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2. 11:04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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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사학도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과거라는 거울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명쾌하게 조언해주는 명저입니다. 역사 기술이 ‘사실’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접해온 20세기 많은 유럽인에게 상당한 충격을 선사한 이 책은 우리가 아는 역사가 과연 진실인지 되짚어볼 기회를 마련해주죠. 역사적 진실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어쩌면 시대상을 작가 또는 역사가 자신만의 프레임 속에서 그려낸 일종의 ‘풍경화’가 아닌지는, 같은 시대 혹은 동일 인물을 그려낸 역사서와 야사, 소설 및 평설 간 많은 충돌을 통해 아주 잘 드러나곤 합니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명작 <삼국지>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방대한 스케일과 살아 숨 쉬는 듯한 매력적인 인물 묘사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회자할 영원한 고전입니다. 특히 강렬한 개성을 지닌 유비와 조조라는 두 인물은 아직도 리더의 자질에 대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단골 소재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접하는 삼국지는 대부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인 반면 실제 삼국시대를 다룬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그 유명세에 비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몽골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했던 원말 명초 시절의 작가 나관중이 ‘한족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촉한 정통론에 따라 역사를 기술, 각색한 <삼국지연의>는 도원결의라는 도입부부터 많은 부분을 유비와 촉나라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의는 역사서인 동시에 소설로서의 성격도 강하기 때문에 제갈량의 동남풍 기원 등 야사에서 빌려오거나 창조한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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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삼국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사는 기본적으로 소설이 아닌 역사서로 집필되었을뿐더러 소설이나 신화적인 내용은 상당 부분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연의와 비교하면서 정사를 읽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부분이 대단히 많음을 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아닌 역사서라고 하여 진수의 역사 기술을 과연 ‘진실’로 볼 수 있을까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패자는 승자가 기술하는 역사 속 객체로 움츠러들기 마련이므로 신화, 야사에서 기술될만한 내용이 비교적 적다는 점을 제외하면 진수의 역사관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또 한 번의 물음표를 던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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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조선의 건국과정 및 집권 초기를 그려내면서 높은 호응을 이끌어낸 90년대 드라마 <용의 눈물>에 이어 요즘은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부각한 드라마 <정도전>이 새롭게 방영되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도전이라는 인물의 극 중 무게감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한 최근의 높은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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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국가를 만들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이성계와 정도전은 군신관계인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협력 관계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고려 말기 혼란을 보면서 개혁을 꿈꾼 정도전은 이성계라는 인물을 통해 본인의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지만 그의 목표는 이방원에 의해 중도에 물거품이 되고 마는데, 비록 조선 말기 건국에 공헌한 정도전의 명예가 일부 복원되기는 하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역사의 패자 정도전에 대해 혹평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도전은 본인의 유교적 이상을 담아 경복궁을 비롯한 수도 한양 내 각 성문의 이름을 지었고 훗날 경국대전의 토대가 되는 조선경국전의 편찬을 주도하는 등 조선을 실질적으로 설계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업적을 쌓았습니다. 거기에 명나라와의 갈등 속에서 그가 추진했던 요동 정벌이 실제 진행되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인지 아니면 이상 속에 갇혀 산 반역자인지, 여러분은 정도전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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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례없는 기록문화의 최고봉으로 그 방대한 분량은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관들의 ‘객관적 기술’을 왕이 절대 볼 수 없게 제한했다는 면에서도 그 권위를 충분히 인정받을만하지요. 그렇지만 정도전에 대한 실록의 기술만 보더라도 재위 기간에 왕을 따라다니며 평가하는 사관들이 과연 온전히,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어떠한 편향성이나 의도에 치우치지 않더라도 사관 본인만의 시각에 갇혀있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태종 이방원의 첫째 아들이었던 양녕대군만 하더라도 박종화의 <세종대왕>에서는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세상을 초탈한 목가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왕위를 내려놓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왕자 간의 왕위쟁탈에서 밀려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일을 겪고 같은 글을 보더라도 해석이 다른 경우는 역사서가 아닌 일상에서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 <라쇼몽>은 나무꾼, 산적,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가 같은 일을 겪고도 각자 받아들이는 관점이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진정한 진실’을 멋들어지게 보여줍니다. 심지어 엄연한 사실이어야 할 ‘살인자가 누구인가’라는 명제마저도, 화자에 따라 정확히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영화는 역사는 누가 어떤 의도에서 무슨 생각으로 기술했느냐에 따라 완연히 엇갈릴 수 있기에 사실로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빼어나게 시사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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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룬 많은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으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단순히 일본에 대한 인류학자의 관심을 담은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는 2차대전 후 일본을 통제한 미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속속들이 이해하고 통치하려는 의도로도 집필되었다는 점을 알고 읽는다면 제삼자의 입장에서 책의 내용을 훨씬 풍요롭게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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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 혹은 기사를 읽을 때 저자가 어떤 시대적 배경과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 고민해보고, 이와 다르게 해석한 내용을 추가로 보면서 한층 깊게 파고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나의 해석도 또 하나의 주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냉철한 관점하에 작가의 진심을 파헤치면서 다양한 시각을 두루 접하는 방식은,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고 무게중심을 잡는 동시에 시야를 넓힐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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