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의 ‘혼자가 아닌 독서’

2013. 11. 13. 13:38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촉촉한 공기를 머금던 11월 6일,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9번째 ‘독한습관’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시간엔 ‘지지 않는다는 말’, ‘청춘의 문장들’ 등을 펴낸 김연수 작가가 함께해 주셨습니다.




사유(私有) 해야 읽는다.


“피트니스 센터를 지날 때마다 창밖을 바라보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봐요. 창밖에 나란히 서서 러닝머신 위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 뭐랄까, 다람쥐 같기도 하고.(웃음)” 


김연수 작가는 이 모습을 보며 어딘가 서글퍼졌다고 합니다. 어느 순간 ‘걷기’가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내어 소비하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죠. 그리고 레베카 솔닛의 책 <걷기의 역사>, <어둠 속의 희망>을 읽으며 걷기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어둠 속의 희망>을 보면 노동자는 걷지 못한다고 나와요. 이 말은 즉 노동자는 사유하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노동자는 노동을 팔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직장 안이나 학교에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을 하며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죠. 그렇게 팔린 시간은 돈이나 다른 결과물로 돌아오고요. 이게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이에요. 그렇다면 자신의 시간을 안 팔아도 되는 사람들만이 걷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여기서 걷기는 독서로 바꿔 말할 수 있겠네요.” 


김연수 작가가 이와 같은 말을 한 건 한국인의 독서 실태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중 1/3은 한 해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년에 귀거래사를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듯, 책 역시 사유의 대상으로 바뀌며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감각의 독서


김연수 작가는 ‘쓴다는 것은 감각을 쓰는 일’ 이라고 합니다. 쓰는 사람은 감각을 소유한 사람이며, 이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체험하는 건 독자이기 때문에 작가는 독자보다 ‘감각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놓인다고 합니다.



“고마코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목은 길게 빼고 있었다.

거기로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갈 듯, 시마무라는 손가락 끝이 떨렸다.

시마무라의 손은 따스했으나, 고마코의 손은 더 뜨거웠다. 

왠지 시마무라는 이별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이별할 때 손이 뜨거워지나요?(웃음)” 김연수 소설가가 말했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예로 들며 감각과 공감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고마코의 손이 뜨거워졌다는 글에 독자는 ‘이별을 할 때 정말 손이 뜨거워지나?’ 라고 질문을 할 수 있는데요. 그리고 이별의 순간을 경험 할 때 그 질문은 답을 찾을 수 있고, 이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독자는 자신의 감각이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독자여, ‘유령’이 돼라


김연수 작가는 독서엔 개별적 사람과 보편적 사람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개별적 사람은 책을 쓰는 작가, 보편적 사람은 책을 읽는 독자라고 하는데요. 이 간극을 좁히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개별적 사람은 암환자, 보편적 사람은 의사 혹은 보호자라고 칭해볼게요. 이 둘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요. 암환자가 자신이 겪는 고통이나 생각을 의사나 보호자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완벽히 암환자의 느낌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이렇게 두 존재 사이엔 간극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사이를 좁히는 방법은 존재합니다. 바로 공감을 통해 ‘유령이 돼라’입니다.





유령이 된다는 말은 자신의 감각을 사라지게 하고 새롭게 얻은 감각만을 받아들이라는 말인데요. 공감이란 나의 감각을 확인하는 일, 그 감각을 책과 공유하는 일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마치 유령이 되어 책 속 상황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기를 열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예시에선 자신이 암환자가 되었다고 믿으면 된다는 것이죠. 좋은 독자란 이렇게 책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감각이 새삼 느껴질 때, 이를 알려고 노력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공감, 결국 혼자가 아닌 독서 


이 세상 모든 이별노래가 내 이야기 같을 때, 가사 하나 하나가 날카롭게 가슴에 박힐 때, 이는 노랫말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닮은 책 역시 이렇게 다가올 텐데요. 김연수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재미가 없는 건 자기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책이 6백 만 권이 넘게 있어요. 그 중 적어도 한 권은 분명 현재의 자신과 닮아 있을 거예요. 그 책을 읽으면 돼요. 전 수없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 지금 내 상황을 담고 있는 책이 무엇일까 고민해요. 책을 읽는 다는 건 물론 지식을 쌓기 위함도 있겠지만, 일단 자기 이야기를 읽는 거예요. 그때 진정 책 읽기가 진행되고요. 그래서 C.S.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 C.S. 루이스 -



2시간가량 진행된 이번 강연은 김연수 작가 특유의 재치와 입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은 많은 학생들의 참여로 채워졌습니다.





Q.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으시다면?


원래는 과학자가 꿈이었어요. 대학에서도 이과를 가려고 했었죠. 그런데 어쩌다보니 문과로 진학했어요. 그러니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죠.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었어요. 그렇게 책을 읽다가 글을 쓰게 되었는데, 처음엔 주변 사람들 모두 반응이 안 좋았어요. 못 썼거든요.(웃음) 그런데 한 3개월을 하다 보니 나아지는 거예요. 저도, 친구들도 그렇게 느꼈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어요. 그 3개월의 시간을 계기로 ‘계속하면 나아지는구나’를 알게 되었죠. 그리고 지금도 글쓰기는 나아지고 있어요.


Q. 글쓰기 소재는 어디서 가져오시나요?


온갖 것에서 얻어오죠. 신문을 통해 사건 사고를 접할 때, 혹은 다른 책을 통해 경험한 것, 방송 등 정말 다양한 곳에서 얻어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들 중 오랫동안 머리에 살아남는 것이 있어요. 몇 달간 안 없어지고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는 거요. 그런 것들이 소재가 되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요. 쓴다는 건 감각을 적는 것이니 미리 경험해 봐야 하기 때문이죠.


Q. 그렇다면 어떻게 그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나요?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쓴다고 했잖아요. 그럼 솔직하게 써야 해요. 자신이 감지한 감각을 최대한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공감이 될 때 상대방은 더욱 큰 감명을 받을 거예요. 그러니 사람들이 어떤 것을 감각하고 경험하고 또 이해하는지 우리의 일상 속을 들여다보고 많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독서란 시간을 내어 혼자 읽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강연을 통해 혼자 책을 읽던 그 순간에도 내가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누군가와 늘 함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당신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나요? 그리고 ‘유령’이 되어 만난 ‘그’와 얼마나 함께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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