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특별한 플래시몹, ‘책 읽는 지하철’을 만나보니

2013. 9. 27. 13:08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지금 내리실 역은.......’ 열차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타고 내리는 사람들, 앞자리에 앉은 승객의 눈이 불편해 애꿎은 신발 앞 코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카톡!’ 울리는 소리만큼 반가운 것이 없을 겁니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잡고 있으면 길기만 한 이동시간이 마법처럼 짧게 느껴지니까요. 이 길고도 짧은 이동시간, 손에 잡힌 것이 스마트폰이 아닌 책이라면, 과연 어떨까요? 지난 9월 14일, ‘책 읽는 지하철’이 철도 위를 달렸습니다.




책, 지하철을 타다


‘책 읽는 지하철’은 독서카페 ‘나눔나우’ 의 대표 송화준 씨가 기획한 플래시몹입니다. 신도림역에서 목적지인 홍대입구역으로 향하는 약 한 시간 동안 열차 한 칸에 모여 책을 읽는 것으로, 올해 1월을 시작으로 매 월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엔 박원순 서울 시장이, 5월엔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가  참여해 지하철 책읽기에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책 읽는 지하철’ 의 참여 방법은 간단합니다. ‘책 읽는 지하철’ 페이스북 페이지에 탑승 계획이 게시되면 탑승 신청을 하고, 탑승 당일 신도림역 출발열차를 타는 곳으로 오면 되는 것이죠.


 

 


신도림역은 차고지가 있는 곳으로 빈 열차가 나오는 승강장이 있는데요. 사진 속 보이는 신도림역 출발열차 표시판을 따라 내려오면 빈 열차를 탈 수 있습니다.



 

 


표지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책 읽는 지하철’ 글자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스텝들이 책갈피를 나눠줍니다. 책갈피를 받고 열차를 기다리다 보면 하나 둘 모이는 플래시 몹 참여자들이 보일 텐데요.  송화준 대표의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안내에 따라 지정 된 열차 칸에 앉으면 됩니다. 그리고 도착지인 홍대입구역 까지 자유롭게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지요. 


 


[출처- 책 읽는 지하철]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다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이번 플래시몹의 참여자에게 간단한 소감을 들어 보았습니다.





동석(46.직장인)


Q. 읽고 계신 책 소개를 부탁드린다.


저자 우병헌의 ‘구글을 가장 잘 쓰는 직장인 되기’라는 책이다. 직장인들을 위한 자기계발서로, 오늘 탑승을 위해 고른 책이다.


Q. 탑승 소감은?


현재 100쪽 남짓 읽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때와 달리 내용의 70~80퍼센트만을 이해한 느낌이다. 처음 참여한 거라 환경이 낯설어 그런 것 같다.(웃음) 어르신이 자리 근처에 올 때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이 쓰였지만 대체적으로 좋았다. 다른 일이 없다면 다음 탑승 때도 참여하고 싶다.



강수연(24.직장인)


Q. 읽고 계신 책 소개를 부탁드린다.


저자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다. 오늘 열차 탑승 전에 구입했다. 요즘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행복한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우울해 하고 있었는데, 누구보다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취업준비생 친구에게 자신은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생각하는 행복, 그리고 나의 고민들을 생각해 보기 위해 고른 책이다.


Q. 탑승 소감은?


오늘은 혼자 탑승했지만, 다음 탑승 땐 일상에 지치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같이 책을 읽고 싶다. 물론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 그 친구도 함께 말이다.




화성인들의 특별한 책읽기


목적지인 홍대입구역에 도착하면 이 플래시몹은 끝이 나는 걸까요? 책 읽기는 열차 밖에서도 계속됩니다. 목적지인 홍대입구역에 도착하면 근처에 위치한 약속 장소에 모여 플래시몹  참여자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기 때문이죠.





“화성인들이 모인 날이네요.” 자리에 앉은 참여자들을 바라보며 ‘책 읽는 지하철’의 송화준 대표가 운을 띄었습니다. 그리곤 “열차 안 스마트폰 사이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어쩔 땐 화성인처럼 느껴지곤 했다.” 라며 웃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이른 오후, ‘화성인’ 들에게 그가 건넨 첫 마디었습니다. 


 5~6명이 앉을 수 있도록 구성된 테이블에 앉으면 특별한 책읽기가 진행됩니다. 탑승 때 읽은 책을 소개 하거나 느낀 점을 말하며 ‘책’을 통한 생각의 공유가 이뤄집니다. 휴학생, 직장인, 군인, 고3 학생, 주부 등 직업, 성별, 나이가 다른 참여자들이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건 바로 ‘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서입니다.





이렇게 ‘책 읽는 지하철’은 익숙한 공간에 대한 재조명, 책을 통한 만남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활동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는 책읽기의 의미를 발견한 이가 있습니다. ‘책 읽는 지하철’의 스텝 심지수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열차 안 책읽기를 꿈꾸며




심지수(25.대학생)


Q. 스텝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책을 읽으면서 외로웠다. 책을 읽은 뒤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엔 책을 자주 읽는 사람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책 읽는 지하철’을 알게 되어 참여했는데, ‘내가 그리던 사람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스텝까지 하게 되었다.


Q. 이번 탑승 때 읽은 책을 소개해 달라.


김영하 소설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란 책이다. ‘어떻게 하면 책을 좀 더 의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까’라는 고민이 있었지만, 독서모임에 가입해 심화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책 읽는 지하철 탑승을 하면서 책을 읽고 타인과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용기를 얻어 그 후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처음 가입한 독서모임의 선정도서이다.  


Q. 스텝 참여 전에도 지하철에서 책을 자주 읽으신 편이었나.


자리가 없어 책을 읽기 불편해 읽지 못한 경우처럼 여건이 안 될 때도 많았지만, 앉아있을 때는 책을 읽으려 노력했다. 스텝을 하면서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자부할 순 없다. 하지만 한 동안 ‘책 읽는 지하철’ 로고가 적힌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녔었는데, 지하철에 멍하니 앉아있을 때 혹은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을 때 이 로고가 눈에 밟히더라. 명색이 ‘책 읽는 지하철’의 구성원인데 책을 안 읽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웃음).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Q. 책은 원래 혼자 읽는 다는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이 플래시몹을 통해 여럿이서 즐기는 하나의 놀이가 된 것 같다.


그렇다. 원래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똑똑한 사람들이 읽는 것,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책 읽는 지하철’을 통해 연인 혹은 가족 등과 함께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가벼운 놀이의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Q. 플래시몹에 참여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승객이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 읽는 지하철’의 플래시몹을 보곤 눈치를 보며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걸 봤다. 또 어르신들은 책을 읽으라며 자리를 양보해 주시기도 한다.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이렇게 소소한 변화와 배려가 기억에 남는다.


Q. 이 활동이 본인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는지.


나에게 이 활동은 아직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나 스스로 즐기지만 책임감이 느껴지는 활동이다. 바람이 있다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어느 열차 안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거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게 왜 플래시몹이야?’라 할 정도로 지하철 책 읽기 문화가 보편화 되었으면 좋겠다.(웃음).


  

책을 읽는 다는 건 공간의 문제도, 책의 문제도 아닌 책을 읽고자하는 개개인의 의지에 달린 것일 겁니다. 책을 읽기 위해 굳이 많은 시간을 내고, 갖추어진 공간에서 책을 읽겠다는 다짐이 어느새 부담처럼 느껴진다면, 대중교통 이용 시간을 활용하면 어떨까요? 철도 위를 달리는 지하철의 소리마저 반갑게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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