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나누며 소통하는 문화예술활동 ‘책 읽는 벤치’ 살펴보니

2013. 11. 7. 13:10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덜컹덜컹 소리와 함께 북적이는 사람으로 가득한 오전 지하철. 양복을 입은 한 중년 남성이 선반에 신문을 두고 내리자 몇 사람의 손이 같은 곳으로 뻗어집니다. ‘읽을거리’를 사수하려는 이들의 어색한 눈빛이 허공에서 충돌하는데요. 지하철을 타고 다니시는 분들이라면 으레 보셨을 재밌는 풍경입니다. 유럽의 지하철에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해외 사례 잠깐 소개해드리면서 오늘의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거리 벤치에 빨간 클립…네덜란드 ‘Ruilbank’ 프로젝트


지난 7월에서 9월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이런 지하철 관습을 문화교류로 연결시킨 ‘Ruilbank’라는 프로젝트가 시행됐습니다. ‘Ruil’은 네덜란드어로 ’교환‘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출처 - http://ohmundocruel.com.mx/]


건축가와 디자이너 듀오인 스튜디오 ‘Pivot’의 프로젝트로, 공공벤치에 총 9개의 빨간 클립을 설치해 오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책, 신문, 잡지 등을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에 신문사와 도서관, 출판사 등의 ‘읽을거리’ 서포트도 줄지어 이어졌는데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같이 다른 책들이 비치됐습니다. 시민들은 벤치에서 자유롭게 책이나 신문을 읽고,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때로는 꽃 한 송이를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책을 많이 읽자는 단순한 캠페인도 아니고, 무엇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보통의 공간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 일상 속의 작은 문화 교류였죠.




연애편지부터 낭만 바라기까지 ‘책 읽는 벤치’는 무엇일까


‘세상에서 제일 예쁜 그녀에게’, ‘내 꿈은 대학생들에게 캠퍼스의 로망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중간고사 싫다’ 등 사랑고백에서 일상의 작은 투덜거림까지. 많은 이들의 솔직한 마음소리가 이곳 ‘책 읽는 벤치’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사연들은 어떻게 이곳에 도착하게 된 걸까요?


전라도 광주에서 시작된 ‘책 읽는 벤치’(이하 ‘책벤’)는 일상 속의 공간인 벤치를, 책을 통해 이웃과 공유하는 도서관으로 만들어가는 공유-문화예술 확산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9월 7일 남광주역 푸른길기차도서관에서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지정한 벤치에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책갈피와 스티커를 부착한 후, 자유롭게 ‘벤치지기’(이하 ‘벤지’)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도서를 기증하고, 또 기증된 도서로 ‘책벤’을 꾸리며 운영되는 방식입니다.






‘Ruilbank’와 다르다 ‘책 읽는 벤치’ 그 특별함


기본적인 틀은 네덜란드 ‘Ruilbank’ 프로젝트에서 착안했지만, ‘책벤’은 여러 면에서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앞서 언급된 예처럼 ‘소통’이라는 개념이 함께 합니다. ‘책벤’의 코디네이터이자 첫 ‘벤지’인 탁아림씨는 자신의 ‘책벤’에 포스트잇과 펜을 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이곳에 들렀다가 남긴 흔적을 발견하게 됐는데요. 그녀는 이를 굉장히 기쁘고 신기한 순간이자 ‘소통이 시작된 날’로 기억합니다. 


또 그녀는 “네덜란드는 빨간 클립으로 천편일률적이지만, 우리는 공동의 사인물만 있을 뿐 책꽂이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벤치지기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벤치를 가꿀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합니다.





문화예술 활동을 정해진 틀에 가두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처럼, 현재까지 설치된 많은 ‘책벤’에는 각각의 ‘벤지’들의 개성이 잘 담겨 있습니다. 책꽂이 모양, 책의 권수 등은 벤치지기들 개개인의 다양한 운영방식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책벤’을 구경하는 또 다른 쏠쏠함일 것 같네요.




