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작가 ‘장 필립 뚜생’, 그가 사랑받는 이유

2013. 12. 5. 14:2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지난 11월27일 서울 상도동 숭실대에서 특별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계적인 작가 장 필립 뚜생과의 만남이었는데요. "소설 속 인물, 마리에 대하여 Autour de Marie, personnage romanesque"를 주제로 열린 이번 만남은 불어권 작가 장 필립 뚜생의 4부작 소설 <도망치기 Fuir>(2005년 메디치상), <사랑하기 Faire l'amour>, <마리에 대한 진실 La Verite sur Marie>(2009년 데상브르상), <벗은 여자 Nue>(2013년 공쿠르 상 최종 후보4인작가로 선정)에 등장하는 마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강연이 이루어졌습니다. 강연에는 장 필립 뚜생과의 만남을 위해 많은 이들이 모여 성황을 이뤘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소설 '도망치기'로 메디치상을 받은 벨기에 작가 장 필립 뚜생(Toussaint·56)이 한국에 왔습니다. 지난 2012년 10월 ‘서울작가축제’ 참가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는 장 필립 투생은 이번엔 문학이 아닌 미술로 한국을 방문했는데요. 장 필립 투생은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면서 영화감독입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미술 작품을 전시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지난해 그를 초청해 ‘Livre/Louvre (책/루브르)’라는 전시를 열었습니다. 전시에 대해 장 필립 투생은 "글이 아닌 사진과 영상, 설치미술을 통해 책에 대해 생각하게 한 기획"이라며 "책에 대한 오마주(hommage·존경)"라고 했습니다.



"전시작 중에 '독서를 사랑하라'는 내가 아내·아들·딸과 함께 7년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책 읽는 사진을 그러모았다. 책이 주는 기쁨과 아름다움, 읽을 때의 감정을 웃음과 눈물로 담았다. 아이들은 자라니까 시간의 흐름도 얹을 수 있었다."


조선일보 2013-11-26




[출처 - 한국일보]


뚜생은 영화감독이기도 합니다. 'Livre/Louvre'에서 그는 15세기에 단테가 쓴 '신곡' 원고 일부분을 삼성 태블릿 PC 8대에 담았는데요. 지옥을 그린 이 소설이 점점 불타 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한 사이클이 끝나면 다시 멀쩡한 원고가 나타납니다. 투생은 2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학은 타버리지만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며 "르네상스(재생)이고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영화에 비해 소설은 재채기 소리를 들려줄 수도, 머리카락 색을 보여줄 수도 없지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부족할 게 없다"고도 했습니다.



"책이나 소설은 내 삶의 뼈대, 척추다. 책이나 소설이 없다면 나는 무너진다. 어떻게 보면 신성하다. 책 한 권 쓰는 데 3~4년 걸릴 만큼 고통스럽지만 그보다 더한 기쁨과 의미를 주는 작업이다."

서울도 그렇지만 파리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은 책이 아닌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책이나 소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투생은 낙관하면서도 "문학에도 변화는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도 1970년대와 비교하면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 든다. 문학을 비롯해 모든 예술은 멈추지 않고 변화한다. 과거에 종이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순서가 중요했지만 오늘날 책은 '분절'이 특징이다. A부터 Z까지 차례대로 볼 필요가 없다. 여기 봤다 저기 봤다 하는 시선과 같다."


조선일보 2013-11-26



장 필립 뚜생은 1991년 작가로서 대중 앞에 처음 섰습니다. 명료하고 간결한 절제미가 돋보이는 필체의 장 필립 뚜생은 14권의 소설을 출간했으며 그중 ‘욕조’, ‘텔레비전', '사랑하기’ ‘도망치기’ 등 5편이 국내에 번역됐습니다. 이중 ‘욕조’는 2008년 우리나라에서 연극으로 막이 오르기도 했죠. 2인극으로 연출된 이 연극은 대화 없는 이야기 전개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출처 - 교보문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작가들이 너무 많이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묘사로 작가가 똑똑하다는 이미지를 줄 수는 있겠지만 (작가는) 독자가 상상해서 읽고 소설 속의 감정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명료하고 간결하게 소설을 쓰려고 한다는 장 필립 뚜생의 글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죠. 


그의 글을 읽고 우리나라의 박정대 시인은 동일명으로 시를 쓰기도 했는데요. 유럽의 정서를 많이 지닌 박 시인의 이 시는 대담성 있는 시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해변의 욕조

박 정 대                          

 

욕조는 아름답다, 텅 비어 있는

그리하여 알몸의 꽃을 심을 수 있는

욕조는 아름답다, 나는 욕조를 바라본다

하루 종일, 욕조 속의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샤워를 하기도 하고, 꿈을 꾸는 듯

먼 곳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듯

수영을 하기도 한다, 수영을 하는

여자의 알몸은 아름답다, 나는 해변을

생각한다, 해변의 꽃 모종을 생각한다

나는 해변으로 가려고 한다, 나는

해변이다, 해변의 꽃 모종을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나의 몸에 꼭 맞는

욕조를 가진 적이 있었다, 종종 그곳에서

알몸으로 누워 삼류 소설을 읽기도 했다


외출할 때는 욕조를 입고 나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요조숙녀라고 불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욕조 속에서만

알몸이었고 나의 알몸을 느낄 수 있었고

알몸과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사람들이 다시 한번

욕조숙녀라고 불러주었더라도 괜찮았을 텐데

나도 언젠가 나의 몸에 꼭 맞는

그런 욕조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몸의 나와 오래도록

부드럽고 긴 섹스를 한 적이 있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박정대 지음 | 2001 | 민음사) 中에서




[출처 - 조선일보]


루브르에서의 전시 'Livre/Louvre'에서는 데뷔작 '욕조'를 읽고 있는 그의 머릿속도 단층촬영으로 전시됐다고 합니다. 장 필립 뚜생은 "내 뇌 속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미지들이 박물관, 영화, 책과 어울리고 관계 맺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한국 독자의 반응도 궁금하다"고 말했다는데요. ‘욕조’를 읽을 때 저의 머릿속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해지네요. 장 필립 뚜생은 다음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어떤 작품이 나올 지 기대됩니다.



*메디치상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인 메디치가문이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메디치 家는 15세기 중반 건축가들을 불러들여 빼어난 건축물들을 완성하게 했으며,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를 지원하면서 유럽 곳곳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사들이는 데도 열을 올렸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는 수 세기 동안 가문에서 모은 예술품과 건물을 피렌체 시민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 그것이 예술의 불꽃이 꺼지지 않은 피렌체의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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