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최고 영예 ‘한국기자상’ 수상작 살펴보니

2012. 6. 15. 11:07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언론인(기자)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상은 어떤 상일까요? <다독다독>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해드린 ‘퓰리처상’(▶퓰리처상 수상자에 한국인이 있다?)을 많이 꼽겠네요. 1917년에 처음 시상했으니 곧 100주년을 맞죠.

우리나라에서는 퓰리처상에 버금가는 상으로 한국기자협회가 시상하는 ‘한국기자상’이 있습니다. 1967년 1회 수상작을 배출한 이후 43년째 최고의 보도 및 기사를 엄선하고 있죠. 한 편의 특종기사를 쓰기 위해 쏟아낸 기자들의 땀과, 취재 과정에 대한 고민이 밴 보도(기사)를 보다보면 “이래서 최고의 상을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


[출처-서울신문, 2007. 10. 27]



한국기자상은 전년도에 방송 및 신문, 간행물 등으로 세상에 나온 기사(보도)를 대상으로 21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는데요. 처음 3개 부문으로 출발해 지금에 이르게 됐어요. 이중 가장 뛰어난 수상작은 ‘한국기자상 대상’을 받게 됩니다. 만약 그해 상을 줄만한 좋은 보도가 없다고 판단되면 수상을 하지 않기도 해요. 실제로 한국기자상 대상은 9차례 수상작이 없었을 정도로 심사가 엄격합니다.



기자의 육감? 혹은 우연?

TBC 김집 기자, ‘가짜간첩 이수근 탈출’ 특종보도(1회)

1967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유력 언론인 조선중앙통신사의 이수근 부사장이 판문점을 통해 북쪽에서 탈출한 것이죠. 총격전을 뚫고 귀순하는 과정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보도되지 못했는데요. 이수근 탈출 정보를 입수한 유엔군이 취재기자들을 모두 내보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단 한 명, <TBC(동아방송)> 김집 기자가 현장에 있었습니다. 평양 출신인 김 기자는 화장실에 있다가 버스를 놓쳤어요. 어쩔 수 없이 홀로 판문점에 남았다가 이수근이 탈출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김 기자는 즉시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사건을 기사화했습니다. ‘이수근 탈출 기사’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 모든 국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특종보도였죠. 김 기자는 “큰 사건이 있을 것 같은 육감 때문에 몰래 빠졌다”고 말했는데, “술마시고 자다가 얻어걸렸다”는 다른 기자의 증언도 있어요.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알리다

국제신문 조갑제 기자, ‘낙동강 중금속 오염’ 보도(7회) 

지금도 언론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유명하죠. 이 분의 이름이 전국에 처음 알려진 계기도 ‘한국기자상’이었습니다. 그는 부산수산대를 중퇴하고, <국제신보(현 국제신문)>에 입사해 기자가 됐는데요. “그저 우연히 직장을 신문사로 선택한 것”이라던 그는 문화부에서 사회부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특종기사들을 연이어 써냈습니다. 

공해 문제에 관심 많았던 조갑제 기자는 1974년 낙동강 유역의 중금속 오염 실태가 심각하다는 점을 알고 이를 집중 취재했습니다. ‘중금속 오염의 추적’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10편의 기획기사는 부산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죠. 조 기자의 보도를 통해 ‘중금속 규제기준’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구상문학관에서 바라본 낙동강[출처-서울신문, 2004. 02. 01]



기사는 역시 알맹이가 좋아야

동아일보 특별취재팀, ‘서울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보도(19회)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서울대생 치사 사건은 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한국기자상은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에 돌아갔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검찰 간부에게 박종철 군 사망 사건을 전해들은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김두우, 허상천 기자와 함께 기사를 썼지만 기사는 사회면 귀퉁이에 작은 박스기사로 처리 됐습니다. 서슬 퍼렇던 군부정권의 공안당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이 사건을 받아 쓴 동아일보는 용감하게 특별취재팀을 구성, 사건의 전모를 파헤쳤습니다. 특별취재팀의 활약은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죠. 언론 보도에서 속도만큼이나 ‘알맹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 사례라 할 수 있죠.


14일 서울 용산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식에서 아버지 박정기씨가 물고문 현장이 보존돼 있는 509호실에서 헌화하고 있다.[출처-서울신문, 2007. 01. 14]



뒤늦게 입증된 특종보도

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북한 후계자 김정은’ 보도(42회) 

한국기자상 대상은 1995년 만들어졌습니다. 심사위원의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대상을 받기 위해선 기획력, 특종성, 사회적 반향까지 만족해야 하죠. 대상 수상작이 많지 않은 이유죠. 지금까지 한국기자상 대상은 단 7차례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2011년 9년의 침묵을 깨고 한국기자상 대상작이 탄생했습니다. 주인공은 연합뉴스의 최선영, 장용훈 기자입니다. 최, 장 기자는 지난 2009년 1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은(기사에는 김정운)이 내정됐다고 보도했죠. 당시 세계 언론이나 정보기관이 ‘도대체 북한의 후계자가 누구냐?’고 혈안이 됐던 시점이었죠.

그런데 왜 2009년에 나온 보도가 2년이나 지나서 상을 받았냐구요? 사실 이 기사는 2010년 기자상에도 출품됐지만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선정이 유보됐다고 해요. 그러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되면서 특종보도가 뒤늦게 빛을 본 거지요. 뒤늦게나마 두 기자의 특종보도 노고를 치하하는 동시에, 진실 규명 책임에 소홀했던 점을 반성하는 의미도 가졌다고 할 수 있죠.


[출처-서울신문, 2011. 12. 19]



여러분, 특종보도 이야기 재미있죠? 모든 수상작을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해야 겠네요. 지금까지 한국기자상을 받은 수상작은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바로가기)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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