‘책 읽는 벤치’의 또 다른 이름, ‘공유 · 양심 · 소통 · 문화




▲ ‘책 읽는 벤치’를 기획한 코디네이터이자 첫 ‘벤치지기’인 탁아림(25․전남대 대학원생)씨



Q. ‘책벤’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인이 외국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도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재밌을 것 같았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제가 이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가 되어 기획하고 첫 ‘책벤’을 설치했다. 제가 페이스북에 ‘책 읽는 고릴라’라는 그룹을 운영하고 있는데 회원들에게 이런 프로젝트를 해보자며 아이디어를 모으자고 게시물을 올렸다. 하룻밤 사이에 200개 가까운 댓글들이 달리며 아이디어들이 마인드맵 됐다. 그 댓글들을 모두 모으니 하나의 기획서가 탄생했다. 발대식을 열기 위해 몇몇 단체에 협조요청을 했고, 그 결과 지난 9월  ‘책 읽는 벤치 in 광주’ 발대식이 열렸다. 그렇게 광주광역시에서 최초로 공공기관이 아닌 시민이 시작한 공유도서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Q. ‘책벤’을 운영하면서 느낀 애로사항은 무엇인가요?


‘벤치’라는 특성상 날씨가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벤지’분들이 24시간동안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갑자기 비가 오는 경우에는 책이 젖는 일은 사실상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서 지퍼팩, 아크릴판 등 많은 방법들이 나왔지만 저희는 각 책꽂이의 개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각자의 방법대로 비를 피하고 있지만, 효과적인 방법들은 고민하고 있다. 한 가지 방법으로 ‘벤지’들 사이에 형성돼있는 페이스북 그룹에서 ‘책벤’ 캐스터 정진주 양이 매일 일기예보를 해준다. 


또 책이 없어지는 문제가 있다. 이는 책꽂이 옆 대여 장부를 비치해 자연스럽게 대여로 유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런 생각의 전환으로 ‘책벤’을 이용하는 이웃들에게 공유라는 의식을 심어준다면, 분실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또한 공유의 의미에는 기부를 전제로 한 나눔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소유욕을 내려놓아야 타인과 공유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날씨와 분실 문제는 저희 ‘책벤’이 계속 짊어지고 가야하는 문제다.


Q. ‘책벤’만의 운영철학이 있나요?


저희 ‘책벤’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저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책꽂이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저희 ‘책벤’의 가장 기본적인 플랫폼이다. 


Q. ‘책벤’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찰 때는 언제인가요?


저희 ‘책벤’은 각 벤치지기마다 시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첩이나 노트를 비치하고 있다. 이 수첩에는 ‘책벤’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을 수 있다. 취업, 연애, 시험 등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책벤’은 이런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의 이웃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벤치지기들이 직접 답글을 달아주는 소통을 함으로써 보람을 느낀다. 

또한 "벤치가 너무 예뻐요. 종종 들려서 책 좀 읽어야겠어요", "잠깐의 여유를 느끼게 해준 책벤 감사해요" 등 이런 메시지를 남겨 저희 ‘책벤’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매우 감사하다.


Q. ‘책벤’의 향후 운영 방향 및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책벤’의 목표는 책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책을 포함한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다. 향후 계획은 지금 시행하고 있는 ‘책벤’의 주위를 청소하는 ‘클리어링데이’라는 프로젝트를 주기적으로 시행할 것이다. ‘책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쓰레기를 벤치 주위에 버린다는 것이다. 양심에만 기대지 않고, 우리 스스로 치우기로 했다.


곧 ‘책장’(책읽는광장의 줄임말) 프로젝트도 시작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책벤’의 확장된 개념으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만들어진 광장에 ‘책벤’을 설치해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 많은 프로젝트가 있지만 여기서 다 말씀드리면 재미없으니 앞으로의 ‘책벤’ 행보를 기대해달라.


Q.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본다. 위대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영감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꼭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책을 써야한다는 법도 없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현재의 자신을 써가면서 미래의 나를 써본다면, 그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욕심을 부려도 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타인과 자신의 책이다.

 


지금까지 ‘벤치’와 ‘책’을 결합해 공간과 독서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 ‘책 읽는 벤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책벤’은 소소하지만 책을 공유하는 즐거움, 소통을 통한 추억이 공존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광주만의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현재 충주와 대구는 지난 9월 말 시작했으며 대전과 고양, 목포, 서울, 인천, 순천, 광양에서도 ‘벤지’를 희망하는 의사가 이어졌습니다. 전국 곳곳의 벤치가 책과 많은 이들의 이야기로 더욱 가득해질 그날을 기대합니다.


▶ ‘책 읽는 벤치’ 이미지 제공 : 탁아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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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2013.11.08 11:05

    혹시 벤치에서 책을 발견하면 가져가지 말아야겠네요 ㅋㅋㅋ 좋은 포스팅 잘 봤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