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기사에서 찾아본 라면 역사 50년

2013. 12. 6. 10:16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파송송 계란탁!’ 소리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음식인 라면이 올해로 50년 역사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최근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 달 평균 라면 소비량이 올해 세계 1위 수준을 기록했는데요. 그러나 라면이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라고 해요. 왜 그랬을까요? 라면의 과거를 당시 기사를 통해 생생하게 만나보시죠.   


1960년대, 국내 최초 라면 등장 사람들의 반응은 미지근


한국 최초의 라면은 1963년 삼양식품이 생산한 ‘삼양라면’입니다.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60년대 초 우연히 배고픈 서민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줄을 길게 선 모습을 목격한 데서 라면 개발이 비롯됐죠. 전 명예회장은 출장길 일본에서 봤던 라면을 한국에서도 생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최초의 라면’은 닭고기 육수 맛이었습니다. 닭 국물을 육수로 쓰는 일본의 라면 기술을 그대로 도입했기 때문이었죠. 




[출처 – 아시아경제신문]



22일 하오 7시 20분쯤 서울 동부 이촌동 296 오정호(44)씨의 처 한길선(38)씨는 미8군부대에서 나오는 꿀꿀이죽을 저녁밥대신 먹고 장난 용암(17)군 차남 용식 군 3남 용화(10)군과 딸 용연(3)양 등 일가족 5명과 나누어 먹은 뒤 갑자기 복통을 일으키며 구토와 설사를 하는 등 식중독을 일으켰다. 오 씨는 지게품팔이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오는데 이 날도 오 씨가 저녁끼니를 구하러 나간 뒤에 이와 같은 참변이 일어난 것이다. 


꿀꿀이죽 먹고 일가족 5명 식중독 (1964. 06. 23. 경향신문)



그러나 라면은 시장에서 외면당했습니다. 오랫동안 곡물 위주의 식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밀가루를 튀겨 만든 라면은 생소하였기 때문이죠. 심지어 라면을 옷감이나 실로 오해한 시민도 있었다고 합니다.


야심차게 국내로 들여왔던 라면이 생각보다 큰 인기를 끌지 못하자 전 회장은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삼양식품 전직원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동원해 1년 이상 기업체나 관공서를 돌며 무료시식회를 열었습니다. 




1970년대 한국인의 입맛 고려해 재개발한 라면 인기몰이



한국인의 주식은 쌀이죠. 하지만 1970년대 당시 쌀 생산량의 부족으로 마음껏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식생활개선 정책으로 ‘혼분식 장려 운동’을 시행하였는데요. 모든 음식점은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해서 팔아야 했고, 학생은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에 보리나 콩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날로 격심한 양곡부족에 있어 분식의 장려란 국가적인 견지에서 앞으로 다가올 식량난 해결에 초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구조상으로 볼 때 수답은 제한되어 있어 그 외에는 전답뿐인 관계로 날로 증가되는 인구의 식량해결방법이란 분식이용 뿐이며 현입장의 해결방법인 것이다. (생략) 이러한 분식장려운동과 때를 같이하여 등장한 것이 분식의 대용식인 삼양식품공업주식회사 (대표=전중윤)의 「인스트·라면」인 것이다. 이 「라면」의 등장이란 이미 외국에도 분식의 대용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월간 7백만 식의 「라면」이 전국에 공급되고 있어 국내식량난해결과 분식장려에 있어 선구적인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식의 총아 식량난해결의 역군 『삼양라면』 (1967. 06. 03. 매일경제)

  


이 때 다시 등장해 주목받았던 음식이 바로 밀가루를 주원료로 하는 라면이었습니다. 기존의 맛을 개선해 소비자의 입맛을 끌어당겼고 마침내 국민 기호식품으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습니다. 70년대에 들어 재등장한 라면은 주된 먹거리가 될 정도로 일상화 되었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80-90년대 휘청했던 라면시장 다양화로 위기극복 해외진출 시작


