나만 있다면 두려울 게 없어요. 2015년이었나요? 저는 성교육 표준안의 악몽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무엇을 표준화하고 제도화했을 때, 제도화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결정하는 권력이 있고, 우리의 이야기가 얼마나 협소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자꾸 걱정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너무 어렵지만 복잡하고 섬세한 것은 복잡하고 섬세하게, 학생들과 다룰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이거는 이런 거야’ 하고 설명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현실과 어떤 부분에서 같고 어떤 부분에서 다를까? 남성은 정말 동일한 집단인가?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하고, 함께 계속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 중요한 말씀입니다. 현 국가 교육과정에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고 범교과교육에 양성평등 교육이 들어 있지만, 성평등 교육의 일부만을 다루고 있을 뿐 상세화된 성취 기준이나 시수가 없는 추상적인 형태입니다. 여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음 교육과정 개정 때는 좀 더 세심하고 확실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한 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미디어 리터러시와 성평등 교육
박: 지금까지 다양한 성차별 상황이 미디어와 관련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어떠한 특성이 성평등 교육에 도움이 되고, 중요할까요? 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입장에서는 왜 성평등 교육이 중요한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황: 성평등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디어에 대한 접근, 비판적 이해, 창작, 소통, 참여 모두 다 성인지 감수성 교육에서 핵심적인 요소예요. 하지만 이 중에서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미디어는 멈춰 있지 않고 이용자 간 역할을 바꾸고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는데 그 과정이 성인지 감수성이 지향하는 바와 같아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성인지 감수성 교육에도 상당히 중요해요. SNS 에티켓이나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다 보니 이게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면서 동시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에요. 소재가 성평등일 뿐이죠. 청소년에게 필요한 감수성을 포함한 역량도 그렇고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 등이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송: 저는 모든 교육 영역에서 성평등의 중요성은 ‘더 설명 필요 없음’. 그렇게 생각해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성평등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한 가지를 꼽는다면 비판적 읽기와 쓰기예요.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역량이 성평등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이분법적 성별을 근거로 한 남성 중심 가부장제를 의심하고 깨부수고 다른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두 번째를 고르자면 참여라고 생각했습니다. 성평등이 이론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죠. 실천하고, 연대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미디어의 영향력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최: 저도 비판, 소통, 참여 이렇게 세 개를 골랐는데 선생님들께서 딱딱 차례대로 말씀하시니까 소름 돋았어요. (웃음)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공동체 생활을 하잖아요. 공동체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죠.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해요. 성평등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공동체의 삶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날 미디어는 곧 삶이고 그런 관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상호간의 존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게 크게 논란이 될 문제가 아니죠.

박: 안타깝게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페미니즘, 성평등 교육을 연결 짓지 못하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교육 구성원 내에서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자체가 아까 말씀하셨듯이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시민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교육이잖아요. 1970년대 미디어교육 탄생의 배경에는 미디어 이면의 권력, 이데올로기를 시민들이 비판적으로 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참여해야 민주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민주주의와 세계 시민성의 관점이 있었죠.

그래서 현재에도 디지털 시민성을 강조하는 것이고요. 그 안에 당연히 성평등의 가치가 포함됩니다. 하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굉장히 좁은 관점에서 해석할 때 문제가 발생해요. 예를 들어 미디어 활용 교육을 하면서 혐오 밈을 교실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어요. 이것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또 최근엔 차별과 혐오론자들이 활발히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 뛰어나다고 볼 수 없죠. 결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서 있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시민성이라는 것을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왼쪽부터) 서울 석관초 박유신 교사, 고양, 서울 이화금란고 송현민 교사, 고양 강선초 황고운 교사, 고양일산 대화중 최은옥 교사 (사진=필자제공)
 


교사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중요
박: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됐습니다. 성평등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앞으로 학교 현장의 중요한 과제가 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미디어와 성평등 교육을 위해서 우리 교사들이 어떤 역량을 갖추는 것이 좋을까요?

황: 저는 교실에서 ‘내 사고방식이 제일 뒤처지기 쉽다' 이렇게 생각하려고 애써요.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균형을 잘 맞추려면 소수자의 목소리를 잘 듣고 더 많이 들어야 균형이 맞춰지는데 그러려면 그들이 직접 이야기를 하는 미디어를 열심히 조명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는 유해 콘텐츠도 많지만 성소수자, 장애인,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 등 그들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미디어가 만들고 있는 우리 공동체의 중요한 이슈들, 소수자, 환경, 동물 등등의 영상을 학생들이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조명해주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고 쉬운 방법인 것 같아요. 제가 전부 직접 알지 않아도 되잖아요.

박: 굉장히 좋은 말씀입니다. 또 콘텐츠를 판별해서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큐레이터의 역량이 필요하죠. 결론적으로 교사 자신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 내재되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송: 이어서 말씀을 드리자면, 교사에게는 자기 성찰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찰하지 않으면 자신이 웃긴 이야기를 하는지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또 끊임없이 공부하고 스스로 계속 개선시켜야 합니다. 페미니즘 관련 포럼이나 학회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교과서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천만년쯤 앞선 이야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막막해질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지향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명확하게 생각하며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고, 공부하면서 스스로 성찰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 ‘교사가 약자’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참 어이가 없어요. 학생들 30명이 6교시 내내 자리에 앉아 있게 하는 힘이 교사에게 있는 걸요. 그런 인식부터 깨는 노력이 교사 스스로에게 필요해요.

최: 교사는 직업 상, 본능적으로 학생들의 말을 많이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먼저 알려주려고 해요. 그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먼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열어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성평등이나 혐오 문제 모두 교사가 소통을 많이 해야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

박: 결국은 청소년 문화, 학술적인 흐름, 그리고 세상에 귀를 기울이는 교사가 되는 것이 너무 중요하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사가 열린 마음과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먼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과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어야겠네요. 저 자신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반성과 성찰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이야기되고 공론화되면서 교사 집단이나 교육 공동체, 교실 안에서도 조금씩 무엇인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 선생님들께서는 그동안 성평등 교육 현장에서 겪은 많은 어려움을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체감하기엔 그래도 선생님들께서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동의하는 시민과 교사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좋은 방향으로 많이 개선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 마음을 담아 응원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세 분 선생님께서 더 많은 선생님들께 좋은 영향력을 미치기를 기대하며 이 대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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