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7. 11:32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이곳은 전체 국토의 75%가 삼림으로 뒤덮여있는 아름다운 나라지요. 핀란드의 수도는 헬싱키(Helsinki)인데 수도의 인구가 56만 명에 불과합니다. 전체 인구는 520만을 조금 넘는 수준이고요. 그러나 이 나라의 파워와 에너지는 인구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수준 높은 시민의식과 잘 관리된 아름다운 자연환경,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교육체계와 문화의 힘이 핀란드를 꿋꿋이 지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핀란드라는 이름에서 묻어나는 알 수 없는 평화와 공존의 분위기도 이 나라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단단히 한 몫 하는 것 같네요.
얼마 전 방영한 KBS의 한 영어교육 관련 다큐멘터리를 관람한 저는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식 언어가 영어가 아닌 핀란드인들이 마치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는 장면을 본 것이지요.
한국의 영어교육 관련 연간 지출액은 7조 원. 단연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영어회화 수준은 세계 최하위 수준인 121위(2009년 통계 기준)를 기록하고 있지요. 공교육 및 사교육현장에서 10년 이상 지치도록 영어를 익혀온 우리의 교육은 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요? 핀란드어 역시 영어와 그 구조 및 체계가 완전히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핀란드의 대부분 국민들은 어떻게 살아 숨 쉬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핀란드의 교육체계, 공교육의 비밀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의 핵심에 바로 ‘독서’가 자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핀란드의 과학기술교육현장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핀란드의 과학기술교육현장
학교 안팎에서 ‘배움공동체’ 교육
핀란드의 모든 국민은 태어나면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국가가 아동수당 및 등록금, 급식비를 지원합니다. 말 그대로 ‘공교육 천국’인 셈이죠. 핀란드의 학급당 학생 수는 20명. 주당 수업시수는 24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세계적 수준입니다. 2003년과 2006년에는 종합성취도평가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바 있을 정도죠. 핀란드교육은 양파처럼 껍질을 벗길수록 놀라운 일들이 자꾸만 드러납니다. 최대한 길게 책상 앞에 앉아 최대한 많이 암기를 해야 성적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기 때문이죠.
핀란드의 공교육 혁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리나 크로포스 교수는 말합니다.
“어찌하면 정규 교육(Education)과 학교 밖 ‘배움’(Learning)을 조화롭게 통합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를 모색하고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배움은 비단 학교 안, 교실 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녀의 교육철학 핵심은 ‘아이들이 삶의 지혜를 단순히 학교에서만 얻는 게 아니라 부모는 물론이고 인근 상인, 박물관 등에서도 학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교실 밖 숲에서도, 재래시장에서도, 역사나 과학박물관에서도 정규수업 못지않은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핀란드 교육의 중심-읽기교육
그 중에서도 도서관은 핀란드 교육현장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핀란드는 읽기문화에 지나치리만큼 엄청난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단순한 암기위주의 학습법이 아닌 읽기를 통한 창의력 개발과 상상력, 종합적 사고력, 판단력을 골고루 기를 수 있는 입체적 학습법을 구현하는 것이지요.
사실 핀란드의 읽기문화는 아이가 정규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사회 저변에 널리 깔려 있는 보편적인 교육법이라고 합니다. 핀란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부모들이 잠들기 직전 책을 읽어주는 것을 주요 일과로 삼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듯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독서와 토론 교육은 많은 핀란드 아이들에게 배려와 협동, 평등사상을 심어주어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지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TV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 노출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마음이 무거워지기까지 합니다. 자아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좋은 책들을 꾸준히 읽으며 토론한 아이들은 얼마나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며 자라게 될까요?
핀란드 생태도시인 에코 비키의 주택가
독서를 위한 풍성한 사회적 지원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의 독서교육 관련 인터뷰 자료에 의미심장한 구절이 눈에 띄어 들려주고자 합니다. 핀란드인들의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는 구절이라 생각되네요.
‘교육 선진국 핀란드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을 개인이 선택한 결과로 보지 않는다.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국가가 나서 적극적으로 돕는다.’
저는 이 구절을 접하던 순간 심장이 쿵쾅 뛰었습니다. 독서가 개인의 선택의 결과가 아닌 음식거부나 홈리스 문제처럼 사회 구성원이 함께 도와주며 이루어야 할 필수의무인 셈이죠. 의식이 이렇다보니 국민의 독서교육을 위한 사회적 지원도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러운 수준입니다. 서울시 인구의 절반 수준인 인구 520만의 핀란드 전체에 지역 공공도서관의 수는 무려 319개, 도서관 분원은 496개, 이동식 도서관은 155개라고 합니다. 학교와 각 지역의 도서관은 잘 짜여진 네트워크로 연결이 되어 긴밀히 협조하고 있으며, 학교 수업 자료 등에 필요한 책과 자료들을 순환 대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핀란드 생태 도시인 에코 비키의 주택가 모습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초중고생들 뿐 아니라 대학생, 직장인 등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핀란드 국민의 80%가 정기적으로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해에 1인당 평균 11차례 도서관을 이용하며, 19차례 책이나 자료들을 대출한다고 하네요. 정말 놀라운 수치 아닌가요?
최근 독서와 논술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에서 독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초라해 보입니다. 학생들은 주로 한정된 교과서로의 책읽기에 몰두합니다. 시험성적을 위해 교과서에 소개된 책을 구해 읽는다거나 숙제로 활용하기 위해 독서, 방과 후 활동 이상의 의미를 차지할 수 없는 독서가 대부분이지요. 청소년 독서관련 에세이를 출간한 저 역시 독자들에게 받는 질문의 절반 이상이 ‘학교와 학원공부도 힘든데 따로 독서할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맞나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우리 학생들에게 억지로 책읽기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죽을 때까지 책읽기를 통해 배움과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는 일부 교육 선진국 유럽 국가들의 모토가 떠오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핀란드는 여러 면에서 참으로 부러운 나라입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그렇고, 독서가 전국민의 취미생활로 굳건히 이어져오는 것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육이란 자고로 숲의 나무가 자라듯이 차분히, 그리고 천천히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믿는 핀란드의 부모들의 마음가짐이 가장 부럽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의 해답도 찾지 못한 시절부터 치열한 성공과 매서운 경쟁을 강요당하는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부디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1등을 하건 40등을 하건 자신은 똑같이 아름답고 귀한 존재이며 사회에서 넉넉히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임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며 살길 기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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