1980년대에 들어 라면 시장은 초호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라면을 개발한 삼양식품 외에 롯데공업(현 농심), 빙그레, 오뚜기, 야쿠르트 등 많은 기업들이 라면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너구리’, ‘안성탕면’, ‘팔도비빔면’, ‘짜파게티’, ‘신라면’ 등 모두가 80년대 당시 출시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라면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탄탄대로였던 라면시장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1989년 삼양식품이 라면 제조 과정에서 면을 공업용 쇠기름에 튀겼다는 ‘우지 파동’이 일어났던 것이죠. 이 파동은 8년 뒤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라면을 즐겨먹던 국민에게 큰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공업용 우지 파동으로 된서리를 맞은 라면업계가 정상을 회복하면서 빙그레, 한국 야구르트 등 중위권 업체들이 농심·삼양식품 등 상위권 업체에 도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빙그레는 2백 원짜리 새 제품 「라면세대」를 개발,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면서 농심·삼양식품이 80%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시장을 파고들고 있으며 한국야쿠르트도 3백 원짜리 새 제품을 개발,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지파동으로 덩달아 30% 이상의 매출감소를 겪은 농심은 고급, 고가면에 주력, 3백 원짜리와 5백 원짜리 신제품으로 매출증대를 노리고 있으며 삼양은 성급한 판촉활동보다는 전국의 영업망을 점검한 후 신제품 개발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라면업계 판도변화 예고 (1989.11.27. 경향신문)




[출처 - 뉴스1]


추락할 것이라 예상했던 라면시장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장하였습니다. 제품의 고급화와 다양화, 그리고 해외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90년대 후반 생면을 가공해 포장하는 방식으로 ‘생생우동’과 같은 제품을 만들어냈고, 왕뚜껑, 튀김우동, 신라면 큰사발 등 다양한 용기제품을 개발하였습니다. 



해외교포들이 즐겨 찾는 식품은 바로 라면. 이 중에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찾는 제품은 농심의 '신라면'이다. 국내 라면시장 부동의 1위 농심은 최근 부쩍 수출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중략) 이 중 세계 최대의 라면소비국 중국은 96년 1백30억 개 97년 1백 50억 개 등 연 소비량이 20% 이상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막강한 잠재시장. 86년에 처녀 수출을 시작한 농심은 95년 상하이에 현지공장을 설립하면서 매출이 급신장,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3백 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중략) 경쟁국의 라면에 비해 면발이나 국물 맛이 뛰어나고 얼큰한 맛이 다른 해외 라면과 비교가 안되는 차별성을 갖고 있어 중국인들에겐 특히 인기라고. 


농심 '신라면' '매운맛'으로 13억 입맛 공략 (1998.11.10. 동아일보)



신제품 개발 외에도 라면시장의 양대 산맥인 농심과 삼양식품은 중국 시장에 진출해 지난 1998년 사상 처음으로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던 라면이 해외 시장까지 진출하다니! 노력을 통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겠네요.^^  




2000년 이후 웰빙 바람 라면에도 불어


국민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대체식품을 넘어, 라면은 하나의 요리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를 위한 프리미엄 라면의 등장과 각종 라면을 맛볼 수 있는 라면뷔페까지 등장하며 라면은 ‘제2의 주식’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라면 시장은 큰 변화 없이 정체됐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1년 하얀 국물 라면이 등장하며 라면시장의 판도가 뒤흔들렸죠.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세는 ‘빨간 국물 라면’에서 ‘하얀 국물 라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2011년에 등장한 하얀 국물 라면이 50년 전 국민에게 외면 받았던 한국 최초의 라면과 흡사하다는 사실! 라면도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나봅니다 ^^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식품안전에 대한 우려와 건강을 따지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합성첨가물을 뺀 무첨가 가공식품의 인기가 높다. 이른바 '마이너스 마케팅'이다. 내수시장 포화로 한계를 느낀 식품업계는 일반 제품에 비해 10~20% 가량 비싼 무첨가 제품을 내세워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중략) 풀무원은 대부분의 제품에 마이너스 마케팅을 추구한다. 최근에는 향미증진제인 L글루타민산나트룸(MSG), 합성착향료를 넣지 않고 표고버섯과 무, 양파, 양배추 등으로 맛을 낸 라면인 '자연은 맛있다' 시리즈가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7월 출시된 '자연은 맛있다 꽃게짬뽕'은 한 봉지 가격이 1470원(대형마트 기준)으로 라면 판매량 1위인 농심 신라면(634원)보다 2배 이상 비싸다. 그렇지만 출시 2개월 만에 200만개 이상 팔렸다. 


빼면 잘팔린다… 식품업계 웰빙바람 타고 '마이너스 마케팅' 대세 (2013.11.15. 서울신문)



최근에는 웰빙라면이 인기죠. 풀무원의 ‘자연은 맛있다’, 삼양식품의 ‘돈사골탕면’ 등이 그 예입니다.



라면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기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의 라면은 ‘라면 원조국’인 일본에까지 뻗어나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 라면 제조업체가 수프 제조기법을 배우러 우리나라에 올 정도라고 합니다. 


평소 즐겨먹지만 정작 우리는 라면의 역사에 대해선 잘 몰랐죠. 하지만 신문을 통해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라면의 과거를 살펴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던 따뜻한 국물의 맛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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